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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이 남쪽으로 가는 날

전지적 노인시점

by Rumi

- 리사 리드센, 북파머스, 2024. 손화수 역


스웨덴 최북단 시골마을에서 자란 작가는 할아버지가 임종을 앞두고 가족들에게 남긴 메모를 발견하며, 책을 쓰게 되었다. 아마 이 책에 등장하는 손녀 엘레노르가 아닐까 짐작한다. 시간과 공간의 흐름을 따라 노인의 심중을 읽어낸 작가의 공감력에 푹 빠지게 되는 작품이다.


거의 90살이 된 보는 재가 요양서비스를 받으며 자신이 태어난 집에서 반려견 식스텐과 살고 있다. 치매를 앓던 프레드리카(부인)는 3년 전, 국가가 운영하는 치매요양병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보가 더 이상 아내를 돌볼 수 없이 쇠약해졌기 때문이다. 치매 등으로 생활에 위험 요소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최대한 자신의 집에서 생활하며 임종할 수 있는 복지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복지선진국 스웨덴의 면모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5월 18일. 보는 아들 한스에게 화가 나있다. 반려견 식스텐을 더 이상 보가 기를 수 없다고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엘크 사냥개인 어린 식스텐을 데려오면서, 평생 책임지기로 약속했는데 그런 약속을 지킬 수 없고, 더욱이 내 일을 내가 결정할 수 없다니…. 어린 시절 이후로 왜 보호자가 생겼는지, 보는 이상하고 두렵다. ‘한스는 너무 빠르다. 좀 천천히, 내가 이해하고 말할 시간을 주면 좋으련만…’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한스는 모른다.’ ‘ 이건 내 집이고 이건 내 침대이고 내 개인데, 왜 내게 물어보지 않는 거지? 내가 아무것도 못한다고 생각하는군, 쳇 그럼 나는 도대체 뭐지?’


나의 경우도 부모님이 입원을 하게 되며, 보호자가 되었다. 보호자분 이리 오세요. 네? 오십이 다 되었어도, 내가 왜 부모의 보호자가 되는지,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런데 보호자가 된 후로의 나는, 한스보다 더 빠르고 과감하게 부모 生의 가지를 쳐 나갔다. 아주 확신에 차서, 깔끔하게…. 이제 와서 생각하면 그저 뭔가를 처리하기 바빴던 듯하다. 부모가 돌아올 수 없는 길을 어렵게 가고 있는데, 나는 부모의 生을 처리하고 있었다니…. 보가 마지막.숨을 몰아 쉬던 날 ‘ “이렇게 오래 걸리는 게 정상인가요?” 한스가 나직이 말했다. ‘내가 빨리 죽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것일까?’ 나는 그에게 짐이 되어버린 것 같은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p447). 아마 우리 부모님도 그렇게 느끼셨으리라.

큰 이상을 품고 목표를 향해 돌진하거나, 사회변혁을 위한 행동대원이 되진 않았지만, 보는 열심히 살았고, 프레드리카와 한스를 사랑했으며, 친구 투레와 깊은 우정을 맺었다. 그리고 그의 식스텐. 보는 마지막 인사로 한스에게 나직이 말한다. ‘너도 알다시피, 난 네가 자랑스럽단다’(p449).


그리고 10월 13일, 보는 자신이 태어났고 프레드리카와 함께 한스를 낳고 살던 집의 부엌 침대(한스가 얼마 전 환자용 침대로 바꾼 것)에서, 목과 가슴엔 잉리드가 덮어준 프레드리카의 스카프, 배 위에 놓인 식스텐의 머리 그리고 어깨 위엔 묵직한 한스의 손을 느끼며, 떠난다. 남쪽으로 날아가기 위해 두루미들이 모여드는 소리를 들으며….


이전의 많은 책들이 노인을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점으로 쓰였다면, 이 책은 노인 보가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글을 이끌어 나간다. 어느새 나는 노인(보의 아버지, 보는 한 번도 그를 아버지라 칭하지 않는다.)을 증오하는 어린 보가 되고, 프레드리카와의 잔잔한 사랑을 나누는 청년 보, 투렌과 우정을 나누는 중년의 보 그리고 죽음과 마주한 노인이 되어 세상을 바라본다. 이 책을 읽고 나를 포함한 노인을 그저 나이로 구분하여 단정하기보다는 ‘개별성이 존중되는 고유한 존재’로 바라봄으로써, 노인의 시간이 '존중과 공감'의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갖는다.


※ 한용운 님의 시 '사랑하는 까닭'이 책을 읽는 내내 떠올라, 표지와 함께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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