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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Dec 13. 2023

耳順,  마지막 심리상담

2023년 12월 13일.  제주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검색했습니다. 이미 정신의학과 약은 먹고 있는 상태이므로, 제겐 상담치료가 필요했습니다. 근방에도 심리치료, 가족상담이란 키워드에 대한 답은 많았지만, 저는 한 가지 키워드로 검색했습니다. ‘정신분석’


 정신분석에 대해 잘 모르지만, 받아보고 싶다는, 그리고 사설 민간단체에서 주는 심리상담보다는 정신분석기관에서 주는 상담의 격이 높을 것이라는 나름의 공식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검색한 곳이 바로 선생님과 만나게 된 곳입니다. 10월 20일 첫 상담일. 기차를 타고 전철을 갈아타며 도착한 곳은 멋진 정동길에 있었고, 거리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첫 상담을 기다리는 홀에서 그림책이 눈이 띱니다.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조던 스콧글, 시드니 스미스 그림. 김지은역, 출판사: 책읽는 곰) 나도 강물처럼 말하고 싶은데...  예전엔 그렇게 말했는데...


상담실에 막상 들어가서 저는 말보다 혹은 말을 하며 징징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선생님은 그 어떤 사람보다 기다려주시고, 공감해 주셨구요. 저런, 어떻게, 휴.... 선생님이 직접 발성하진 않았어도, 저는 깊이 저의 마음에 공감하는 사람을 만났고, 감사했습니다. 제가 살던 곳에선 누구도 그렇게 제 마음을 알아주지 못했으니까요. 혹자는 참 철딱서니 없다. 다들 그렇게 사는데, 유별이야. 그럼에도 제 입을 닫게 만든 가장 위력적인 반응은 눈빛이었습니다. 아무것도 공감되지 않는다는 눈빛. 뭐가 문제야 도대체!


돌이켜보니 10월 20일, 첫 번째 상담을 하고 매주 1회 연이어 5회에 걸쳐 상담을 한 후, 11월 13일, 저는 37년 만에 삶의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곳이 제 마지막 터전이라고 생각했고, 아직도 용기가 남아 있을 줄 몰랐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제가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많이 어려웠을 거라는, 그리고 그렇게 사는 것은 괜찮지 않다는 것을 알도록 해주었습니다. 저는 몰랐습니다. 아니 잃어 벼렸습니다. 주변 사람들 친구들 조차 다 그렇게 사는 거라고, 한숨을 쉬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런데는 제 문제도 있습니다. 잘살아보려고 했으니까요. 나? 괜찮아. 나? 행복해! 하지만, 물리적 폭력이 드러나며, 그동안 덮어두었던 일상적인 언어적, 사회문화적 폭력이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선생님도 생각나시지요? 이사를 하고도 페이스톡으로 선생님을 만나면, 징징 울며, 제가 왜 여기 있지요? 하던 시간말입니다. 2주 차 까지는 문득문득 내가 뭘 하는 거지? 여기가 어디지? 하며 낯선 곳에서의 혼란을 고스란히 드러냈으니까요. 3주 차가 되니, 제가 상담 중 가장 편안한 표정이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네. 이제는 여기가 제가 사는, 숨 쉬는 곳입니다. 심지어 아름답고 편안합니다.


상담부터 제주살이까지 2달 만에 이러한 변화가 생겼다는 것이 무척 놀랍습니다. 그리고 많은 부분 선생님의 도움이라고 여깁니다. 제가 그곳에서 지지고 볶으며 계속 있었다면, 변화를 꿈꾸지도 못했을 겁니다. 아마 지금쯤 우울증에서 조현병으로 병명이 바뀌고, 결국 개인의 탓으로 그리 된 불쌍한 여성 중 하나가 되었거나, 아마 죽었을 겁니다.


어느 글에서 ‘우울증은 사소한 모멸감이 쌓인 것’이라고 하더군요, 물리적, 언어적, 사회문화적 폭력이 아무리 사소하게  다가오더라도, 누군가인 ‘나’에게 그 사소함이 쌓이면, 삶을 흔들기에 충분합니다..


상담을 더 받고 싶지만, 온라인으로 해야 하는 상황이나 제 경제 상황 등이 여의치 않습니다. 그래도 참 신중한 분에게 제 마음을 강물처럼 말할 수 있어서 감사했고, 제가 가진 좋은 점들을 오래간만에 들려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마지막 상담 전에 감사한 마음을 이렇게나마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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