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한 비둘기, 은숙

우린 사실 다 뻔뻔한 얼굴을 하고

by 정다솔

테라스에 내려앉은 은숙이를 보며 “너처럼 뻔뻔해야 살아남는구나 “ 하고 말했다. 여기서 은숙이는 동생이 돌보던 비둘기다. 은숙이는 온몸이 하얀 비둘기인데, 동생이 모이를 주며 키웠기 때문에 밥시간이 되면 집으로 날아온다. 그때마다 가족들이 밥을 주고는 했는데 이 날은 너무 바쁘고 새 모이도 못 찾겠어서 “아, 그냥 밖에서 지렁이 쪼아 먹던가!” 하고 부랴부랴 집안일을 했다. 그런데 어디선가 미세하게 덜커덩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글쎄 강아지 출입문에 은숙이가 머리를 박아대고 있었다. 어이가 없기도 하고 이러다 집안으로 들어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얼른 모이를 찾아 부어주었다. 작은 머리로 딱따구리처럼 모이를 쪼아대는 모습을 한참 지켜보았다.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동시에, 뻔뻔한 동물 중 최강은 사실 비둘기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까지 들었다.


종종 지저분한 모습으로 찾아오기도 하고 비가 올 때는 굳이 와서 날개를 펼치며 샤워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뻔뻔히 친구도 데려오고 또 뻔뻔하게 밥도 먹는다. 은숙이가 싫다고 진저리 치던 가족들은 그 뻔뻔함이 얄밉다가도 며칠 안 보이면 모이를 꺼내 슬쩍 테라스 바닥에 둔다. 그러다 은숙이가 돌아오면 "은숙이 왔다!" 하며 모두 달려 나가 은숙이 구경을 한다.


한때는 친구들까지 데려와 파티를 열려하길래 문전박대했더니 정신교육이 된 건지, 요즘은 혼자 와서 즐기다가 떠난다. 그런 은숙이를 볼 때마다 "넌 참 뻔뻔해! 그래서 재~수가 없어."라고 말한다.


뻔뻔하다고 말하지만 사실 살아남기 위해 그런 것을 누가 뭐라 할 수 있겠는가. 미워 보이지만 정작 아주 미워할 수가 없는 것이다. 살아가는 모든 것들이 살아남기 위해 오늘도 각자의 뻔뻔한 얼굴을 들이밀며 세상밖으로 나왔다. 나도 오늘 내 기분을 지키고 나를 키워내기 위해 뻔뻔함으로 무장해 봤다.





뻔뻔한 눈
IMG_2263.jpg 비둘기는 의외로, 잘 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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