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처음이지
그래 내가 잘 못했다. 잘 못 판단하고, 당황하고, 실수했다. 당황스러운 건, 루미씨의 삶을 사는 방식이 늘 그렇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 직성이 풀리는 이상한 DNA를 물려받은 것으로 단정지음으로써 내 책임이 흐려진다면, 이건 분명 DNA의 탓이다.
모두가 어떻게 혼자 가냐고, 갈 만하냐고 물어도 늘 갈 만하다. 해보는 거다. 라며 루미씨는 늘 안 가본 길, 안 살아본 삶을 향해 간다. 용의주도하게 준비를 하지도, 삶 혹은 여행을 되새기며 다짐하지도 않고 늘 맞닥뜨려서 당황하고 화가 루미씨를 어찌할 거나?
미국은 처음이고 물론 영어도 몇 단어로 버벅거리는 실력이다. 우리나라 공항을 생각하고 간 게 큰 실수였다. 이게 '미국의 자유구나.' 하고 깨달은 보스턴 공항. 입국심사의 게이트는 여러 곳이었지만, OPEN이라고 표시된 게이트는 손꼽아 6개. 그나마 1곳은 퍼스크클래스, 승무원 입국심사를 주로 하며, 대부분 프리패스로 진행된다. 몇 겹의 줄이 있어도 검색관들은 서두르는 기색이 없다. 우리나라 같으면, 왜 저 게이트에 근무자가 없냐며 항의를 하고도 남겠지만, 어느 누구도 공항 경찰에게 항의는커녕, 의문을 표하지도 않는다. 불문율인 듯. 안내하는 사람도 별로 없고, 있다고 한들 그리 도움이 안 된다. 껌을 딱딱 씹으며, 그저 자리를 지키는 듯하다. 내가 동양인이라, 영어도 못하는..... 그래도 비자를 들고 선 사람들끼리의 유대감은 느껴진다. 10살 정도의 인도계인듯한 여자아이가, 나와 눈을 마주치며 윙크를 하더니 어디서 왔느냐고 물어본다. 오... 아임 코리안. BTS & 블랙핑크.
오전 10시 반에 보스턴에 내려 12시 30분이 되어 검색을 마치고 나니, 이미 불안의 임계치가 극도에 달했다. 1시 10분에 시카고행 비행기를 환승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11시 30분부터 밀려온 참이다. 검색대에서도 *미씨의 입국을 미룬다. 직원은 공항경찰을 불러 여권을 전하며, 다시 뭔가를 검색하는 곳으로 보낸다. 직업을 묻는 질문에 Farmer라고 답한 게 화근이었던 것 같다. 그냥 Housewife라고 할걸. 공항 경찰에게 인계되어 간 곳엔 역시 돼지에 X로 빨간 줄이 그려진 구제역 포스터가 있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시카고 ORD로 데리러 온다는 사촌도 전화를 안 받는다.
두 번째 에러는 짐이다. 난 내 짐을 내 걸음으로 지고 다니는 것을 좋아해서, 이번에도 배낭에 짐을 꾸렸다. 하지만 근 한 달의 짐에 노트북과 포기 못하는 책도 넣으려니, 에코백을 더 가져가게 되었다. 또 40년 전에 네 명의 아이를 데리고 늙은 백인 목사의 재처로 간 이모에게 드릴 부드러운 한국 간식거리를 면세점에서 사려는 계획도 있어, 늘 짊어지던 배낭을 화물로 보냈다. 그리곤 내 생각만으로 보스턴에서 찾아야지, 3시간 여유가 있으니 면세점에서 산 먹거리도 정리하여야겠다. 그리 생각한 것이다. 델타항공은 내 배낭을 시카고로 보내기로 한국에서부터 결정을 한 듯하다. 난 보스턴에서 짐을 찾는다는 의사를 인천공항에서 수화물 키오스크를 도와주는 직원에게 부탁했지만 말이다. 시카고행 비행기 시간이 다가왔고, 게다가 구제역 포스터를 본 루미씨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늘 이게 문제다. 정신을 차렸어야 하는데 말이다.
공항경찰에게 Where is my bag?을 왜 치며 에스코트 플리즈를 외쳐도 손짓으로 여기 가면 찾을 수 있다고, 거기에 내 가방이 있다고 한다. 화가 나는 건 이 때는 시간이 아직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내 수화물카드를 보고 추적을 했으면 되었을 텐데, 어느 누구도 그냥 손짓으로 저기로 가라고만 한다. 스트레이트, 라이트, 레프트. 구제역 포스터 앞의 공항경찰 1, 안내데스크의 공항경찰 2 그리고 물어물어 찾아간 내 가방이 있다는 그곳의 공항경찰 3. 모두 수화물표를 확인하지도 않고, 그저 자기들에게 없다며, 끝.
루미씨는 는 그때 겨우 든 생각이 일단 시카고행 비행기를 탄 후, 배낭을 시카고로 보내라고 하자. 그래서 뛰었다. 왜 그리 보스턴 공항이 넓은지. 엘리베이터는 왜 그리 느린지. 다시 환승 공항 검색대에 들어서 미친년처럼 사람들을 제치고, 익스 큐즈 미. 아임 레이트. 라며 직원을 앞세워 밀치고 들어갔다. 탈 수 있다고.... 그래서 뛰고 또 뛰었다. 루미씨가 도착했을 때, 담당자는 철수했지만. 시카고행 비행기는 아직 계단을 걸치고 있는 게 보였다. 그래서 그냥 줄을 풀고 들어갔다. 거의 비행기 문 앞에 다 왔는데, 삐빅 하더니 담당 직원이 나오며 A-17에 가서 수속을 밟고 오란다. 거기가 어디야? 훼어 이즈 A-17? 또 손으로 가리킨다. 우리나라 공항은 직원들이 알아서 척척해주는데, 여기는 그냥 손으로 가리키기만 한다. 저기.... 얘네들도 우리나라에 오면 당해봐야 하는데. 그렇게 A-17에 선 외국인들을 밀치고 익스 큐즈미. 아임 레이트를 외치며 들이밀었다. 드디어 오더가 났고 되돌아가니, 비행기는 없었다.
가방도 잃어버리고 비행기도 놓치고, 다시 항공사 담당자에게 가서 어설픈 영어와 번역기를 돌리며 항의를 했다. 가방을 찾다 이렇게 늦었다. 공항 경찰이 여기, 저기 있다고 했는데, 없다. 오전 10시 반에 도착했는데, 이러이러한 이유로 비행기를 놓쳤다고 했고, 그녀는 루미씨의 수화물표를 보더니, 간단한 검색만으로 가방은 시카고행 비행기로 갔다고 한다. 오 마이 것! 하지만 더 이상 뛰자 않아도 되는 루미씨는 욕은 삼킬 만큼 안도와 함께 여유가 생겼고, 원하면 호텔을 잡아줄 수도 다음 비행기를 예약해 줄수도 있다고 하는 항공사의 제안에 루미씨는 시카고행 다음 비행기표를 선택했다. 비용은 물론 NO Pay.
이젠 숨만 고르면 되는 시간이다. 6시간, 조금 늦기는 했어도 가방도 찾고, 비행기표도 받았다. 사촌은 이제야 전화를 받으며, '괜찮아 언니.'라고 한다. 40여 년 만에 만난 사촌동생에게 미안하고 고맙다.
야호 이제 2시간 후면 공사다망했던 보스턴을 뜬다. 그나마 한 *의 책과 항공사의 근사한 기내식 그리고 최신 영화가 위안이 되는 하루였다. 앗 아직 하루가 다 가지 않았군. 시카고에서는 예순 살 루미씨의 삶이 좀 나아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