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의 표현대로라면 '골난 시어머니 같은 날' 오늘이 그런 날이란다. 하늘은 낮고 서늘한 바람이 불고 그래서 미술관 데이트하기 좋은 날이라고... 내게도 딱 미술관 가기 좋은 날이었다. 엄마의 여고시절 미술 교사였던 박영대 화백의 전시회가 있는 청주시립미술관으로 향한다. 박 화백의 전시회가 열리면 매번 '문화다이어리'로 취재를 갔었는데 이번 전시는 카메라와 마이크, 취재 수첩 없이 엄마의 손을 꼭 잡고 그림 보러 간다. 개막식이 오후 3 시인 전시장에는 선생님과 동년배로 보이는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 일찌감치 와서 그의 개인전을 축하해 주고 계셨다.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기 전 방명록 앞에서 잠시 머뭇하는 날 발견한다. 'HCN임가영이라고 적을까? 아님 그냥 임가영?'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 너무 웃기다.
'여기까지 와서 쓸데없는 고민하지 말고 즐겨. 그토록 좋아하는 그림을 보며 너에게 말 걸어봐'
개막식 1시간 전쯤 도착해 얼른 인사드리고 와야지 하는 생각이었는데, 이미 전시장 로비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그중 한 분이 말을 건넨다. "임기자 그래 응원해" 등줄기에 땀이 삐죽 솟아오르려던 찰나에 화백님과 눈이 마주쳤다. "축하드려요. 정말 대단하세요. 좋은 에너지 많이 얻고 갈게요" 이날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어서 화백님과 사진을 찍었다.
<박영대 보리미학> 청주시립미술관 개관식에서
미술관의 나무 계단을 지나 <박영대 보리 미학>이라고 적힌 글을 보자 벌써 심장이 쿵쿵 뛴다. '어 이러면 안 되는데... 사람 많은데 눈물이라도 나면 어쩌지?' 좋은 작품 앞에서 여지없이 눈물이 샘솟는 내게 오늘은 딱 그런 날이다. 그림 보기 좋은 날.
싱그러운 초록, 생동하는 보리가 바람에 일렁거린다.
내 마음도 보리 바람에 일렁이기 시작한다.
알알이 꽉 찬 푸른 보릿대 사이로
숨어버리고 싶은 날.
초록의 보리 세상으로 저만치 들어가
새 생명의 에너지를 얻어
훌훌 날아버리고 싶은 날.
지금까지 한 번도 선보이지 않았던 보석 같은 그림들이 눈앞에 펼쳐질 때마다 주체할 수 없는 벅찬 감동을 엄마와 함께 나눈다. 인터뷰는 언제 딸까? 화면 구성은 어떻게 하지? 이 그림에는 이런 표현이 좋겠다 등등 기사를 쓰기 위해 작품을 볼 때와는 사뭇 다른 감동이다. 전시회를 전하는 화자가 아닌 오롯이 관람객으로서 그림을 즐기니 기분이 더욱 새롭다. 울 엄마가 감수성이 풍부하고 그림을 좋아하는 걸 보면 분명 당시 미술 선생님이셨던 박 화백의 영향이 어느 정도 있진 않았을까? 여고생인 엄마와 당시 선생님의 수업 시간을 잠시 떠올려본다. 그림을 다 보고 개막식이 시작되기 전 서둘러 전시장을 나왔다.
그리고 발걸음을 옮긴 곳은 청주시 한국공예관에서 열리는 [김유찬 개인전, 마렌의 첫 번째 이야기 '화양연화'] 사직을 고민하며 휴가 중인 내 상태를 페이스북을 통해 보신 선배님은 못 올 줄 알았는데 와줘서 고맙다며 활짝 웃으신다.
CJB에 입사해 첫 리포팅을 김유찬 선배님과 나갔다. 옥천의 포도축제 행사장이었는데 그날의 느낌과 내가 입었던 주황색 칠부 옷, 오프닝 멘트까지 생생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첫 촬영의 떨림과 설렘, 아직 능숙하지 않은 초보 리포터의 진행을 당시 카메라 감독님이었던 그는 생 초짜가 현장에 나와 떨지 않도록 편안하고 재밌는 분위기를 만들어주셨다.
김유찬 작가 '목련'
선배님의 목련을 찬찬히 바라보는데 '어쩌지? 어... 어떡하지?'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른다.
지용철 작가님의 목련이 여리여리한 순백의 아름다움을 절정으로 표현했다면 김유찬의 목련은 외로움과 공허 속에서도 꿋꿋하게 활짝 자신을 드러낸 목련의 숭고미 같은 게 느껴졌다. 조만간 나를 취재 현장에서 만나게 되면 본인이 신문에서 읽었다던 건물의 균열과 빛에 대한 이야기를 꼭 해주고 싶었다며 말문을 이어가는 그 앞에서 난 기어이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금이 간 건물을 보고 사람들은 곧 무너질 것 같다고 걱정하지만 균열된 틈 사이로는 환한 빛이 새어 나온다고...
그는 현장에서 밝은 나의 모습의 보고,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너의 글을 보면서, 난 네가 글을 쓰는 사람이 되면 참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너의 글 속에는 가슴 찡한 무언가가 있다며 사람들에게 위로와 위안을 주는 글 쓰는 사람이 되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말한다. '어떻게 아셨을까? 나의 머릿속에, 가슴속에 떠다니는 생각들이 활자로 옮겨질 때 가장 행복하다는 걸 어떻게 아셨지?' 선배님의 따스한 그 말은 내게 한 줄기 빛 같은 용기를 주었다. 기사가 아닌 나의 얘기를 쓸 수 있는 용기를.
보리와 목련과 연꽃에 취해
살아있음에 감사함을 느낀 날.
그날 저녁 소파에 누워있는 내게 딸은 "엄마 쉬니까 좋아? 이제 할머니처럼 할아버지한테 용돈 받아서 집안일하는 거야?" 가끔씩 훅 들어오는 딸의 질문은 적잖이 날 당혹스럽게 한다.
"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쉬는 건데"
딸이 신나게 닌텐도 게임을 한다. "나도 좀 줘봐. 엄마 어릴 때 슈퍼마리오라는 게임이 있었는데 그거 할머니랑 진짜 많이 했어" "엄마도 게임을 할 줄 알아?" "그럼 이리 줘봐"
마침 b가 퇴근을 해 게임 얘길 하고 있는 우릴 보고 티브이에 닌텐도를 연결시켜 줬다. 우리 넷은 슈퍼마리오 레이싱 게임을 하며 한창 신이 났다. 게임기의 BGM과 우리들의 떠드는 소음 사이로 엄마의 다급한 소리가 들린다. 뭐라 뭐라 하시며 뛰쳐나가셨는데 무슨 일이 있나? 게임 한 판을 마치고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엄마 무슨 일 있어?"
"어... 가영아 아빠가 아빠가 119 응급차에 실려서 현대 병원으로 오고 계신데"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차 키를 챙길 시간도 없었다. 슬리퍼를 신고 무작정 집 근처 병원으로 뛰었다. 신랑이 뒤따라온다. 전속력을 다해 달리는 내 볼 사이로 눈물이 또 흘러내린다.
헐떡거리며 들숨과 날숨을 몰아쉬며 마음을 진정시키려 해도 통 되지가 않는다.
잠시 뒤 구급차가 병원 앞에 도착했다. 아빠가 누워있다. 아빠가 누워있다.
그림 보러 가기 전 아파트 주차장에서 어디론가 가는 아빠를 보며 차를 세웠는데
"가영아 우리 이틀 뒤에 다시 얘기하자"라고 하셨는데.... 그런 아빠가 구급차 안에서 나온다. 암에 걸린 친구가 서울 병원에서 퇴원하는 날. 또래 친구들이 모여 얼큰하게 술을 드신 후 계단에서 넘어지셨다고 한다.
"스트레스도 받고 일찍 집에 오기 싫더라"라고 얘기하시는데 모든 게 나 때문인 거 같아서
가슴이 저려왔다.
그리고 그토록 기도했던 하나님이 원망스러워졌다. '도대체 날 얼마나 힘들게 하려고 그러세요. 왜 그러시는 거예요? 왜! 20년 가까이 일하고 좀 쉬겠다는 게 그리 잘못된 건가요? 왜 이런 시련을 제게 주시나요?' 응급실 앞에 쭈그리고 앉아 목이 터져라 펑펑 울었다. 울고 있는 나에게 "너까지 이러면 엄마 진짜 힘들어 이러지 마. 이러지 마." 그 순간 바로 몇 시간 전까지도 태국 치앙마이 항공편을 알아보고 있었는데, 이게 뭐냐고 원망 섞인 말을 내뱉는 나 자신이 미워졌다. '아빠가 수술을 해야 하는데 여행 못 가게 된 게 그리 서럽니? ' 내 마음속에 있는 에고와 자아 사이를 가로지르는 자신을 발견하며 한낱 나도 어쩔 수 없는 미물, 욕심에 찬 인간일 뿐이구나라고 생각하니 울음이 멈춰졌다.
그리고 수술실 앞.
불과 몇 시간 전까지도 하나님을 원망했던 난 또다시 그를 목놓아 부르며 간절히 기도한다.
'제가 잘못했어요. 우리 아버지 수술 잘 되게 해 주세요.'
쫑네 가족과 독일 이모와 이모부, 이쁜이 이모, 우리 애들과 엄마 수술실 앞에서 초조하게 기다린다.
두 시간여 만에 수술실에서 나오신 아빠에게 말을 건다.
"아빠 괜찮아?"
아직 마취가 덜 풀리신 아빤 내게 "효도한다고 생각하고 그냥 다녀. 아빠 소원이야"
아빠의 진심에 내 가슴은 또 철렁 내려앉았다.
새벽에 일어나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공방 작가님께서 힘내라며 보내주신 작약 꽃이 날 가만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