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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짓 존스의 일기:새로운 챕터

그녀가 변했다.

by Rumi

마이클 모리스 감독(2025)


삶에 치여 이리저리 부딪히며 찌질하면서도 사랑스러웠던 브리짓 존스. 하지만 새로운 챕터에서의 르네 젤위거는 몹시 낯설게 다가온다. 여전한 미소, 걸음걸이, 말투, 옷 등 그녀를 둘러싼 겉모습은 디테일까지 나이 든 브리짓 그 자체다. 하지만 그녀는 변했다.


배우는 감독의 의도를 연기로 펼치는 자이니, 이번 영화의 변화는 전적으로 감독에 의한 것이리라. 전작 1,3편은 샤론 맥과어이, 2편의 경우 비번 키드론으로 여성 감독이었는데 반해 이번 영화는 남성 감독 작품이다. 남성이 도대체 브리짓 존스를 어찌 연출했을지가 궁금하던 차, 내 걱정이 기우(杞憂)가 아니었음을 확인한 시간이었다.


4년 전, 변호사로 활동하다 출장 중 폭탄테러로 죽은 남편을 그리워하며 주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다른 남자에게 곁을 주지 않고, 아이들과의 생활에 전념하는 브리짓 존스. 하지만 이후의 내용은 어찌어찌하여 새로운 남자를 만나고, 사랑하고, 상처받고, 헤어지지만 또 어찌어찌하여 진정한 사랑을 찾는다는 내용의 로맨틱 코미디이다. 하지만 전작에서는 브리짓 존스라는 여성의 삶을 중심으로 영화가 전개되었다면, 이번 영화는 브리짓 존스를 아내,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중심으로 감독의 세계관을 지극히 성적인 농담과 '새로운 챕터'라는 명목으로 얼버무리고 있다.


그간 나에게 위안을 주던 브리짓 존스는 커다란 장애물을 멋지게 극복하던 사람이 아니다. 그녀는 삶의 자잔한 돌에 자주 걸려 넘어지고, 어찌할 바 몰라하고 징징대며 털고 일어나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팔자걸음으로 터벅터벅 나아가던 여성이었다. 브리짓 존스를 저렇게 나이 먹게 하다니. 내가 사랑한 그녀는 다른 나이 듦이어 하지 않나? 그럼 내가 바라는 브리짓 존스의 나이 듦이란 무엇일까?


1. 변호사로 출장 중 분쟁지역의 폭탄테러로 죽은 영웅적인 남편은 그녀를 나와 분리시키는데 한몫한다. 훌륭한 남편을 못 잊는 싱글 맘이 아닌, 남편을 백그라운드로 삼지 않는 엄마였어야 한다.

2. 유능한 방송국 PD였던 그녀. 육아를 위해 일을 그만둔 경단녀지만, 전화 한 통화로 복귀한다. 이게 가능할 정도로 칠칠맞은 그녀에게 빛나는 재능이 있었다니,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지 싶다. 종전의 시리즈에서처럼 브리짓 존스가 직업을 갖으려는 여러 노력을 기울이고, 좌절하는(나처럼) 여정이 아쉽다.

3. 멋진 연하의 애인 록스타를 보내다니, 그녀답지 않다. 브리짓 존스가 누구인가? 나이차이에 연연하며, 현실을 직시하는 그녀는 내게 영 낯설다.

4. 그녀에게 닥친 아픔은 남편의, 아이들 아빠의 죽음 외에는 그다지 심각하지 않은 듯하다. 심지어 보모조차도 완벽하다. 그럼 도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라는 반문이 나오게 하는 브리짓 존스라니. ㅊㅊㅊ


모처럼 가벼운 마음이고자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보았지만, 가벼워 지기보단 무겁고 혼란스러움에 나는 얼마 전부터 품은 질문을 되뇐다. '모두 그대로인데, 내가 변한 걸까?' 혹은 '모두 변했는데, 나만 그대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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