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를 그만두기로 했다
17년 차 기자 이제는 내려놓기로 마음먹었다
매번 똑같은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 숱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지 10년이 훌쩍 넘었다.
이번에는 나 자신에게 미안해서라도 쿵쿵 쿵 뛰었다 가라앉았다 또다시 날아온 돌멩이에
요동치는 내 마음의 소리를 진지하게 들여다보기로 했다.
아니 그보다 가난해질 용기와 타인에게 인정받지 않아도 될 용기가 생겼다고나 할까?
이제야 진정으로 나 자신에게 솔직해져 묻고 또 묻고 또 물었던 지난 서너 달이었다.
기자를 그만두기로 했다.
그런 마음이 들기 시작한 건 너무나 오래전이었다. 하지만 꾸역꾸역 버텨왔다. 나 자신에게 어떤 날은
귀걸이를 선물하고, 또 어떤 날은 첼로를 쥐여주고, 또 어떤 날은 나의 직업을 너무나 자랑스러워하는
아빠와 딸을 생각하며 나의 진짜 속마음은 저만치 내 안에 다른 방 속으로 밀어뒀다.
그런데 내 마음에 꽁꽁 숨겨뒀던 마음의 조각들이 자꾸만 꿈틀거리며 내 마음을 흔들었다.
예전에는 신록의 나무를 보면 그저 빛깔 고운 자태에 매혹되어 평온함과 행복을 느꼈는데 언제부턴가 그 기쁨 뒤엔 슬픔이 묻어 나왔다.
멋모르던 사회부 시절을 지나 남들보다 일찌감치 교육청을 출입하던 내게
어느 날 갑자기 날아온 돌멩이는 그 파장이 너무나 길고 깊었다.
전임 교육감 시절 수년 동안 납품비리 의혹과 인사비리 등을 취재하며 내 에너지를 너무 많이 쓴 거 같다. 근데 그때는 몰랐다. 그냥 앞만 보고 달리며 하루하루가 전쟁 같았으니까.
취재를 해놓고도 출고를 하지 못했던 기사도 있었다. 내가 보기에는 분명 문제가 있는데, 당시 법원, 검찰, 경찰, 교육청은 그렇게 보지 않았다.
내 깜냥은 그 정도였던 거다.
그리고 2021년 12월 회사로 몰려온 사람들. "교육감을 흠집 내는 임가영 기자는 물러가라"
내 이름이 적힌 현수막과 피켓을 보며 내 마음은 갈기갈기 찢겼다.
근데 난 제때 마음을 돌볼 겨를이 없었고, 내가 경찰에 고소해 검찰로 넘겨졌던 그 사람들을
조건 없이 합의해 줬다. 그렇게 해야만 내 안의 전쟁이 끝날 것만 같았다.
지난해 6월 선거가 끝나고 '수장이 바뀌었으니 이제 예전보다는 덜 힘들겠지' 했던 내 생각은
오산이었다. 시청을 출입하다 교육청까지 함께 맡게 된 교육청 출입 첫날,
'블랙리스트 의혹'(강사 배제 의혹이라고 불러달라고 했지만)이 터졌다.
의혹의 단초를 제공한 k 원장의 sns에 댓글에 내 얘기가 있었다. 그 후 내 얘기를 썼던 w는 수년 전 내가 썼던 기사에 앙심을 품고(언론중재위원회에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던 기사를 두고) 반복적으로 협박 문자를 보냈고, 회사로 찾아왔다. 법원에서는 스토킹 신변보호 잠정조치 결정을 인용해 줬고, 난 한동안 경찰에서 제공한 스마트워치를 차고 다녔다. 정신과 약을 먹으면 취재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난 경찰 권유로 전문 상담원에게 몇 차례 상담을 받았다. 상담사는 내게 심각한 우울증이 있으니 휴직을 할 수 없냐고 물었다. 그렇지만 내 판단에 우리 회사에서 휴직은 불가능해 보였다. 시도도 안 해봤지만...
선천적으로 밝은 성격과 스스로는 회복탄력성이 좋다며 터연한 척하며 하루하루 견뎌왔지먀 내 안의 그림자는 갑작스러운 순간에 몰아치는 슬픔과 공허로 불쑥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그런데 난 이번에도 또 w를 용서했다. 검찰로 사건이 넘어갔지만 술이 죄지 사람이 죄는 아니잖아 하며 w에게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을 것을 조건으로 걸고 공증 각서를 받았다. 이번에도 그래야만 될 것 같았다.
괜찮을 줄 알았던 내 마음은 몇 년 전 내가 제기했던 숱한 납품비리 의혹 중 하나였던 냉난방기 전수조사 결과가 나오면서 다시 한번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이렇게 단 몇 개월 만에 수년 전 부정 의혹도 사실로 밝혀냈으면서 그때는 왜? 그때는 왜?
자괴감이 들었다. 그때 끝까지 파고들었으면 이렇게 고생 안 하잖아요라고 말한 공무원의 말이 귓가에 계속 맴돌았다.
그리고 이제 기자는 취재만으론 살 수 없구나를 뼈저리게 느꼈던 최근 일련의 이런저런 일들. 난 기자인 줄 알고 일해왔는데 어느 날 보니 대기업 케이블방송사업자의 과장이었음을 깨닫게 됐던 날.
원인불명 두드러기가 나서 스테로이드 주사와 항히스타민제를 먹으면 들어갔다가 또 스멀스멀 올라오기를 며칠, 이명 현상도 찾아왔다.
최종 결정을 하기까지 꼬박 이틀을 잠을 잘 못 잤다.
당장 기자를 그만두고 무엇을 할지 어떻게 지낼지 정해진 것은 하나도 없다.
상처받은 내 마음을 돌보는 일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하루라도 빨리...
아직 부모님과 아이들에게는 이야기를 못 했다. 그날 차 안에서 울고 있는데 생전 일할 땐 전화를 하지 않는 b에게 전화가 왔다.
"너 목소리가 무슨 일 있니?"
"응 여보 나 너무 힘들어서 일 더 이상 못 하겠어"
"그만둬 여보. 너 힘들어하는 모습 몇 년간 지켜보며 나 역시 마음이 안 좋았어. 내가 더 벌면 돼. 그동안 진짜 열심히 산거 내가 곁에서 봤잖아. 네 마음대로 해. 아빠도 애들도 신경 쓰지 말고.. 사표 먼저 쓰고 말씀드려"
단 1초의 고민도 없이 내 마음을 알아준 b가 너무 고마웠다.
사랑하는 친구 둘에게도 물었다. 똑같은 대답이었다. "너 너무 애썼어. 돈이야 적게 쓰면 되지..."
이렇게 그간의 내 마음을 글로 적어두는 건, 내 마음의 소리에 비겁해지지 않기 위해서고,
모두가 내 선택을 존중해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다시 읽어보니 마음이라는 단어가 참 많이 나온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 '마음'
30명 정도의 후배들을 떠나보내며 매 순간 이별이 찾아올 때마다
그들이 부럽기도 했고, 한편으론 원망스럽기도 했다.
이제는 훌훌 내가 떠날 차례다.
시청 공무직 반년, cjb3년, hcn17년.... 한 번도 쉬지 않고 일했으니 여름휴가 말고
진짜 내 마음에 휴가에 들어가 보자.
그래... 그렇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