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가 성숙했다는 지표 중의 하나가 직업 자체의 멸칭을 없애나가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보험아줌마’, ‘보험쟁이’, ‘보험모집인’ 등의 멸칭으로 불렸던 보험설계사를 이제 현실은 물론 보험업법에서도 ‘보험설계사’로 규정하는 것이 그 실례입니다. 당당하게 세금을 납부하는 시민을 멸칭으로 부르는 것은 해당 직종에 종사하는 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며, 사회의 미성숙성을 방증하는 것입니다. 같은 이유로, ‘사법서사’, ‘대서방’, ‘대서업자’ 등의 멸칭으로 불리던 법무사와 ‘간호원’ 등의 멸칭으로 불리던 ‘간호사’가 각각 개선된 것은 환영할 일입니다. 사회구성원의 화합을 위해서라도 멸칭은 개선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멸칭 외에도 보험설계사의 열악한 지위가 법률적으로도 개선된 것은 바로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 지위의 개선입니다. 과거 어느 보험회사 소속 보험설계사의 소송을 시초로 지속적으로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지만, 대법원(대법원 2000. 1. 28. 선고 98두9219 판결 등)은 일관되게 보험설계사의 근로자성을 부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열악한 보험설계사의 지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아니하고 끊이지 않았고, 마침내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일명 ‘특고’)’ 또는 ‘노무제공자’라는 이름으로 고용보험 및 산재보험에 가입이 허용되었습니다. 물론 위 명칭 자체가 근로자성을 부정하는 전제에서 부여된 것입니다. 대법원이 그 동안 근로자성을 부정한 논거는 ①보험설계사가 조회나 석회에 참석할 의무는 없으며, 일정한 업무시간이 강제되지 않는다, ②보험회사가 제공하는 교육은 위탁자의 지위에서 보험설계사의 수탁업무의 원활한 수행을 위한 교육과 최소한의 지시에 불과하다, ③보험설계사들은 제공한 업무의 내용이나 시간과는 관계 없이 보험계약 실적에 따른 수당을 지급받는다, 등의 논거였습니다.
○이 중에서 가장 강력한 논거가 바로 ③의 논거입니다. 근로자는 임금을 받고 종속노동을 하는데, 보험회사의 지점에 출근하는 것만으로는 영업이익이 창출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임금이란 실은 근로자를 통한 영업이익의 일부를 사용자와 분배하는 경제적 성격이 있습니다. 그런데 보험설계사는 고객의 1). 보험의 가입과 2). 보험료의 지속적인 납부라는 두 가지 행위가 전제되어야 영업이익을 창출할 수 있습니다. 통상적으로 근로자와 사용자는 대립적인 지위를 지니지만, 경제적으로는 영업이익의 창출이라는 동업자적 성격을 지니는데, 그 실체는 부가가치가 근로 자체로 창출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보험의 경우에는 보험설계사의 영업의 결과, 즉 고객의 보험가입과 보험료의 납부가 필수적인 전제입니다. 근로와 영업의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합니다. 그래서 근로자성을 인정할 수 없는 핵심적인 논거가 됩니다.
○다음 대법원 판결(2025. 9. 26. 선고 2024다321232(본소), 2024다321249(반소) 판결)은 본소와 반소로 구성되었습니다. 먼저 본소는 위촉계약이 해지된 보험설계사가 원고가 되어 보험대리점업을 하는 회사를 상대로 환수수수료 채무부존재확인 및 잔여수수료 지급을 구하는 것이고, 반소는 피고가 이미 지급한 환수수수료의 반환을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수수료란 흔히 ‘수당’ 또는 ‘보험설계사 수당’이라 불리는 바로 그것입니다. 원심은, 원고들이 피고로부터 지급받는 수수료는 그 전부가 ‘보험계약 모집의 대가’이지만 보험계약이 유지됨을 전제로 이를 분납받는 것임을 이유로, 이 사건 위촉계약 및 영업제규정의 수수료에 관한 내용에 따라 피고는 원고들에게 해촉 후에도 잔여수수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실적부진으로 해촉된 보험설계사의 수당은 보험회사 내지 보험대리점이 ‘꿀꺽’하는 관행에 제동을 건 것입니다. 이것에 대하여 보험설계사는 오랜 기간 불만을 표출했습니다.
○대법원은 판단을 달리했습니다. 대법원은, 보험설계사들이 수행하는 업무의 내용, 수수료의 지급방법 및 지급액수, 영업제규정의 수수료 지급기준 및 예시표상의 수수료 지급률 등을 종합하여 고려하면, 보험설계사들에게 지급되는 수수료에는 보험계약을 새로 모집하여 체결하도록 한 데 대한 대가뿐 아니라 기존의 보험계약을 유지ㆍ관리하는 대가도 포함되었을 ‘여지’가 있다는 전제로, 원고들이 피고로부터 수수료를 지급받기 위해서는 피고 사원의 지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도 ‘보인다’고 설시를 했습니다. 그러나 보험업계의 실무상 보험료에는 계약비의 항목이 있으며, 그 계약비에는 보험설계사의 ‘모집수당’ 및 ‘유지수당’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여지’를 전제로 ‘보인다’는 대법원의 결론은 보험업계의 현실을 추측의 방식으로 설시한 흠이 있습니다.
○대법원은, 원심이 원고들이 피고로부터 지급받는 ‘잔여수수료(이 사건에서는 해촉 이후의 수당)’가 보험계약 모집의 대가인지, 기존의 보험계약을 유지ㆍ관리하는 대가인지, 만약 후자라면 피고가 원고들이 해촉된 이후에도 잔여수수료를 지급하여야 하는지 여부를 제대로 살피지 아니한 채 수수료 전부를 보험계약 모집의 대가로 보고, 원고들이 모집한 각 보험계약 중 유지되고 있는 보험계약에 관하여는 피고가 원고들에게 이 사건 위촉계약이 해지된 후에도 수수료를 지급하여야 한다고 판단한 잘못이 있다는 이유로, 원심을 파기ㆍ환송하였습니다. 보험설계사의 업무 대부분은 보험의 모집에 있기는 하지만, 기존 가입자의 보험료의 수금업무도 중요한 일부입니다. 따라서 보험설계사의 수당은 기존 보험계약의 유지ㆍ관리하는 대가의 성격도 존재하기에 대법원의 결론이 보험실무적으로도 타당합니다. 또한 이러한 이유로 보험설계사의 근로자성을 부인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법원 판결>
처분문서는 그 성립의 진정함이 인정되는 이상 법원은 그 기재 내용을 부인할 만한 분명하고도 수긍할 수 있는 반증이 없으면 처분문서에 기재된 문언대로 의사표시의 존재와 내용을 인정하여야 한다. 당사자 사이에 법률행위의 해석을 둘러싸고 다툼이 있어 처분문서에 나타난 당사자의 의사해석이 문제 되는 경우에는 문언의 내용, 법률행위가 이루어진 동기와 경위, 법률행위로써 달성하려는 목적,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하여 논리와 경험칙에 따라 합리적으로 해석하여야 한다(대법원 2021. 4. 29. 선고 2021다202309 판결 등 참조).
(2025. 9. 26. 선고 2024다321232(본소), 2024다321249(반소) 판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