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애의 이 노래 : ‘님은 먼 곳에’>

by 성대진


음악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도 수애의 ‘님은 먼 곳에’를 들어보면,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요즘 노래풍은 아니라는 점은 단박에 알아챌 수 있습니다. 뭔가 흐느적거리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가 경쾌한 리듬에 빠른 비트의 아이돌의 음악과 전혀 다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곡조를 싸이키델릭 록이라 합니다. 제1회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나 어떡해’가 바로 이 싸이키델릭 록입니다. 히피, 반전, 저항, 마리화나 등 1960년대말부터 시작하여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적으로 유행한 장르입니다. 한국 록의 대부답게 신중현이 영미에서 유행하는 싸이키델릭 록을 과감하게 도입하여 일련의 곡을 작곡했는데, 바로 이 ‘님은 먼 곳에’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그의 대표곡이자 한국 록의 간판인 ‘아름다운 강산’도 싸이키델릭 록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i1V2F-0hjI&list=RDwi1V2F-0hjI&start_radio=1

당대를 대표하는 작곡가 신중현이 열과 성을 다해 만든 곡을 아무 가수에게 줄 리는 만무합니다. ‘님은 먼 곳에’를 대중에 널리 알린 가수가 ‘담배는 청자, 노래는 추자’라는 신조어를 만들 정도로 시대를 풍미한 김추자였습니다. 빼어난 미모에 퇴폐적이면서도 진한 허스키의 김추자가 부른 ‘님은 먼 곳에’은 노래와 가수의 궁합이 기막히게 맞았고, 당연히 초대박을 쳤습니다. 실은 당시 김추자는 부르는 노래마다 대박의 행진이었습니다. 김추자와 신중현을 일컬어 ‘황금콤비’라 부르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그 시절 라디오를 켰다하면 김추자의 노래가 쏟아졌을 정도입니다. 김추자가 활약한 시대는 월남전이 절정이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그가 부른 ‘월남에서 돌아온 김 상사’는 그 시대를 상징하는 노래로 지금까지 각종 드라마나 영화의 단골소재입니다. 졸지에 김추자는 베트남전의 아이콘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금 2030세대 중에서 김추자의 노래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실은 김추자라는 이름 자체를 거의 모릅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라디오와 거리에서 쏱아졌던 김추자의 ‘님은 먼 곳에’는 유행의 끝과 함께 생명도 다했던 것으로 봐도 무방합니다. 그러나 기적이 생겼습니다. 김추자보다 까마득하게 어린 수애가 동명의 영화 ‘님은 먼 곳에’에 출연하면서 바로 이 ‘님은 먼 곳에’를 부릅니다. 마침 이 영화의 배경도 베트남전입니다. ‘님은 먼 곳에’라는 영화는 묘한 중의적 효과를 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준익 감독은 그 시대 여성의 정서인 일편단심을 소재로 삼아 페미니티를 담아 냈다고 설명을 합니다.


물론 보는 이에 따라 과도한 신파에 남존여비를 섞었다는 비판이 있기도 하지만, 그 시대의 정서인 시어머니의 아들 편애와 며느리의 순종적 자세는 어느 정도 리얼리티를 담은 것도 사실입니다. 실은 과거 ‘아들과 딸’이라는 드라마에서 아들 귀남과 딸 후남의 차별적 대우를 사실적으로 그린 플롯에 시청자의 대다수는 공감을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영화에 대하여, 그리고 그 시대에 대한 평가에 불과합니다. ‘님은 먼 곳에’의 OST에 한정해서 본다면 세월이 흐르고 가수가 달라졌다고 하더라도 그 노래 속에 담긴 정서는 김추자의 그것과 수애의 그것은 그리 많이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아니 같습니다. 허스키에 담긴 퇴폐미가 무기인 김추자의 노련한 프로의 냄새와 청아한 목소리에 담긴 청순미가 무기인 수애의 아마추어적인 풋풋한 냄새의 차이가 분명 느껴지지만, 김추자라는 용기나 수애라는 용기에 담긴 ‘먼 곳에 있는 님에 대한 애절한 사랑’이라는 내용물은 동일함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요즘 세태는 젠더갈등이 심화되어 극한대결의 양상입니다. 그래서인지 ‘님은 먼 곳에’에서 그리는 애절한 사랑이란 뭔가 오글거리는 인상마저 듭니다. 그럼에도 결혼보다는 동거, 그리고 이혼이 뉴노멀인 서양을 보노라면 먼 곳에 있는 님을 그리는 사랑이 역설적으로 진한 갈망의 대상이 되는 느낌적 느낌입니다. 실은 인간에게 있어 사랑이란 DNA에 깊이 박혀있는 원모세포가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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