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첫 주먹다짐

첫사랑 때문에 주먹다짐까지 했다.

by 임가영



연애시절 당시 고가였던 마리 떼 프랑수아 저버 청바지와 라코스테 기본 티를 즐겨 입던 b의 뽀얀 얼굴에선 부티가 줄줄 흘렀다. 그래서인지 청주에서 b는 얼짱으로 통했다. 교복을 입고 둘이 손을 잡고 성안길을 거니는데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여자네 집이 돈이 많은가? 왜 쟤를 만나지?"


당시 나도 외모에는 그리 빠지지 않은 편인데도 b와 함께 다니면 손해 볼 때가 많았다.


"남매가 닮았네. 누나가 옷 사주러 온 거야?"


옷 가게 매니저 단골 멘트에 내가 뾰로통해 있으면 작은 소리로 내 눈엔 네가 제일 예뻐라고 말해줬던 그 사탕발림에 뚱했던 마음도 사르르 녹던 그 시절이 있었다.




고3 때 복도를 지나가는데 우리 학교 일진들이 이유 없이 나에게 욕을 하고 지나간다.


"쟤가 걔야? 얼굴도 별로구먼. 집이 잘살아서 사귀나 보네."


이 말과 함께. 그렇게 이유 없는 일진들의 괴롭힘은 서너 달 동안 계속됐다. 그러던 어느 날 커트 머리에 나보다 키도 작은 c가 "네가 b랑 사귀는 애냐?" 하며 내 얼굴을 건드렸다. 그간 참았던 울분이 한 번에 폭발하던 순간이다. 그 애의 손이 내 얼굴에 닿는 순간 주먹으로 그 애 얼굴을 날렸다.


'퍽' c가 사물함에 나가떨어졌다. 교실 제일 뒤에 마련된 철제 사물함이 나의 어퍼컷에 보기 좋게 찌그러졌다.

'어머 내가 이렇게 힘이 셌나?'

두 살 어린 남동생과 평소 육탄전을 많이 해왔던 내가 늘 동생에게 들었던 싸움의 기술은 "무조건 선방이야! 선방을 누가 날리냐에 따라 승패는 이미 정해졌어"란 말이 은연중에 뇌리에 깔려있었나 보다.


본능에 의한 주먹다짐이 제대로 된 한 방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근데 문제는 그 뒤부터였다. 얼결에 한 방 맞은 c는 분함을 참지 못했는지 야수처럼 달려들었다.

당시 예체능계 연영과를 준비했던 난 머리가 비교적 길었고, 앞머리를 스프레이로 난도질했던 c는 쇼트커트였다. 둘이 머릴 부여잡고 2차전이 시작됐는데 내 친구가 죽어라 우릴 말리는 게 아닌가? 난 이미 짧은 c의 머리를 놓쳤고, 내 긴 머리는 c의 손아귀에 뽑힌 채 너덜너덜해졌는지 모르고....


그쯤 윤리 선생님이 오셨다. "이것들이 미쳤나? 당장 관둬!"


선생님의 목소리가 왕왕 왕 하울링처럼 들렸지만 여기서 승패를 짓지 않으면 남은 2학기도 c의 패거리들에게 괴롭힘을 당할 게 뻔했다. 머릿속에는 선생이고 나발이고 이번에 k.o 승으로 이겨야 비교적 모범생에 속했던 나의 학교생활이 순탄할 것만 같아서 죽기 살기로 싸웠다. 선생님의 말리는 소리가 영화 속 슬로모션처럼 버퍼링 되어 울렸지만 난 기필코 이겨야 된다는 일념 아래 부여잡은 c의 교복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몇 분 뒤 제정신이 돌아왔을 즈음 c와 함께 복도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출석부로 미친 듯이 나와 c의 머리를 휘갈겼던 윤리 선생님.


상황이 마무리되고 수돗가로 가서 격렬했던 현장의 상흔을 지우기 위해 수돗물을 틀었다. 내 속처럼 콸콸콸 시원하게 잘도 쏟아진다.


"얘 들었어? 문과에 임가영이란 애가 c를 완전 죽사발을 만들어놨데. 난리 났었다는데?"


내가 코앞에 있는데도 날 몰라보고 내 얘길 할 정도로 난 학교에서 극히 모범생이었다.

윤리 선생님이 교목 실 옆 잔디밭으로 날 부른다.


"왜 싸웠어? c를 어떻게 했으면 좋겠니? c는 하도 사고를 많이 쳐서 이번에 걸리면 정학이야"


그런데 난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학칙대로 해주세요"


나름 내 머릿속에는 모범생이었던 난 처음 친 사고였고, c는 학칙대로 처분을 받을 경우, 적어도 남은 내 고등학교 시절은 편안하게 보낼 수 있을 것이란 계산된 답변이었다.

초. 중. 고 1.2학년 동안 사고 한번 안치던 내가 b 때문에 주먹다짐까지 하게 될 줄이야.

그때부터 b와 나의 만남은 뭔가 심상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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