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 들어주기 내기는 함부로 하는 게 아니야
평소에는 각자 차를 타고 퇴근을 하는데 그날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우린 한 차로 집에 들어가는 중이었다.
아파트로 들어가는 길목에 다다르자 b가 뜬금없이 내기를 하자고 한다.
"우리 집 앞에 새로 생긴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T00일까? E00일까? 맞춘 사람 소원 들어주기 하자"
"응! 그래 좋아!"
흔쾌히 대답했지만 그의 소원이 그렇게 엄청난 것 일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분명 두 프랜차이즈 커피숍 모두 파란색 간판을 배경으로 해서 난 E00일 줄 알았는데 운명의 짓궂은 장난처럼 내기의 승리는 b에게 돌아갔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b는 분명 그 커피숍 이름을 정확히 알고 물어봤을 텐데 이럴 때 보면 나 같은 똥 멍청이는 세상에 없다.
소원이 뭐냐고 묻는 질문에 b의 답변은
"나 미용실 관두고 싶어. 너무 힘들어서 못 다니겠어"
순간 브레이크를 콱 밟을 뻔했지만 애써 태연한 척했다.
"뭐가 그렇게 힘들어? 당장 그만두지 말고 뭐라도 좀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지 않아?"
당시 유명한 프랜차이즈 미용실 부원장을 하고 있었던 b는 걸핏하면 점심 끼니를 거르는 것은 기본이고,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쫄쫄 굶고 공장처럼 펌을 말고 커트를 하는데도 늘 집에 가져다주는 돈은 항상 그대로였다.
월급쟁이였던 난 b가 매달 똑같은 액수의 돈을 가져오는데도 전혀 의심을 하지 못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미용실 디자이너의 급여 시스템은 총매출의 프로테이지를 인센티브로 받는 형식이었다.
매달 월급이 똑같을 수 없는 시스템인데 전혀 모르고 있었고, '기자와 미용사'란 직군이 너무 다른 영역인지라 서로의 일에 대해 무심했던 게 사실이다.
"일은 죽으라고 하는데 월급은 나아질 기미가 없고, 부원장이란 직함이 있으니 스텝 교육 등 신경 쓸 거는 많고 무엇보다 손님들 기에 빨려 죽겠어"
우리의 내기가 있은 후 난 준비 기간을 갖자고 했으나 b에게 내기란 아내에게 퇴사를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절호의 수단에 불구했던 것이다.
며칠 뒤 b가 미용실을 그만둔 것을 알았다.
우리에게는 4살 6살 남매가 있었고, 대기업 계열의 케이블 방송사에 다니던 나의 벌이는 웬만한 남자들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래서 난 호기롭게 "그래! 그렇게 힘들면 잠시 쉬고, 다른 거 할 거 찾아볼 동안 네가 아이들을 돌봐"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난 가장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