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1일 Come Back Home.

요양원에서 맥주를~ 치어스

by Rumi

회귀할 시간이 되니, 처음의 시간이 떠오른다. 이모.

C의 이모는 아이오와주 작은 마을의 노인 요양원에 계신다. Maggie’s House.


넓고 그야말로 한갓진 곳에 있고, 그 지역 주민들이 들어오는 곳이라 노인들은 모두 백인이고 관리자와 간호사도 백인, 청소나 식사를 준비하는 이들 중엔 간혹 흑인도 있다. 그중 황인인 C의 이모가 있다. 이들은 영어로 관계를 맺고 의사소통을 하니 피부색은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C의 이모는 뇌졸중 후유증으로 그동안 사용하던 영어를 잊어버린 한국인이다. 신나게 놀러 다닐 땐, 잊어버린 이모의 쓸쓸함이 느껴져 전화통화라도 하고 싶다. 하지만 이미 이모의 삶은 이모의 통제를 벗어난 상황이다.


A는 C로부터 이모의 이야기를 듣고, LA에 한인 요양원이 있다고 알려준다. 여긴 있는데.... 이모에게 뭐가 나을까? 자식들이 가까이 있는 게 나을까? 말을 하고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들과 있는 게 나을까? C는 사촌에게 말을 해볼까 하다가 그만둔다. C는 그들의 시스템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모가 결정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총기가 있다면, 이모의 의견이 적극반영될 수 있겠지만, C의 이모는 아니 아마 대부분의 노인들이 결정장애를 갖고 있을 것이며, 이는 세상살이에서 만들어진 70%의 세뇌와 노화로 인해 생긴 30%의 장애가 그 이유가 아닐까 C는 생각한다. (각자 저마다의 차이를 존중한다.) C는 세뇌된 70%를 지우려 그야말로 애쓰고 있는 중이다. 미친년처럼 말이다.


A, B, C는 여행 중 어느 날은 모여 앉아 노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죽음에 대한 모두의 공통된 의견은 70대는 좀 그렇고, 80쯤 돼서 잠자다가 죽었으면 좋겠어. 하지만 A, B, C는 그런 일이, 전래동화에 나오는 왕자와 공주는 결혼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는 것을 세상살이를 통해 알고 있다. 별 흉흉한 죽음이 많지 않은가? 그중에 하나가 나일 수 있다는 것을 왜 모르리..... 알고 싶지 않을 뿐.


A와 B는 교회를 다니니, C와 죽음에 대한 인식이 다르긴 해도 자식들 신세 안 지고, 스스로 걸을 수 있을 때, 정신이 남아있을 때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같다. C는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입으로 “그건 안락사밖에 없어. 내 용기가 남아있을 때 난 그렇게 하고 싶어. 돈이 들긴 하지만, 뭐 누워서 병치레하면서 쓸 돈을 미리 쓴다고 여기면 될 것 같고, 갖고 있는 것 다--- 팔아서 하면 되겠지. 뭐.” 그러면서 C는 생각한다. 그런 용기가 남아있는 적기가 언제일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중요한 포인트는 용기이다. 용기가 남아 있을 때.....


그럼 그전에, 그러니까 C가 죽음을 선택하기 혹은 죽지 못해 살아가기 전에는 어떻게 지내야 할까? 그 조건은 무엇일까?


C : 내 방에, 내 물건을 가져다 놓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뭐든), 가끔 맥주도 마시고 옆 방 사람들과 이야기도 하면서 사는 그런 요양원이 있으면 좋겠어. 뭘 그리 지킬 게 있다고 이것도 안 돼, 저것도 안 돼. 그러지 좀 말고. 최소한의 케어인 밥과 청소, 빨래 그리고 가끔 바람 쐬러 같이 가는 그런 곳 말이야. 다 같이 일어나서 다 같이 잠들어야 하는 곳이 아니라, 따로 또 같이 사는 곳 말이지. 그러려면 우리가 만들어야 해. 우리가 조합을 만들어서 의결권을 가지고, 사람들을 고용하는 거지. 뭐 하라, 말라하면 해고해 버리자구.

A, B : 그래 좋겠다.


C는 뭐든 시작하기엔 체력도 총기도 부족한 나이가 되었고, 누군가 이런 꿈을 같이 꾼다면 그들과 지지고 볶으며, 노년을 각자의 스타일로 살 수 있는 요양원을 이제부터 준비해야 10년 후 누릴 수 있다는 절박함을 LAX공항에서 태극기를 바라보며 느낀다.


하지만 요즘 돌아가는 정치 행태를 보면, 곧 전쟁터가 될 듯한 한국에 돌아가는 게 맞는지? 10년 후 아니 단 1년 후를 꿈꿀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C의 노년보다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더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