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질의 농도

찌질한건 부끄러운 게 아니야

by 정다솔

대학교 4학년, 졸업을 앞두고 미래에 대한 두둑한 걱정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기, 나는 마음속으로 찌질한 사람들의 모임(일면 찌사모)을 만들었다.

나는 일명 찌사모(찌질한 사람들의 모임)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찌질한 모습을 마음놓고 당당히 드러낸다면 함께 성장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리고 사실은 이 모임을 떠올린 나 자신도 무척이나 찌질했기에, "나만 찌질해? 나만 그래? 우리 모두 찌질한 구석 하나쯤은 있잖아!" 하는 반항심에서 시작되었기도 하다.

나는 찌질함을 단순히 서툴기만 한 것이 아닌, 진심이 가득해져 만들어진 일종의 작은 ‘오류’라고 생각했기에, 내게 찌질함은 부끄럽게 느껴지기보다는 가장 순수하고 여리며, 소중한 마음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사람들이 웃음거리로 삼기도 하는 '찌질한 사람의 용기' 를 사랑한다. 그 서툰 부분에서 모순적이게도 강인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친구들과 우리의 찌질력(力)을 계속 키우자고 말한다. 찌질하지 않은 어른으로 살아가는 것이 당장 멋져 보이고 강해보일지는 몰라도, 내면의 가장 뜨겁고 소중한 마음은 본래 여리고 찌질하기마련이니 말이다.

나 역시 스스로 강해졌다고 느낀 순간은 언제나, 찌질함의 극치를 달리고 있었을 때였다. 그래서 나는 그때의 찌질한 마음에 기꺼이 박수를 보낸다.


내가 대학생이던 시절, ‘오글거려’라는 말이 유행처럼 퍼진 적이 있었다. 대부분 진심을 담은 감정 표현을 가벼운 분위기로 전환하기 위해 쓰고는 했는데, 나와 친구들은 자신의 진심이 ‘오글거려’라는 네 글자로 그 가치가 깎일 때마다 분노했다. 그 말이 이곳에 쓰이는 게 맞나? 하는 작은 토론도 했을 정도로.

“오글거려”라는 말이 진심의 가치를 깎아내다 보면, 언젠가는 마음을 나누는 방법을 잊게 될거라는, 지금은 조금 웃기지만 나름 심각한 고민도 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진심을 표현하고자하는 진지한 모습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오글거리고 찌질하게만 느껴진다면 우리는 그냥 찌질한 사람 하자! 라는 결론을 내었다.


예술을 공부하던 우리는, 자신의 내면을 끄집어내어 표현하는 것에 집중해야 했고 그 진심이 비록 타인의 시선에서는 가치 없어 보이고 찌질해 보이더라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심연 속에서 스스로 눈을 맞추고 작은 소리까지 들어보는 그 시간 속의 내가, 가장 굳은 심지를 지키고 서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나는 그때의 찌질한 마음을 가지고 산다. 그 당시의 온갖 찌질함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왔던 만큼 많은 이불을 찼던 것은 분명하지만 그때의 어리숙하던 나의 모습이, 지금은 더 크고 약간은 건조해진 나를 잡아주고 있다.

그래서 나에게 찌사모는 소중한 마음을 표현하고 더욱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며, 내가 사랑하는 것들에 마음 쏟는 것을 응원하는 공간이자 정신적 안도처이다.


언젠가는 꼭 찌질한 사람들의 모임을 정식으로 만들어서 세상에 내보일 생각이다. 여전히 나와 친구들은 "우리는 역시 찌질한 것 같아", 하며 자신의 찌질함에 대해 말한다.

우리들은 서로의 찌질을 절대 비난하지 않는다. 찌질함은 부끄러운것이 아닌 얼마나 마음에 진심을 담은 것인지를 알기에, 그리고 진심과 찌질함은 비례하기에.


나는 여전히 퍽퍽하고 건조하게 다 큰 어른보다는, 찌질하지만 진심으로 촉촉한 작은 어른이고 싶다.


매일 찌질한 존재의 힘을 믿으며, 짙은 찌질의 농도를 응원한다.

이전 07화매일을 둥글게 리커버리 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