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한 페이지

기자 해보길 참 잘했다!

by 임가영

17년간 기자 생활의 마침표를 찍고 자유인이 되어 이 글을 쓰는 순간 창문 너머로 중소도시의 약간의 소음과 새소리가 기분 좋게 들린다. 예전 같으면 한창 취재 아이템 회의가 열렸을 시간인데 파자마 차림으로 노트북에 앉아 이렇게 글을 쓰다니 아직도 믿기지 않아 피식피식 웃음이 나온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늘 마음속에 사직서를 품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회사를 나오게 될 줄은 단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다. 마치 이미 정해진 운명의 흐름을 거친 파도에 몸을 맡긴 채 휩쓸려 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지금 이 시기에 회사를 나와 기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 것은 무척 다행이고, 내가 태어나서 한 중요한 선택 중 참 잘한 일이란 것에는 변함이 없다.

기자를 관두면 모든 게 끝날 것만 같은 쓰나미 같은 두려움도 이제는 서서히 옅어져 일상의 재미를 찾아가는 중이다. 이를테면 3년 전 jtbc에서 방영한 '부부의 세계' 이후로 연작 드라마를 본 적이 없는데, 심지어 난 그 핫하다던 '더 글로리'조차도 못 본 1인인 입장에서 맘 놓고 넷플릭스 시리즈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선 내 삶에 대단한 변화가 찾아온 것이 아닌가?


더욱이 11살 13살이 된 아이들의 사춘기 모습을 오롯이 옆에서 지켜볼 수 있는 점이 내겐 가장 큰 의미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아이들은 내가 집에서 노는 게 싫은가 보다. 아마도 안 듣던 잔소리를 듣게 돼 그런 것은 아닐까 생각하다가도 요즘 부쩍 뜬금없이 "엄마 사랑해"란 소릴 잘한다. 매일매일 좌절과 기쁨을 동시에 맛보게 하는 요리의 도전 등 그간 못 해본 일들을 하나하나씩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기자를 관둔 것은 참 잘한 일이라고 이야기하면서도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란 직업은 내 인생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매력적이고 귀한 직업이었다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cjb 리포터 생활을 하다 PD의 권유로 함께 시험 보러 갔다가 PD는 떨어지고 나만 덜컥 시험에 붙어 엉겁결에 기자가 된 내게 기자 생활은 그야말로 다이내믹했다. "리포터 출신이 뭘 알겠어? 쟤 우리 회사 리포터 하던 애야" 속삭이듯 나눈 기자 선배들의 대화였지만 청음이 발달한 내겐 마음에 꼭 박히는 말이 되었다.


그때 처음으로 머릴 짧게 잘랐다. 처음에는 리포터 티를 벗기 위해 열심히 했고, 어렴풋이 기자 생활을 알게 될 때쯤에는 비기자단 기자로서 필드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을 쳤던 것 같다. 소위 말해 마이너리그로도 치부될 수 있는 케이블 기자가 현장에서 인정받기 위해선 남들보다 열심히 하는 것 밖에 뾰족한 수가 없었다.


이제 전 직장이 된 HCN은 도청과 충북교육청, 통합 전 청원군청만 기자단에 속해 있었다. 그래도 어린 나이에 교육청과 청원군 출입을 해서 기자단에 속한 선후배들과 함께 어울리며 참 재밌게 기자 생활을 했던 것 같다. 특히 선배들과 함께 소맥을 마시며 새벽까지 얼큰하게 이어졌던 현장에 대한 뒷얘기도 좋았고,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끝까지 체험 술의 현장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버티다 집문을 여는 순간 긴장감이 녹아내리는 따뜻한 방의 온도도 좋았다.


청주시청 출입 할 때는 혹여나 비기자단인 내가 기자회견 소식이나 주요 동향 등을 놓칠까 봐 개인 톡으로 실시간 메시지를 보내줬던 원숭이띠 동갑내기 남자 기자 A, B에게 퍽 고마웠다. 그리고 스물몇 살부터 마흔이 넘어서까지 회사에서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오열하며 속 얘기를 털어놓아도 당황하지 않고 친오빠처럼 자상하게 다독여주셨던 C 선배가 있었기에 기자 생활을 17년이나 연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내 인생에 술의 참 맛을 알게 해 준 울 사수 K 선배. 1~2년의 냉전기가 있긴 했지만 K 선배야말로 방패막이처럼 늘 내 편이 되어줬고, 사직을 하고 나서도 여전히 끈끈한 여기자 모임과 늘 온화한 미소로 냉철한 조언을 해주시는 친언니 같은 국장님. 돌이켜보면 너무나 감사한 이들이 많아 '참 기자하길 잘했다'라는 생각은 오랫동안 변함없을 거다.


어쩌면 서 있는 것조차 벅찰 정도로 뜨거운 여름날, 공군 비행기가 떨어져 수많은 취재진이 몰렸었던 그 현장이 눈물 나게 그리울 날이 올지도 모른다.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타 기자와 어느 정도 공유하고, 나만 알고 있는 소스를 혼자 알고 있을 때의 쾌감과 짜릿함. 돌이켜보면 별거 아닌 자기만족일 수도 있고, 어쩌면 인간의 이기와 욕심일 수도 있는데 그게 뭐라고 그렇게 안간힘을 썼는지 모를 숱한 지난 날들.


하지만 아이 둘 키우면서 나름대로는 정말 열심히 했다는 걸 나 자신이 알기에 후회조차도 웃으면서 넘길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젠 어떤 사안을 의심하고 좀 더 비틀어서 남과 다른 시각에서 문제점을 찾아내는 기사가 아닌, 단 한 사람일지라도 누군가에게 마음의 따뜻한 위로가 되는 글을 써보고 싶다. 글쓰기로 밥벌이를 하는 작가가 되는 것 말고도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 게 탈이다.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은 정말 명언인 듯.


이 지면을 빌어 그간 현장을 오가며 만났던 선후배 기자들과 공무원분들, 문화현장을 취재하며 내 영혼의 한 줄기 빛이 되어준 작가님들께 감사의 말을 전한다.



*이 글은 충북언론인 클럽에서 발간하는 연간지 <충북언론>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