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량의 법칙
작년 이맘때쯤, 남편이 환갑을 집에서 한다고 온 시댁 식구들이 있는 자리에서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누가 그 일을 하지? C는 물음이 물 밀듯 밀려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입을 다물지 못한다는 표현을 이때 정확히 체득했다. 늘 그랬던 것처럼 미리 C와 상의한 것도 아니고, 그냥 제 환갑생일은 집에서 할 것이다. 땅 땅 땅. 이렇게 통보한 것이다.
C의 입에서 걸러지지 않고 튀어나올 말이 걱정되었는지 딸들이 눈짓하며 자기들이 할 테니, C는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뭐? 걱정 말라고? 걱정을 안 할 수 없는 이유 또한 물밀듯 밀려와 C의 벌어진 입은 더 커지고 말았다. C는 딸들의 만류에 할 수 없이 벌어진 입을 다물었고 곰곰이 생각하니, 한마디로 남편의 처사는 C를 부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거였다. 그렇지. 하녀한테 굳이 상의할 필요는 없지. 그냥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게 하녀니까. 그래서 C가 어떻게 했냐 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1년 후, C의 환갑이 다가왔다. C는 큰 원칙을 세웠다. 환갑엔 한국 혹은 우주에 없을 것이다. 땅 땅 땅.
그렇게 2023 미국 여행은 시작되었다. 여행규칙은 집에서 머얼리 그리고 오래갈 것. 멀리+오래? 그래 미국으로 가자. 마침 이모도 만나고, Amtrak도 타고 멀리 그리고 오래 있다 와야지.
이모를 만나는 일정은 사촌들의 일정을 고려해야 해서 7월 마지막 주가 되었고, 입국 일정은 C의 환갑엔 한국에 있지 않는다. 는 원칙에 집중하였다. 그래서 한국 입국은 무조건 8월 22일 이후가 되어야 했다. 그렇게 항공권을 먼저 끊었다.
하지만 C의 일방적 결정은 본의 아니게 A에게 부메랑이 되어 날아갔다. A는 학교의 개학 때문에 가야 하는 B를 오늘 공항에 데려다주고, C 때문에 다시 내일 같은 공항에 가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휴, C는 모두의 삶이 가벼웠으면 하는 심정으로 환갑을 빙자한 여행을 왔지만, 결국 총량의 법칙을 적용받아 그 짐은 A에게 넘어간 것이다. 어제는 생일파티를 오늘 아침엔 미역국을 저녁엔 국수를 해준다고 한다. 그 사이 A와 C는 B를 보내고 폴 게티 빌라를 다녀와서, 이 시기엔 거의 내리지 않는다는 비가 종일 내리는 La 집에서 한숨 잤다.
창밖의 빗소리와 A의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깨서, C는 결국 누군가는 희생해야 사회가 돌아가는가? 그 누군가는 누구인가?라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고 있다. 봉사와 희생. 뭐 이런 것 없이도 조화로운 세상과 삶은 가능하지 않을까? C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침대에 뒹굴거리며 생각에 잠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