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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Dec 15. 2023

내 안의 아이

6살 Rumi


어릴 때 서울 안암동에 살았습니다. 아주 어릴 때는 큰 집과 같이 살았던 것 같은데, 이후 아버지는 사 남매를 엄마에게 맡기고, 일본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릴 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습니다. 그리곤 엄마와 사 남매 그리고 외할머니와 막내 이모가 함께 가운데 마당이 있는 주인집과 마주한 방 2칸에 세 들어 살았습니다.


주인집엔 젖먹이 아기가 있는 아주머니가 있었습니다. 주인집 사람들이 누구인지는 잘 몰랐고, 저는 아기가 예뻐 아기와 놀아주곤 했습니다. 아기는 젖살이 오른 아주 통통한 남자아이였습니다. 어느 날, 아주머니가 저를 붙잡고 엉엉 웁니다. 아기가 없습니다. 늘 아주머니 무릎이나 등에 있던 아기가 없습니다. 대신 아기 사진을 품에 안고 아주머니는 엉엉 웁니다. 루미야, 아기 보냈어, 아기 부잣집에 보냈어. 저는 그게 무슨 소리인지 잘 몰랐습니다. 제가 5살 때니까요. 그저 아기가 보고 싶을 뿐입니다. 할머니와 엄마가 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아기를 다른 집에 주었다고... 아줌마는 며칠을 그리 울더니, 조금 후 그 집을 나갔습니다. 저는 이미 아기가 없는 아줌마는 별 흥미가 없어져, 아줌마가 한 참을 안 보인 후에야, 집에 없다는 것을 압니다.


할머니가 살림을 도맡아 하고, 엄마는 일을 나갑니다. 아무리 할머니가 좋아도, 엄마를 기다립니다. 오빠들은 초등학교에 다니고, 언니는 입학은 했지만 신장병이 생겨 거의 학교를 가지 못하고 집에 누워있습니다. 저는 막내로 6살, 언니는 이른 생 7살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엄마는 아빠를 유학 보내고도 큰오빠는 근방의 사랍학교에 보냈답니다. 작은오빠와 언니는 공립 초등학교를 보냈구요. 장남 찬스는 큰 오빠에게 평생 따라다니는, 하지만 별 영양가는 없는 그림자였습니다.

엄마는 아빠가 있는 일본으로 몇 달 동안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저는 아직 어려, 당일이 닥쳐서야 상황을 깨달았습니다. 아니 짐을 싸는 며칠 동안 알아차릴 수도 있었지만, 설마...라는 근거 없는 희망을 가졌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중에도 엄마는 저보다는 아픈 언니를 두고 가는 게 더 마음 아파했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그날, 저는 엄마를 배웅하러 공항에 가는 이모와 오빠들을 따라가겠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엄마는 방에 있는 언니를 보며 눈물을 훔치고, 발악하는 저와는 거리를 두고 집을 나섭니다.


엄마...라고 부르며 뛰어가다 할머니에게 붙잡혔고, 저는 할머니 손을 꼬집고, 깨물며 발버둥을 칩니다. 나 오빠처럼 공항까지 가게 해줘. 누구도 믿지 못할 말을 해댑니다. 버둥거리다 할머니가 놓치면 엄마에게 뛰어가고, 그러다 또 잡히고 그러면서 생애 6년 동안 들어봤던 갖은 욕을 할머니에게 해댔습니다. 엄마는 가다가 돌아보고, 가다가 돌아보고... 엄마. 엄마. 엄마와 오빠들은 점점 멀어지고, 저는 오랜 시간(제 생각에) 패악을 쳐댑니다. 어느새 동네 사람들이 나와서 저를 말리기도, 구경하기도 합니다. 제게 뜯기고 물린 할머니 모습은 말이 아닙니다. 그렇게 엄마와의 기약 없는(6살 아이 마음에) 이별은 시작되었습니다.

 

엄마는 할머니에게 살림살이를 위한 돈을, 사 남매에겐 각각 용돈을 주고 갔습니다. 그렇게 패악을 부렸던 6살 막내딸은 그 용돈을 아껴, 콩나물값으로 할머니께 드릴 정도로 이 날의 패악을 빼곤, 막내 같지 않은 막내였답니다.


저는 이 글을 쓰며, 난리법석을 치던 6살의 저와 함께, 재주 많고 인정 많고 아름다웠던 엄마를 생각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주변머리 없고, 소심했던 아빠가 살림을 하고 엄마가 유학을 갔더라면, 대한민국이나 저나 좀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엄마는 지금의 저처럼 웅얼웅얼거리는 이상한 사람이 되어갔습니다. 저 또한 엄마를 그리 만든 여러 요인 중 하나임을 이제야 압니다.


제 마음이 엄마에게 닿기를, 너무 늦지 않았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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