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지 않는 엄마를 보는 아이의 시선

퇴직 후 첫 강의를 하다.

by 임가영


매일 아침 눈을 떠 회사에 출근하면 하루 할당량인 취재 리포트 한 꼭지를 거의 기계적으로 만들어왔다. 내가 쏟아낸 수 천 개의 기사 가운데 유의미한 기사도 있었고, 설렁설렁 하루 때우기식 기사도 있었고, 쓰레기 같은 글도 있었다.


아무리 아이템이 별로라 할지라도 마감시간만큼은 낯부끄러운 그 기사를 그럴싸하게 포장이라도 하기 위해 집중하고 몰입했었다. 그렇게 매일매일 숙제하듯 보내온 하루가 켜켜이 쌓여 17년이란 세월이 지났지만 그땐 미처 몰랐다.


하루 중 여백의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하루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시간의 가치가 쌓이고 쌓여 현재의 나를 만들어간다는 걸.





회사를 관두고 처음으로 강의를 했다. 취미가 업이 되기 위해 틈틈이 글쓰기도 하고 있지만 우리 아들 말을 빌리자면 돈이 되지 않은 일은 진짜 일이 아니란다. 그런데 오늘 충북대 사범대학 부설 고등학교에서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진로특강으로 소정의 강의료를 받으니 난 오늘 퇴직 후 첫 밥벌이를 한 거다.


남들에게는 백수 생활을 누리고 있다고 하지만 매일 기사를 쓰듯 글을 쓰기 위해 일정 시간을 투자하고 있고, 그동안 나 대신 친정엄마가 해주었던 수고로운 일들을 하나씩 체득하느라 몸과 마음이 바쁜데도


왜 내 자식들은 일하지 않는 엄마를 불안해하는 걸까?


불안해한다고 표현하는 게 맞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를테면 이런 거다. 새벽까지 글을 쓰고 책을 보다 낮에 깜빡 잠들었는데 학원에서 돌아온 아들이 하는 말.


"이제 진짜 우리 엄마 백수 다 됐네. 백수 다 됐어. 쯧쯧"


"엄마 안 하던 요리하고 청소하고 밤에 글 쓰느라 피곤해서 그래"


"아냐 백수가 좋지. 그래 즐길 수 있을 때 즐겨 엄마"


아들의 입에서 나온 백수 소리가 잦아지자 나도 모르게 애들이 학원에서 돌아올 때쯤엔 뭔가를 하려는 날 발견하고 어찌나 어이가 없던지...


딸의 경우에는 내가 쓴 글과 내가 무얼 하며 하루를 보냈는지 무척 관심이 많은 편이다. 퇴직 후 첫 강의가 들어와 설렌다는 나의 글을 보고 슬쩍 옆으로 오더니


"엄마 강의할 때 PPT 같은 거 필요하던데 그거 만들었어? 나 좀 보여줘 봐."


"아니 아직...."


"그럼 내가 학원 갔다 와서 좀 도와줄게. 나 여자 아이돌 편집 같은 거 잘하거든."


귀엽기도 하고 이런 모녀의 대화가 웃기기도 하고, 급기야 강의 전날에는 자기 앞에서 한 번 100분 강연을 해보라고도 했다.


그리고 오늘,

"엄마 잘한 것 같아. 내가 들어오기 전부터 자는 학생이 두 명 정도 있었지만, 정말 학생들이 집중도 잘하고 질문도 하고 강의 끝나고 고맙다는 소리까지 들었어"

나도 모르게 딸에게 브리핑을 하는 나.


태어나서 줄곧 아침에 나갔다 저녁 늦게 오는 엄마를 봐오다 어느 날 갑자기 집에 있게 된 엄마가 아이들 눈에는 생경한가 보다.


일하지 않는 엄마를 보는 아이들의 따가운(?) 시선 속에 이번 강의는 내게도, 우리 아이들에게도 매우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나에겐 지난 기자 생활을 되돌아볼 수 있는

추억 여행 같았고,

아이들은 나의 강연 소식에 누구보다 기뻐했고,

뭔가 안도하는 분위기까지 느껴졌다.


자기들의 엄마가 집에서 밥하고 청소하는 주부로 머물러 있지 않고, 뭔가 다시 세상 속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느낀 걸까? 다른 집 애들도 이러나? 하여튼 애들 성화 때문이라도 오래 놀진 못 하겠다.


비록 일회성 강연이었지만 기자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막 퇴사한 17년 차 전직 기자가 들려주는 리얼스토리.

입사 과정부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기자를 하기 위해 지금부터 당장 해야 할 일, 어디 소속 기자가 아닌 '기자가 브랜드인 시대'에 전문 기자로 살아남는 법, 진짜 힘은 들지만 재밌고 매력적인 직업이라는 이야기 등을 연극 무대에 선 것처럼 연기하듯 100분을 채워갔다.


오늘의 100분이 내게 정말 값진 경험이었던 것처럼, 학생들에게도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시 오지 않을 오늘을 난

이렇게 기록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내일은 또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