엄마가 우리 가족을 두고 혼자 제주로 떠났다.
호텔 로비의 분주함을 한 템포 가라앉혀 주는 박선기 작가의 대형 샹들리에. 내 눈은 윤슬처럼 빛나는 호텔 천장의 샹들리에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내 귀는 수화기 너머 남동생의 목소리에 집중을 하고 있었고, 내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혼란스럽기 짝이 없었다.
체크인 시간과 맞물려
엄마가 제주도로 떠났다는 사실을 알았다.
칠순을 맞이한 남자가 자기보다 세 살 어린 여자의 나 홀로 여행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심란했고, 무엇보다 우릴 두고 혼자 떠나려고 마음먹었던 그 여자 때문에 깊은 슬픔이 몰려왔다.
퇴직 후 첫 1박 2일 나들이기에 좀 좋은 곳에서 보내고 싶었고, 호캉스를 해보고 싶다는 딸의 말에 탄력 받아 지난달 말 호텔과 레스토랑 등을 예약해 놨었다. 엄마의 외출은 우리 가족 넷이 서울을 떠나기 전 전조가 있었지만 모든 예약을 취소하고 내가 집에 있는다고 상황이 달라질 것 같진 않아 서울에 오긴 왔다.
이래저래 복잡한 심경을 뒤로하고 올라왔건만 마음은 아빠가 있는 청주와 엄마의 목적지인 제주로 향해 있었다.
참 사람이 간사한 게 좀 전에 죽상이었는데 끝없이 펼쳐지는 호텔 뷔페를 보자 슬슬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울적한 마음만큼 먹어버리자란 각오로 울 애들이 어릴 적 즐겨보단 '안녕 자두야' 만화 속 억척스러운 자두 엄마처럼 먹고 또 먹었다. 숨 쉴 틈조차 주지 않고 빵빵하게 배를 불리니 잡생각이 없어졌다.
그리고 하루 종일 수영을 했다. 썬 베드에 누워 눈 좀 붙이려고 하면 "엄마!"를 불러대는 탓에 터져버릴 것 같던 내 배도 점점 소화가 되기 시작했다.
파란 하늘에 폼폼이 인형을 달아놓은 것처럼 몽실몽실한 구름이 귀엽게 쏙쏙 박혀 있다. 서울 하늘은 다른가? 왜 이렇게 예쁜 걸까? 배영 자세로 물안경을 쓰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뜨거운 여름을 즐기기 딱 좋을 날씨다.
하루 종일 야외 수영장 안에서 물과 하늘을 번갈아 보다 보니 어느새 내 안에 있던 고민도 구름 따라 저 멀리 지나가고 있었다.
장충동 신라호텔에 왔으니 야식으로 장충동 족발을 먹자는 b의 말에 흔쾌히 동의했다. 숙소 테이블에 불족발이랑 냉채족발, 막국수, 평범한 족발을 나란히 세팅해 놓으니 이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지금부터 기분 좋게 살찔 시간.
실컷 먹고 수영하고, 다음날 호텔 근처 남산 타워를 보고 온 게 다지만 우린 진심으로 행복했다.
어쩌면 엄마가 제주로 떠나는 날 엄마와 한 공간에 있지 않고 서울에 있었던 건 다행일지도 모른다.
떠나려는 자와 이를 막으려는 자 사이 간극이 쉽게 좁혀지지 않았을 테니까.
엄만 다음 주 월요일 비행기로 오신다고 한다. 사실 퇴사 직후 아빠가 고관절 골절 사고로 인공관절 삽입 수술을 하시게 돼 제대로 자유시간을 만끽할 시간조차 없었는데, 나보다 엄마가 먼저 여행을 떠난다고 하니 내심 서운한 마음과 오죽하면 혼자 떠나고 싶어 할까 하는 마음이 교차 중이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오늘이 엄마가 제주로 간지 삼 일째 되는 날이다.
엄마가 없다는 건 삼시 세끼를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 지금까지 내가 누려왔던 모든 것들이 엄마의 희생으로 이뤄졌단 걸 절절히 깨닫고 깨닫는 중이다.
잘하려고 하면 할수록 내 맘처럼 되지 않는 것 중 하나가 요리인데, 첫째 날 실패한 콩나물국을 오늘 다시 도전해 보고 싶었다. 난 분명 콩나물국을 끓였는데 아빤 "된장국이냐?" 이렇게 물으셔 잠시 실의에 빠졌었다.
그리고 오늘 다시 콩나물국에 도전한다. 들기름을 살짝 두른 냄비에 북어를 달달 볶고 멸치 다시마 육수에 신 김치, 참치 액젓, 다시다, 간장, 고춧가루를 조금씩 넣는다.
마지막 비장의 콩나물을 넣고 냄비 뚜껑을 연채 팔팔 끓이는데 제법 맛있는 냄새가 좋다. 스스로 뿌듯하여 한 입 맛본 후 ' 오~ 오늘은 이쯤이면 정말 맛있는데. 오~굳! 됐어!" 상을 차렸다.
아빤 미심쩍은 얼굴로 한 술 뜨시더니만 "조미료 맛이 너무 많이 난다. 애쓰지 말고 내일부턴 그냥 사 먹자. 정 그러면 네가 잘하는 미역국을 끓이던가"
마음이 찢어진다. 아빠한테 뭐라고 할까 하다가 다시 먹어보니 아까랑 맛이 좀 다른 것 같기도 해서 꾹 참는다.
애들은 학교에, b는 일터에 가고 단둘이 남은 부녀는 종편 뉴스를 보며 이런저런 얘길 나눈다. 이럴 땐 아빠랑 참 잘 통하는데.... 오후에는 남이면에 있는 막국수 맛집으로 아빠와 점심을 먹으러 갔다.
구수한 막국수 면발을 삼키다 아빠랑 오붓하게 단둘이 보낸 시간이 얼마 만이었지? 떠올려보니 거의 기억이 없다. 밥을 먹고 함께 마트 가서 장을 본다. 그간 엄마와는 해왔던 수많은 일들 중 아빠와는 단둘이 해 본 게 손에 꼽을 정도여서 그런지 이 시간이 나쁘지 않다. 아빠의 情을 느끼는 시간.
만약 새벽부터 밤까지 줄기차게 일이 이어졌던 기자 생활을 계속해왔다면 어제와는 다른 일상이 펼쳐지는 귀한 하루를 느끼지 못했겠지? 아마 내가 나이가 들어서도 그냥 평범하게 하루를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워킹맘으로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옹알이를 하고 첫 발을 떼고 학교에 가고, 아이와 함께하는 모든 순간을 놓치기 싫어 안타까워 어쩔 줄 몰라했으면서, 정작 부모님의 연골이 닳고 허벅지 살이 빠지고 눈이 침침해져 가는 순간들은 그냥 지나가는 세월이려니 넘겨왔던 것이다.
엄마는 44살씩이나 된 딸에게 된장찌개를 제대로 끓이는 법을 가르치며, 호박 무침 양념장을 설명하며,
어쩌면 반평생을 넘게 해온 가족들의 食을 책임지는 일이 너무 지겨워 이젠 네가 좀 해야지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마냥 쉴 수는 없으니 어떤 일이든 일은 계속할 생각이다. 그렇지만 앞으론 일을 하게 돼도 가끔은 부모님께 저녁 한상 멋들어지게 차릴 수 있는 딸이 돼야겠다는 다짐도 잠시,
난 언제쯤 요리를 잘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