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일상 & Must

내 반감의 시발점은 ‘먹는 것’이었다.

by Rumi

친구가 온다고 할 때부터, 반갑기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평소에도 무엇을 해야만 하는(must) 게 많은 친구는(정작 본인은 스스로가 유연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동행하는 친구들의 걸음을 멈추게 하곤 했다. 담배를 피우기 위해, 사진을 찍느라 혹은 자기 속도로 여유를 부리느라. 그런 친구의 Must 목록에 한 가지가 더 생겼다. 건강을 챙기기 위한 '먹는 것'의 Must.


그래도 나를 보러 바다 건너 이 먼 곳까지 온다니,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친구를 맞이하자고 마음먹었지만 그런 마음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었고, 심술이 난 나는 2박 3일 동안 친구에게 화살을 날린다.

그러고 보니 이런 불편한 마음은 얼마 전 음식과 관련된 단체의 지인들이 왔을 때와 비슷하다. 아주 간단한 가재도구만 있는 주방에서 그녀들은 별 걸 다 만들어 낸다. 요리하는 것을 번거로워하고, 최대한 간단하게 먹는 주의인 나는, 다른 이들이 그렇게 분주하게 주방에서 뭔가를 하는 것도 불편하다. 좁은 주방이니 여러 사람이 뭔가를 할 수도 없다. 당연히 늘 하는 사람이 뭔가를 끓이고, 썰고, 지지고 볶고, 그냥 먹기만 하는 사람은 잘 먹고, 말치레나 하고... 나는 여행 온 마당에 '일상과 Must'를 가져온 그녀들이 미웠다.


올레길을 걸으러 온 친구들이 하루를 묵어가는 날, 저녁을 먹고 왔음에도 올레길에서 캐온 쑥을 부침개로 먹는다고 한다. ‘너희 집에 가서 먹어. 여기서 부산 떨지 말고. 우리 그냥 앉아서 차 한잔 마시자.’ 내 친구라서 인지 그녀들도 고집에 세다. 기어이 부침가루를 사다가 쑥 부침개를 해 먹는다. ‘**야, 너도 먹어봐.’ 나는 이 친구들도 미웠지만, 1:3이라 참았다. 그런데, 1:1로 붙은 친구에게는 기어이 화살을 쏘고야 만다.


누군가는 이런 풍경이 풍요롭고 정겹다고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아니다. 나는 그녀들의 너덜너덜(^^)한 일상과 족쇄인 Must가 내 공간에 버젓이 들어오는 게 싫고, 나에 대한 배려가 없는 그녀들이 밉다. ‘내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나’를 위한 배려를 바라는 게, 잘못된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그녀들은 나에게 묻지도, 그렇다고 내 눈치를 보지도 않는다. 이게 뭐지?


그래서 앞으로 누군가(가족, 지인, 친구 등) 내게 온다고 하면, 나는 이렇게 말하려 한다. 당신들의 일상을 내게 가져오지 말길. 여긴 내 일상이 있으니. 그리고 Must 없이 오길. 며칠 그거 없다고 큰일 날 거 없으니. 혹여 일상도 Must도 포기 못 한다면, 나와는 술 한 잔만 하고 나머지는 알아서 일상 & Must와 지내길...


친구야. 다음엔 다른 곳에 숙소를 잡자. 일상 & Must는 숙소에 두고, 술 한 잔 하러 가볍게 나오렴.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