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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Jan 07. 2025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진 리스,  웅진씽크빅, 2008년. 윤정길 역

1847년 첫 출판된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의 전편인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진 리스는 문단에서 홀연히 자취를 감춘 뒤 9년 후인 1966년, 이 책을 들고 등장한다.      


1894년 영국령 도미니카에서 영국인 아버지와 영국계 크리올(유럽혈통으로 식민지에서 태어난 사람)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진 리스는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를 읽고, 크리올 여성인 버사를 광녀(狂女)로 묘사함으로써 감춰진 진실을 외면하고 제국주의적 사상과 가부장 문화에 젖은 영국 중심 소설이라는 점에 분노한다. 처음엔 제인 에어의 후편을 쓰려했지만, 진 리스는 문제 덩어리, 미친 크리올 여자인 로체스터 부인 ‘버사’에게 생명을 주어 아름다운 앙투아네트로 탄생시키며 전편이 되었다. 이 책에서 리스는 제국주의와 가부장 제도가 여성을 타자화하며 파멸로 몰아가듯, 그것을 행사하는 주체인 남성도 희생자로 만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의 시대적 배경은 1839년 – 1845년이다. (1833년에 영국에서 노예해방령이 선포되었고, 영국 식민지였던 자메이카는 1834년 노예해방이 이루어진다.) 이때 노예를 통해 사탕수수 재배로 대농장을 경영하던 많은 노예주, 즉 식민지 백인들은 설 자리를 잃는다. 「제인 에어」에서 광녀로 나오는 버사 또한 영국 본토 태생 로체스터와 자메이카에서 결혼한 후, 그의 아버지와 형이 죽으며 영국 본토의 유산을 상속받은 로체스터에 의해 영국으로 오게 된 크리올 여성이다.


그녀는 왜 손필드 저택의 다락방에서 광녀가 되어 갔을까? 단순히 그녀의 크리올 어머니가 실성한 채 죽어간 여정을 따르는 건가? 리스는 당시의 뿌리 깊은 남성 중심 사회에서 ‘버사’에게 영향을 미쳤을 여러 가능성을 조합하여 글을 써나간다.      


대농장주였던 친부의 후처이며 크리올 여성인 앙투아네트의 어머니는 남편이 죽자, 가난의 늪으로 빠져든다. 앙투아네트와 몸이 아픈 아들 피에르와 함께 그녀는 쿨리브리 저택과 함께 무너져 간다. 새아버지가 된 메이슨 씨는 노예해방 기 흑인들의 반감을 직감한 어머니의 조언을 듣지 않았다가, 해방된 흑인 노예들의 습격을 받는다. 그들이 지른 불로 집이 불타며, 앙투아네트의 가족은 겨우 도망을 치지만, 몸이 아팠던 동생 피에르는 죽고 어머니는 제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러한 어머니를 새아버지 메이슨 씨는 간병인이 딸린 작은 집에 가두고, 자신의 길을 간다. 어머니는 간병인들에게 폭력과 성적 학대를 당하며 광녀(狂女)로 손가락질받으며 죽어간다. 수녀원에서 지내던 앙투아네트는 그녀를 아끼던 새아버지로부터 재산을 물려받아 부자가 되지만, 영국 본토에서 그런 재산 있는 크리올 여성들과 결혼하고자 찾아온 사람 중 하나인 로체스터의 아내가 된다. 하지만 노예해방이 1833년에 된 것에 비해 여성의 재산권은 1870년 「기혼 여성의 재산에 관한 법률」이 발령되기 전까지 여성이 혼인 전에 가지고 있던 모든 재산은 결혼과 더불어 남편의 재산이 되는 법에 따라 그녀의 재산은 전부 남편 로체스터의 소유가 된다.      


로체스터는 앙투아네트와 그랑부아로 신혼여행을 오지만, 피부가 하얗다는 것 외에는 공유할 것이 없던 부부생활은 결국 파탄이 난다. 광기(狂氣)가 핏속에 흐른다는 근거 없는 단정, 본토인 영국인과는 모든 면에서 다른 앙투아네트와 같은 크리올에 대한 비열한 잣대는 로체스터가 앙투아네트를 ‘버사’라고 부르는 것에서 드러난다. ‘난 버사가 아니에요.’ 하지만 로체스터는 앙투아네트의 존재를 부정하며 그녀를 ‘버사’라고 부른다. 앙투아네트의 유모인 크리스토핀은 로체스터에게 “아가씨는 가슴속에 태양을 품고 있답니다. 서방님이 조금만 아가씨를 사랑해 주세요.” 하지만 로체스터는 이를 거부했고, 앙투아네트는 결국 ‘버사’가 되어 간다.   

  

「제인 에어」에서 밤마다 유령으로 나타나는 버사는 리스의 글 말미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촛불을 들고 복도로 나왔다. 이제 드디어 나는 내가 왜 여기 끌려왔는지를 알게 되었고,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도 알았다.’(p239) 이는 「제인 에어」에서 로체스터와 제인의 운명을 바꾼 손필드 저택이 불에 휩싸이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사르가소 바다는 사르가숨이라는 바다 해초가 뒤엉켜 마치 바다 가운데 늪지대처럼 한번 발을 담그면 빠져나올 수 없는 곳으로, 사르가숨과 주검이 뒤엉킨 ‘사르가소 바다’는 버사의 삶을 그리고 아직도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가부장의 늪을 향한 은유다.


리스가 1966년에 쓴 책인 「Wide Sargasso Sea」.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2025년 새해에 나는 이 책의 두 번째 독서를 마치며, 여러 세대에 거쳐 사랑받는 명작 「제인 에어」와 함께 다른 작가가 쓴 전편을 읽는 색다른 독서의 경험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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