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집밥 먹을 수 있는 거죠?"
우리 아이들에게 집밥이란...
제주로 떠났던 친정 엄마가 9일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할머니를 두 팔 벌려 꼭 안아준 아들의 첫마디는
"아...! 이제 집밥 먹을 수 있겠다"
순간 기가 찼다. 그럼 내가 잘 못하는 요리를 이거 저거 봐가며 해 먹였던 밥은 집밥이 아니었단 말인가? 한 방 제대로 맞은 난 지난 9일간의 음식 여정을 돌아봤다. 제일 자신 있는 카레와 떡볶이, 된장국으로 오해받았던 콩나물국, 삼겹살 구이, 라면, 그리고 지칠 땐 딸이 열광하는 마라탕과 피자, 치킨을 시켜줬었다.
쩝.... 여기서 아이들이 말하는 '집밥'이란 집이란 공간에서 먹는 밥이 아니고 할미의 정성이 듬뿍 들어간 진짜 '집밥'이었던 것이다.
제주에서 돌아온 엄마가 짐도 풀지 않았는데 아빠는 다급한 목소리를 찌개용 고기를 사 오라고 주문한다. 느끼해서 혼났다며 칼칼한 김치찌개가 시원한 게 목구멍으로 넘어가야 살 것 같다고 하신다.
터덜터덜 집 앞 마트에 가서 비계가 적당하게 붙은 돼지고기를 고른다. 회사를 관둔 지 근 두 달째에 접어든 난 부쩍 단기간에 정말 요리를 잘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활화산 같은 욕구가 불쑥불쑥 솟아오를 즈음 할머니의 집밥을 먹고 엄지 척을 양손으로 추켜올린 아이들을 보며 약간의 질투가 났던 게 사실이다.
"골프를 어떻게 하면 잘 쳐요?"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프로골퍼 박세리는 가장 먼저
"골프 레슨은 받으세요?"라고 묻는다고 한다.
질문자의 절반 이상은 "아니요"라고 답하는데 박세리의 대답은 간결 명료했다.
"레슨을 받아야죠. 아무리 유튜브에 설명이 잘 나와있어도 그 걸 아무리 봐도 자신이 잘못하는 부분을 콕 짚어서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으면 백날 연습해야 소용없어요"
이 말은 골린이인 내게도 격하게 와닿는 부분이다. 아무리 주야장천 혼자 골프채를 휘둘러봐도 잘못된 자세로 한다면 오히려 안 좋은 습관만 길러지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나와 있는 수많은 종류의 백종원 레시피를 아무리 들여다보고 지지고 볶고 해도 늘 뭔가 부족한 맛이 나오는 거와 같은 이치다.
그래서 난 오늘부터 엄마가 집에서 요리할 때 옆에서 보조 역할을 하며 직접 보고 사진으로 찍고 메모를 남겨두기로 결심했다. 엄마의 소금 한 움큼이 도대체 얼마만큼인지 머릿속에 정립이 되고 내 몸에 익을 때까지 차근차근하는 거다.
엄마가 집에 안 계신 동안 기름기 있는 음식을 아이들에게 많이 먹였던 걸까? 할머니가 돌아오자마자 13살 아들이 배탈이 났다. 타이밍 참 절묘하다. 새벽에도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더니만 등교 전 아침까지 이어진다. 안 되겠다 싶어 담임선생님께 이야기하고 둘이 동네에서 좀 유명하다는 내과에 갔다. 9시 딱 맞춰서 갔는데 이게 웬일인가? 대기실에 70세 이상으로 보이는 할아버지 할머니들로 바글바글하다.
접수창구 간호사는 "사람이 많아서 오전 11시는 되어야 진료가 가능할 것 같아요. 괜찮으세요?" 요즘 여름 방학을 앞두고 단축 수업을 해서 아이들이 1시면 집에 오는데 11시? 두 시간씩 기다릴 수가 없다고 판단해 근처 다른 병원으로 갔다. 아뿔싸 여긴 더 많다. 세상에 왜 이리 아픈 사람들이 넘쳐나는 것일까? 이 병원은 한 술 더 떠 1시간 반을 기다려야 한다고 해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 아이들 12시면 점심 먹기 시작하니까요. 그냥 오늘은 푹 쉬게 하세요."
진료 대기실에서도 설사를 참지 못하고 분주한 아들이 해맑게 웃는다.
"엄마 사람 많아서 너무 좋다. 학교 안 가도 되잖아. 게다가 그렇게 살 빼려고 해도 안 빠지는데 벌써 2kg이나 빠졌어" 하며 내 어깨에 살포시 기댄다.
아이의 통통한 볼이 내 어깨에 맞닿으니 갑자기 행복? 그 비슷한 몰랑몰랑한 감정이 올라온다. 일단 그렇게 큰 병이 아닌 급성 장염일 뿐이고, 평소 같으면 아픈 아이를 집에 두고 회사에서 맘 조리고 있을 텐데 이렇게 아이 곁에 함께 있으니 이 순간이 감사할 따름이다.
"아직도 병원이니? 집에 소고기 죽 해놨어. 진료 끝나고 와서 먹어"
좀 전까지만 해도 배가 아파 죽겠다던 아이는 할머니의 죽을 맛보고 아픈 기색이 싹 가신듯하다.
"할머니! 할머니는 요릿집을 차려야 했어. 그럼 떼돈 벌 텐데. 요릿집 안 차릴래?"
엄마의 미소 사이로 행복이 묻어난다. 십여 년간 직장에 간 딸내미를 대신해 손주 둘의 이유식을 먹이고, 급식을 먹고도 뒤돌아서면 배가 고프다는 식성 좋은 남매의 수제 간식을 내고, 매일 저녁 여섯 식구의 저녁상을 차려주시는 엄마.
참 다행이다. 엄마가 더 나이가 드시기 전에 이 모든 걸 깨닫게 돼서... 마침 오늘은 친할머니의 제사다. 평소 같으면 설거지랑 잔심부름 정도 했을 텐데 오늘은 옆에서 해야 할 일이 많아졌다.
*앞으로 종종 제 글에 첨부될 그림은 11살 딸 j가 그린 거랍니다. 아이패드 잃어버린 애플펜슬을 딸아이에게 사주고 우린 공동 창작자가 되어보기로 했거든요. 난 글을 딸은 그림을...^^* 멋진 일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