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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Dec 18. 2023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To. 콩콩.   

사실 오늘, 하늘에서 내리는 비처럼 계속 내 안의 물이 흐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어제는 돌아가신 엄마를 떠 올리며, 온라인 교육 카메라가 켜진 것을 잊고 울기도 했구요. 이젠 다 울었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아침부터 마음이 울적합니다. 뭔가 툭 건드리기만 해도 쏟아질 태세였지요.


오늘의 눈물은 저에게 흘리는 것입니다. 저는 교육을 받으며, ‘아, 또 뭔가를 하려고 하는구나?’ ‘너. 또 까먹었구나. 뭔가 하려 할수록 무릎이 꺾일 걸, 아직도 모르니?’ 하고 자문자답합니다. 맞습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때가 있었고, 무엇을 하든 안 될 때가 있지요.

 

그렇게 마지막 교육을 마치고, 하똘이와 저녁 산책을 나왔습니다. 누군가의 전화가 오면 받을 요량으로 무음모드를 전환하고.... 하똘이가 고양이 은신처를 찾아 누비는 중 콩콩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마침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브라이언 헤어, 버네사 우즈, 이민아 역, 2021, 출판사: 디플롯)를 읽은 참입니다. 읽는 내내 지역에서 환경운동을 하는 콩콩이 생각났습니다. 아, 콩콩은 이렇게 다정하게 활동을 했지. 나는 뭘 그리 전투적으로 살았을까? 늘 긴장하고, 과업을 수행하고, 화를 내고 그러고도 빚을 지고...


콩콩에겐 아무렇지 않은 듯 전화를 받았지만, 하루종일 찔끔거렸던 눈물이 왈칵 쏟아집니다. 책 읽으며 콩콩 생각했어요. 다정함 하면 Rumi샘이지요. 전생의 소리처럼 들립니다. 내가 다정함이 있었다구요? 우리 가족은 늘, 더... 더... 더... 부족... 부족... 부족... 이렇게 살았는데... 이제야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다시 깨닫는 참이었는데...


책은 제주에서 검색으로 찾아간 정신의학과 의원에서 빌렸습니다. 사무장님(남성)께 책 빌려 가도 될까요? 네. 아... 이렇게 다정할 수가... 정신의학과가 몇 개 있었지만, 올해 개원했고, 오후 4시까지만 진료를 하고 진료과목은 Only 우울증. 이런저런 정신 관련 병들을 나열한 병원보다 신뢰가 갔습니다. 일찍 문을 닫는 것 또한, 그리 돈을 벌 심산이 아니군. 이런 계산이 나왔구요. 오, 젊은 여성 전문의는 언니처럼 이야기를 들어줍니다. 그러셨어요. 아이고. 힘드셨겠네요. 주책맞게 또 눈물이 나옵니다. 징징징, 저는 강물처럼 선생님에게 말합니다. 정말 병원과 딱 어울리는 책입니다.


동물들의 자기 가축화를 실험하고 연구한 후, 인간의 ‘자기 가축화’ 연구로 이어집니다. 결국 인간의 ‘자기 가축화’는 소통과 친화력으로 가능했고, 지금의 인류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자기 가축화’가 자칫하면 타 집단과의 차별화라는 그림자로 치달을 수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유세를 예로 들며, 네안데르탈인이 멸종하고 호모사피엔스 인류가 살아남은 이유를 이야기합니다. 결국 인간이 살아가는 방법은 ‘자기 가축화’에 ‘다정함’이란 기반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의 짧은 소견이지만, 직접 읽어보시면 방대한 연구로 많은 사람이 참여했으며, 다양한 실험을 기반으로 한 과학책입니다. 놀라운 건, 과학자들의 문장력입니다. 저조차 푹 빠져 읽을 정도로, 체계적이면서도 다정한 글입니다.


다정한 콩콩에게 아주 사소한 부탁을 했습니다. 그곳에서 쓰던 치약을 보내달라는... 참 우습지요.  실수투성이 삶에 대해 후회를 하던 참에, 치약을 보내달라고 하다니요. 그래도 이는 닦으며 살아야 하니까요. 그렇게 저는 제가 살던 이웃 동네로 귀농한 친구로부터 ‘다정함’을 받아, 살아볼 힘을 얻습니다.


대한민국 농촌 역시 더 이상 집단뒤에 숨어 거친 숨을 몰아쉬기보다는, 개인의 소통능력과 친화력(= 다정함)을 되찾는 노력이 필요한 때입니다. 결국 다정함이 살아남으니까요.


                                                                                                                                                        From. Je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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