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손꼽히는 좋은 전시와 공연은 가능하면 두 번을 봤다. 문화 현장에서 취재하며 느꼈던 가슴 떨림과 흥분, 삶의 '희로애락애오욕'을 나의 아이들과 엄마에게도 전해주고 싶었던 마음 때문이었다.
취재를 통해 이미 작품 설명 등이 기학습된 난 자신감에 찬 눈으로 전시 공간에 들어선 아이들을 찬찬히 바라본다. 아이들 눈에는 작품이 어떻게 비칠까? 호기심 가득 찬 눈으로 한 발치 떨어져 그들을 바라본다. 그러다 한 아이가 질문이라도 하면 난 금세 신이 나 미술관의 큐레이터라도 된 양 내가 알고 있는 얄팍한 지식을 그들에게 전달한다.
2년 전까지만 해도 난 주말이면 이렇게 아이들과 손을 꼭 잡고 문화현장과 지역의 축제장 등을 누볐다.
직장에 다니느라 주중에는 못 해줬던 엄마와의 시간을 주말만이라도 아이들에게 보상해 줘야 할 것만 같은 일종의 강박 같은 거랄까?
덕분에 우리 남매는 내 뱃속에서 꼬물꼬물 했을 때부터 큰 아이가 11살쯤이 될 때까지 전국 곳곳의 박물관과 유명한 전시회, 사계절이 아름다운 국립공원 등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다.
그런데 어느 날 12살이 된 아들은 "엄마 주말에 어디 좀 돌아다니지 말고 이번 주는 집에서 좀 편하게 쉬자"
난 아직 어린 너희들과 이 드넓은 세상을 다니며 아름다운 풍경을 더 많이 보여 주고 싶은데... 아들의 말은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꼭 유명 관광지나 입소문 난 전시·공연 등을 보러 굳이 집을 나서지 않아도 아이들은 그저 엄마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만으로도 행복하다는 걸 시간이 좀 지난 후에야 깨달았다.
워킹맘의 흔한 착각.
어쩌면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과 딸은 미술 애호가라면 줄을 서서라도 보고 싶은 '에드워드 호퍼'의 전시가 아닌 방에서 에어컨 빵빵하게 틀어놓고 마우스를 클릭하는 '로블록스' 게임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 아니 더 좋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지난 10년간 주말마다 아이들과 함께 한 시간들을 절대 후회하는 것은 아니다. 나의 이런 노력 덕분에 큰 아이는 색을 깊이 볼 줄 아는 예술가적인 눈이 생겼고, 둘째는 자신만의 그림을 어디서 본듯한 작품에서 차용해 흉내 내거나, 여기에 자신의 색을 덧입혀 개성 있는 작품을 만들어 낸다.
이제 기자를 그만두고 백수가 되니 나에겐 시간이라는 어마어마한 자유가 생겼다.
"오늘 엄마 전시 보러 갈 건데 같이 갈래?" 한 번 물은 뒤 반응이 영 시원찮으면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유유자적 혼자 나선다. 전시장에서 우연히 마주한 작가들과 작품에 대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음악회를 가서는 아이들이 딴짓을 하진 않을까 신경 쓰지 않고 깊은 선율에 몸을 맡겨도 된다.
오늘은 좋아하는 기자 선배들이 퇴직 기념으로 밥과 커피를 산다 해 냉큼 얻어먹고, 집으로 오기 전 청주 원도심에 새로 문을 연 '예술곳간'에 다녀왔다.
가슴 아프지만 소규모 도시에는 있는데 84만이 사는 청주에만 없는 것. 청주문학관과 충북도립미술관, 사진 전문 갤러리 정도를 꼽을 수 있는데, 얼마 전 도심 외곽 전하울생태마을에 '갤러리 밝은방'이 생긴데 이어 드디어 도심 한복판에 '예술곳간'이 문을 연 것이다.
우산을 썼는데도 샌들 신은 발가락 끝을 적시는 비의 시원한 촉감이 좋다. 투둑투둑 비 내리는 소리까지 더해져 참 사진 보기 좋은 날이다.
예상치 못했는데 정말 반가운 얼굴이 있다. 나이가 들수록 얼굴에서 빛이 나는 분, 동년배 중에서 청바지가 가장 잘 어울리는 문상욱 선생님께서 환하게 맞아주신다.
"회사 그만두더니 얼굴이 더 좋아졌어. 원래도 밝았지만 그 밝음이 아냐. 진짜 몸에서 배어 나오는 밝음 말이야" 예뻐졌다는 말보다 기분이 더 좋은 걸 보니 내 낯빛에서도 자유로움이 묻어나나 보다.
[NEW Photographer] 초청 사진전, '코끼리의 방' 그리 크지 않은 공간인데도 작품이 주는 에너지가 엄청나다.
정형화된 뻔한 사진 같지 않아서 좋다. 그러면서도 사진 본연의 깊은 매력을 잃지 않았다.
대전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10인의 작품이 각기 다른 색채를 갖고 있으면서도 흘러가는 시간 속에 영원함 같은 건 없듯 생과 사, 자연과 인간, 누구에게나 공평한 시간 속에 동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우울감 등이 작품 전체에서 느껴진다.
내 눈을 가장 먼저 사로잡은 건 역시 초록으로 뒤덮은 나무들. 하나의 나무로 태어났지만 하늘에 맞닿을 듯 위로 뻗어가다 보니 옆에 있는 나무와 엃히고 섞였다.
서로의 잎을 포개며 그들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하는 걸까?
김미경 작가의 '식물들의 사생활'이다. 작품 이름을 참 잘 지었다고 생각했는데 도록을 보니 이승우 작가의 소설 '식물들의 사생활'이란 책을 읽으며 이미지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어떤 책일까 궁금해진다.
하나의 숲을 5개로 나눈 긴 세로 액자였기에 보는 재미를 더한다. 작품과 작품 사이 하얀 벽이 있어 초록이 더 싱그럽게 느껴진다.
백명자 작가의 '삶을 예술처럼 예술을 삶처럼' 이 작품은 퇴사를 결심하기까지 까맣게 타들어 갔던 날 보는 것만 같았다. 화병 속에 꽃도 한때는 화려하게 꽃을 폈던 시절이 있었겠지만 다 말라비틀어져 죽어버린 식물도 이 작품 속에선 전혀 흉하지 않았다. 죽음을 준비하는 노년의 숭고함마저 느껴졌으니까.
내심 슬퍼지려 했던 내 마음은 박건태 작가의 '물과 꿈' 밀려오는 파도의 생명력으로 다시 생기를 찾았다.
이 밖에도 작가님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사진은 못 찍었지만 신윤복의 미인도를 전통 한지에 시아노 타입 프린트로 감광 물질을 첨가해 재해석한 김춘숙 작가의 작품도 인상 깊었다. 사진과 회화, 옛것과 현대적인 것의 경계 너머 세상을 보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