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었어.
늘 무음으로 설정되어 있는 폰에 부재중 전화 신호가 떴다. 확인해 보니, 딸이다. 운동가는 중에 전화했나 보네.
엄마. 코와 목이 메인 목소리에 심장이 내려앉는다. 엄마, 아- -가. -- 그 찰나의 시간에 나는 올 것이 왔구나, 생각한다. 엄마, 아나가 죽었어. 누군가 죽었는데, 아빠가 아니라 아나란다. 안도와 슬픔이 함께 다가온다.
別居가 별 건가? 자위하며 살았지만, 別居는 별 거가 아니지 않았다. 근 40년의 시간이 뭉텅 뽑혀, 옮겨 심어지기도 어려운 말 그대로 고사 직전의 나무 같은 시간이 벌써 3년 차가 되었다. 하루하루 일상을 시간표대로 살아가는 게 마지막 숙제 같아서, 그렇게 오며 가며 숨을 쉬며, 자다 깨며 사는 시간이다.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고, 나를 다독거린다.
지금 가장 어렵게 여겨지는 일은 내가 떠나온 곳에서 내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생겨, 어쭙잖게 뽑힌 곳으로 가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직 가족인 누군가가 많이 아프다거나, 죽거나. 딸의 울음 묻은 소리에 아-- 가 나오자, 심장이 내려앉은 이유다. 아빠가?(차마 입에 담지 못함) 아나가 죽었어. 휴... 울먹이다 못해 엉엉 우는 딸에게 들키지 않으려 조심하며...
아나는 5년 전쯤 집과 고구마 창고를 오가며 만난 길고양이다. 워낙 작아 성묘인지 몰랐는데, 어느 날 며칠 안 보인다 싶더니, 새끼를 낳아 젖을 먹이고 있었다. 어느 정도 새끼가 자라면, 늘 새끼들은 없어지고 아나만 남았다. 몇 배의 새끼를 낳았지만, 아나는 늘 혼자였다. 나는 밥을 주며 아나와의 거리를 좁혀갔고, 아나는 우리에게 다가왔다.
3년 전 집을 떠나며, 아나는 집에 남겨졌다. 나는 그렇게 아나를 두고 왔다. 다행히 딸이 밥도 주고 중성화도 시켜주며 아나를 챙겼다. 덕분에 아나는 그 작은 체구에 길거리 생활을 이어갔지만, 지난해 말쯤 아나가 급격히 쇠락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병원에서는 올 겨울을 넘기기 힘들 거라고 했단다. 딸은 아나를 집에서 기르기로 했다. 아나의 마지막을 따뜻하게 해주고 싶다며.... 그렇게 아나는 지난겨울, 딸 곁에서 지냈다. 의사샘의 예견과 달리 아나가 많이 좋아졌다며, 딸은 희망에 차서 전화를 하곤 했다.
그런 아나가, 3월 31일에 죽었다. 그리고 나는 그 전화를 받고 다른 상상을 살짝 하며 심장을 졸였다. 그럼 아나여서 다행인가? 글쎄. 누구든 무엇이든, 죽음에 이르는 시간의 버거움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 죽음을 지켜보고, 정리하는 것 또한 피하고 싶은 일 중 하나다.
아나에게, 딸에게 미안하다. 아나는 영문도 모르는 이별을 해야 했고, 내가 피한 것이 결국 딸의 몫이 되었으니... 언제, 어디까지 피할 수 있을까? 이제 막다른 골목이야옹~. 오랜만에 아나가 머리를 비벼대던 느낌을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