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녀는 함께 밤을 지새웠다
일흔을 앞둔 엄마는, 마흔넷이 된 딸의 침대 옆에 눕는다. 그 밤은 낯설고도 익숙했다. 서른 해 전, 잠 못 이루는 열다섯 살 딸의 머리를 쓰다듬던 밤처럼. 딸은 억지로 눈을 감았다. 나이 든 엄마가 자신을 걱정할까 봐.
하지만 이내 들려왔다.
“잠 안 오면, 안 자도 돼.
얘기나 하다 자자.”
그 새벽, 모녀의 대화는 동이 틀 때까지 이어졌다. 엄마는 옛이야기를 꺼냈다.
“마지막으로 가게 문 닫던 날, 달빛 아래 모과나무가 참 예뻤다. 큰 갈빗집 사장님에서 김밥집 종업원이 되었지. 손님이 물었어.
‘사모님, 여기 웬일이세요?’
나도 모르게 대답했어.
‘조그만 가게 차리려면 알아야지.’
그 말이 왜 그리 서글펐는지 몰라.”
서로의 상처가 오가는 대화 속에서 딸은 그동안 꾹꾹 눌러온 회사 이야기를 꺼냈다.
“힘들었다면, 미련 두지 마.”
엄마의 말은 단호했지만 따뜻했다.
“엄마가 내일같이 가줄까?”
“아니, 나 마흔넷이야. 그건 좀 아니지 않아?”
“중요한 선택 앞에서 울면서 돌아가지 마.
그 길에 그냥,
엄마가 같이 있고 싶어서.”
그 길을 달리는 내내 엄마의 숨결이 함께였다.마치 매일 아침 출근길에 내 마음을 열어주던 그 시간처럼.
집에 돌아와 긴장이 풀리자 그제야 깊은 잠이 쏟아졌다.
몇 시간 뒤 눈을 떴을 때, 휴대폰엔 메시지가 와 있었다.
“언니의 행복한 삶을 응원해요.”
“비타민 챙겨 드세요.”
“괜찮아질 거예요.”
그리고 낯선 이름 하나.
‘00공방’.
“기억하실지 모르겠어요.
2019년 공예비엔날레 아트페어에서 뵈었어요.
그때부터 조용히 기자님 글을 읽었어요.
오늘 아침 피드를 보고 용기 내서 톡을 남깁니다.
괜찮아질 거고,괜찮을 거예요.”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인터뷰하던 그 공방을 떠올렸다.
작은 초를 굽던, 그 따뜻한 얼굴. 눈물이 났다.
“기자 그만두면 우리 따로 살자.”
아빠의 한마디에 울컥했다. 뒤이어 걸려온 후배의 전화.
울음 섞인 목소리로 그녀는 내 이름을 불렀다.
그렇게 울고, 웃고, 또 울다 몸이 풀려버렸다.
잠에서 깨어 책을 펼쳤다.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눈에 밟힌 문장.
시간은 없으니까,
단지 그것뿐이니까.
계속하길 원한다면,
삶을.
나는 한참 동안 그 문장 앞에 멈춰 서 있었다.
기자로 살며 늘 누군가의 말을 끌어내야 했던 나에게,
처음으로 말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오후엔 푸딩과 산책을 했다. 집에 돌아오니 딸이 물었다.
“엄마, 왜 기자를 그만둬?
엄마가 기자라서
자랑스러웠는데…”
이불속으로 파묻히며 펑펑 우는 아이를 보며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그 말 앞에서, 나는 일을 내려놓은 사람이 아니라 아이에게 설명할 언어를 잃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도 지금 울고 싶다.
그냥,
좀 쉬고 싶다.’
가족들은 나보다 내 변화를 더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그래도 시간이 필요하겠지.
창문을 열었다. 새벽 공기가 살짝 스쳤다.
모든 것이 해결된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숨은 다시 쉬어지고 있었다.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