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문화센터와 유니언 스테이션
오늘은 시카고 문화센터에 들려 티파니의 돔을 본 후, 암트랙을 타기 위해 유니언 스테이션에 가면 된다. 어차피 걸어서 30분 –40분 정도니, 며칠 물 구경하기 어려운 머리와 몸을 닦고, 평소보다 조금 늦은 시간인 10시에 숙소를 나선다.
시카고의 아침은 맑은 햇살과 선선한 기운으로 조깅하기 딱 좋은 날씨다. 그래서인지 유난히 레깅스 차림의 여성이 많기도 하고, 실제로 달리는 사람도 꽤 있다. 루미씨는 그런 좋은 날, 그동안 섭렵해 온 시카고 시내를 걸어 미시간 애비뉴로 들어선다.
문화센터는 원래 시카고 중앙도서관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문화센터로 전시회, 교육 및 동아리 활동이 열리고 있었다. 백색의 대리석 계단을 올라가면 네모난 방이 있고, 이 방안에 티파니의 원형돔이 있는 방이 나온다.
" 티파니가 디자인한 유리 돔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크다. 3만 개 이상의 스테인드글라스 조각을 주철 프레임으로 박아 만든 돔이다. 화려함 보다는 모든 시민이 자기 집처럼 드나들 수 있는 시민 도서관에 이런 시간과 정성을 쏟아부은 점이. 돋보인다." (이중원 저, 건축으로 본 시카고, p71)
마침 월요일 오전이라 사람이 없는 틈을 타서, 루미씨는 메이시스 백화점에서 하지 못한 것을 실행에 옮겼다. 티파니 돔아래 누웠다. 보석장인이 하나하나 정성 들여 스테인드글라스 조각을 다듬었을 시간을 느껴본다. 해의 기운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천정을 갖는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그래. 여한이 없다.
시카고 유니언 스테이션에 들어서니, 무슨 기차역이 이리 멋질 일인가? 이곳 역시 유리천장을 이용한 자연 채광과 르네상스시대의 건축양식을 기반으로 지은 건물이다. 대형 아치문 양쪽에 신화의 누군지는 몰라도 반짝반짝 빛나는 작은 금빛 동상을 세웠고, 기둥과 모서리 등을 꼼꼼히 조각해 놓았다. 여기에 더해 샹들리에까지... 시카고 대화재(1871년) 이후 시카고 재건운동의 선봉에 미스가 있었고, 뒤를 이어 제자인 번햄이 주도하여 시카고 건축플랜을 만들었는데 이를 번햄플랜이라고도 할 정도이니, 유니언 스테이션이 바로 메이시스 백화점과 킴튼 호텔을 지은 다니엘 번햄의 작품인 바, 그러니 멋질 일이다.
곧 개찰을 시작한다. 낯설고 두려워도 내 아우라를 유지하며 쏘 다니고, 혼자서 숙소에 뒹굴거리는 시간은 이제 없다. 너무 비싸서 침대칸을 포기하고, 새마을호 좌석보다 조금 큰(당연하다. 우리보다 덩치가 크지 않은가) 좌석에 앉아, 온통 영어를 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으니, 사람들에게 온기를 느끼기보다 더 소외되는 느낌이 든다. *자씨의 외로움이 이런 걸까? 역내방송을 듣고 웃는 이들을 따라 웃을 수도 없고, 안내방송인데 안내를 받을 수 없다니... 결국 나의 관계지향적이고 명랑한 성격이라는 게 고작 언어의 영역을 넘어설 수 없는 것이었나? 두려움이 다가온다.
드디어 기차가 움직인다. 이제 다시 *자씨를 못 볼 것을 생각하니, 말 못 하는 어린아이를 떼어 놓고 온 듯하다. 자신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도 안 해 놓은 *자씨. 주변사람들이야 어찌 되었건, 자식들하고도 말이 안 통하다니. 그나마 말이 통하는 큰 사촌은 엄마와 긴 말을 이어가면 피곤해진다는 것을 이미 알아차린 듯, 엄마 또 그런다며 최소한의 말만 하려 한다. 어쩜 루미씨와, 대부분의 노인을 가까이서 부양하는 사람들과 똑같다. 노인문제는 미국도 별반 다르지 않은 듯, 골치 아픈, 누군가에게 떠 넘기고 싶은 일인가 보다.
시카고를 뒤로 하며, 이놈의 사무치게 외로운 삶이 그리 길지 않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