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네 집이 가난해져서 좋아

나랑 좀 비슷해진 것 같아서...

by 임가영


통유리 창으로 만발하는 하얀 벚꽃이 눈부시게 흩날리던 나의 집. 지역에서 제일 큰 소갈비 집 공주님에서

빈털터리로 처지가 바뀐 스물세 살을 맞이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당시 아빠는 은행에 다니셨고 엄마가 갈빗집 운영을 하며 더할 나위 없이 부족함 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2008년 광우병이 터졌다. TV 채널을 돌리는 곳마다 미국산 소를 먹으면 죽는다는 아니면 말고 식의 주장이 가감 없이 보도되고 있었고, 우리 집은 한우를 팔았음에도 불구하고 광우병 여파를 피해 갈 순 없었다. 이와이 슈운지 감독의 '4월 이야기'에 나오는 눈송이 같은 벚꽃이 우리 가게 앞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었지만 찬란했던 그 봄, 우리 집은 문을 닫았다.


하나밖에 없는 여자친구가 뭐든 가질 수 있는 공주님에서 졸지에 그다음 날 끼니까지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는데도 b의 표정은 뭔가 생기가 돌았다.


"미안한데... 너한테는 정말 미안한데... 사실 나 이제 너랑 좀 비슷해진 것 같아서 마음이 놓여"


예나 지금이나 자존심이 무척 강했던 난 처지가 바뀐 뒤 한동안 또래 여자 친구를 만나지 않았다. 여자 친구와 나눌 수 있었던 세세한 일까지도 모두 b와 함께 했다. b는 첫사랑 남자 친구라기보다는 점점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란 소설 속 주인공 제제가 기대는 밍기뉴 나무 같은 존재가 되어갔던 거다.


그냥 아무 말없이 다 들어주고 스펀지처럼 나의 말과 행동을 온전히 받아들여줬던 첫 남자.


사실 국립대 컴퓨터공학과를 다니던 b가 무슨 바람인지 4년제 대학을 관두고 대전의 미용 전문대를 다시 들어갔을 때만 해도 내가 b와 결혼까지 할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다.


가난이 주는 불편이 뭔지 절절하게 깨달았기에 그저 b와는 연애만 하다 결혼은 좀 넉넉한 집에 가서 여유 있게 살아야 지란 야무진 생각이 지배적이었으니까.


은행을 다니시던 아빠를 보고 자라온 난 어릴 적 세상의 모든 남자가 넥타이를 매고 출근을 하는 줄만 알았다. 하얀 와이셔츠에 고급스러운 실크 넥타이를 메주며 출근 준비를 해주는 아내를 상상하며 혼자 피식거리기도 했었던 나였다. 직업에 귀천이 있는 것은 아니라지만 지금의 남편은 내가 늘 꿈꾸던 남편상은 아니었다.

더구나 미용사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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