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와 미용사' 부부 달라도 달라도 너무 다른 우리
아래로 몇 번의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하다 우리가 결혼을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당시 온 국민에게 사랑받던 드라마 ‘겨울연가’가 한몫을 했다. 첫사랑과 재회해 다시 사랑에 빠지는 드라마 여주인공 최지우에 과몰입했던 걸 지금 말해 무엇하리. 그렇게 우리 부부는 '기자와 미용사' 달라도 너무 다른 직업을 가진 부부가 되었다. 어느 날 서점에 갔는데 오기와라 히로시의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란 책이 한눈에 들어왔다.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소나무 숲 속에 있는 푸른 바닷가를 뒤로 한 빨간 지붕의 작은 이발소. 맑은 수채화 같은 책 표지는 더 맘에 들었고 옮긴이가 김난주라면 더더욱 믿음이 가서 책을 덥석 집었다.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면서 그의 일과 나의 일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봤다. '미용사와 기자' 우린 달라도 달라도 너무 다른 결의 직업을 갖고 있는 부부였던 거다. 하루 중 절반 이상을 보내는 일터란 공간에서 너무 다른 이야기들이 펼쳐지다 보니 우린 언젠가부터 자연스럽게 서로의 일에 대해선 일절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었다. 각자의 전문 분야가 생판 다르다 보니 일적으로는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데다 난 취재원 대부분이 남자인데 반해 b는 고객 상당수가 여자인 것도 크게 작용을 했다. 자칫 얘길 잘못 꺼내면 골치 아플 수가 있단 걸 몇 번에 다툼 끝에 깨달았기 때문이다. 회식을 하고 늦게 집에 들어가는 날이면 "어유 기자 나리 남자들이랑 늦게까지 술 먹고 좋았냐?" "그런 넌 머리나 자르면 되지 여자 손님들하고 히히 낙낙 웃으면서 뭐가 그렇게 할 말이 많냐?" 불볕더위가 이어져 현장 취재가 좀 고되기라도 했던 날에는 "자긴 좋겠다. 하루 종일 에어컨 틀어놓고 일해서" 입을 삐죽거리며 투덜댄다. 부인 힘든 거 좀 알아달라고 얘기한 건데 이 남자 한 술 더 뜬다. "난 예약 밀리면 밥도 거르고 일할 때가 많아. 넌 좋은 것도 많이 보고 근사한 사람도 많이 만나잖아?" "취재하다 보면 진상들도 많거든. 자기한테 불리하면 욕을 하질 않나. 매일 공부도 해야 하는데 쉬운 줄 알아?" 끝도 없이 이어지는 다름의 터널 속에선 17년이란 긴 연애의 시간도 무색했다. 서로 다름을 조금씩 채워가는 게 부부라지만 우린 달라도 너무 달랐다. mbtij 성격 유형 검사로 치면 난 전형적인 엔프제 enfj 성격 급하고 감성적이고 열정적인 반면 b는 꼼꼼하고 느리고 뭐든 다 겪어봐야 깨닫는.. 전형적인 i형이었으니까.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처음으로 b의 직업을 향해 꽉 막혔던 둑이 조금씩 열리는 기분이 들었다. 집에 와서는 별말이 없는 b가 손님과 있을 땐 쉴 새 없이 뭔가를 계속 이야기한다. 내성적인 그가 일할 때만큼은 수다쟁이 아저씨가 되는 걸 보면 적잖은 노력이 필요했을 텐데... 항상 서서 일하면 힘이 많이 들 텐데... 책 속의 주인공도 고객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끊임없이 대화를 한다 . 미용사는 단순히 머리를 만지는 것이 아니라 고객과 마주하는 순간부터 머리가 완성될 때까지 마음을 만지는 일을 함께 해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b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게 해 준 한 권의 책.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17년이란 긴 시간을 만나고도 결혼을 하니 전혀 다른 남자와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b였다. 각자 일의 영역이 다르다고 아예 쳐다보지도 않으려 했던 미용사로서의 b도 열일곱부터 지금까지 줄곧 내가 사랑해 왔던 b의 일부분이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첫사랑과의 결혼이 어떠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켜켜이 쌓여온 지내온 시간들이 남들보다 많기에 서로의 눈빛만 봐도 대충 짐작할 수 있는 뻔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고, 때론 여자 친구보다 더 친구 같을 때가 많다. 이젠 서로가 서로에 대해 잘 안다고 치부하다 보니 그저 그런 부부생활이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다 어느 날 '어 쟤도 결국에는 나와는 전혀 다른 한 인간 군에 속하는구나' 빵! 하고 머릴 맞다 보면 장거리 연애 끝 결혼이고 나발이고 남자는 화성에서 온 남자일 뿐이고, 여자는 금성에서 온 여자일 뿐이구나 란 생각에 인생의 덧없음을 느끼기도 한다. 결국 남녀 관계란 어제 만나 오늘 결혼을 했든 20년 연애 끝에 결혼을 했든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그냥 인간 자체로 받아들이고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달려 있는 것 같다. 결코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으니까. 상대방을 변화시키려 하는 순간 싸움은 시작되는 것이다. 가끔 나보다 좀 더 어른스러운 연상의 남편을 만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종종 해보지만 기자 정신이 몸에 밴 와이프를 받아 주는 b 같은 남자가 또 어디 있을까? 되물으며 b와 나의 미니미 13살, 11살 남매를 흐뭇하게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