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튜닝 사업을 한다고?

그저 이 시간들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랬다.

by 임가영


내 예상보다 b는 주부 역할을 톡톡히 잘 해내고 있었다. 두 남매의 유치원 등원부터 회식으로 늦은 아내를 대신해 간식이며 밥 차려주기까지 솔직히 나보다 더 훌륭하게 주부로서의 일을 척척해나갔다. 보통의 가정들과 남녀의 역할이 바뀌었을 뿐이지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은 시절이었다.


하지만 제대로 된 가장 역할을 하기 위해선 지금보다 급여가 더 높았으면 했다. 그래서 승진을 하기 위해 퇴근 후 아이들이 잠들면 토익 문제집을 풀었다. 승진 조건 중 하나가 토익 기준점 이상을 넘어야 했기 때문이다. 요령만 좀 알면 쉽사리 풀 수 있었던 예전 토익과 달리 신토익은 아주 문제를 배배 꼬아놓아서 웬만큼은 다 들어야 리스닝 문제를 풀 수 있었다. 아침부터 새벽까지 이어지는 일과 b가 놓친 집안일, 여기다 안 하던 공부까지 하려니 스멀스멀 짜증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남편이 미워지면 발뒤꿈치도 보기 싫다더니 그때가 그런 때였던 것 같다.

b의 주부 생활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그를 향한 사랑은 점점 미움 섞인 원망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자기만 힘든가? 나라고 기자 생활이 편할 줄 아나? 남자가 돼서 그것도 못 버텨?'

드라마 '겨울연가'의 애틋하고 열렬했던 첫사랑도 막상 현실이 되니 그저 그런 부부생활의 연장선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b가 폭탄선언을 했다.

"자동차 튜닝 사업을 해봐야겠어. 내가 어릴 적부터 뭐든 조립 분해도 잘하고 손재주도 좋잖아."

"뭐 튜닝?" 기가 찼다.

관련 업계에 계시는 분들께는 죄송한 말이지만 당시 내가 갖고 있던 자동차 튜닝에 대한 이미지는 소위 말해 양아치들이나 하고 다니는 '허튼짓'이라 여겼었다.

멀쩡한 차에 붕붕 소리 내며 다니고 현란한 스티커를 조잡스럽게 붙이는 게 튜닝 아니었던가?

"안돼. 고작 한다는 게 튜닝이야? 난 도저히 용납 못하겠어. 정하고 싶으면 네가 자동차 튜닝 사업장에 가서 막내부터 버티고 배우고 난 뒤 얘기하면 그땐 인정해 줄게"


내가 워낙 완고하게 반대하자 b는 2014년 당시 박근혜 정부도 자동차 튜닝 사업을 창조경제 사업의 하나로 주목하고 있다면 관련 뉴스를 보여준다. 창조경제고 나발이고 내 상식에선 지금은 안된다고 선을 그었다.


그로부터 얼마 뒤 평소 내성적이고 자상하고 친절한 b 씨가 해병대 기질을 보여준 사례 준 하나가 자동차 공업소에 막내로 들어간 일이다.

매일 실내에서 고객들의 머릿결을 매만지던 부드러운 손길은 얼마 되지 않아 손톱 밑에 새까만 기름때가 낀 엔지니어처럼 변했다. 180cm의 훤칠한 키에 늘 꾸며져 있던 외모도 덥수룩한 수염에 점점 상해 가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이때가 우리 결혼 생활의 최대 위기였던 것 같다.


하지만 군소리 없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야생에서 꿋꿋하게 일을 배워가는 b의 모습을 보면서 난 이 시간들이 그저 빨리 지나가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