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지 감수성과 여성 공무원>

by 성대진

○법률용어는 직관적으로 이해가능한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다음 <기사>에서 등장하는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말은 일반에 생소합니다. 성인지 감수성(Gender Sensitivity)이 생소한 이유가 있습니다. 주로 서양에서 논의되는 성에 대한 법률적 개념을 도입하다보니 낯설어서입니다. 이것은 직관적으로 ‘성의 불평등을 인지하는 광범위한 능력’으로 인식됩니다. 그런데 막연합니다. 미연방 대법원은 판례법으로 막연한 법률조문에 대하여 ‘명확성 원칙(void for vagueness)’이라는 것을 쳬계화했습니다. ‘void for vagueness’를 직역하면, ‘막연하므로 무효’라는 의미입니다. 법률조항은 천태만상의 인생살이에 적용되어야 하기에, 필연적으로 추상적이어야 한다는 숙명이 있음에도 이러한 법리가 도입된 것은 형벌이 남발될 폭탄을 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연방 대법원은 명확성의 원칙을 도입한 이유에 대하여 법률이 일반인에게 예측 가능성을 제공하고 자의적이고 차별적인 집행을 막기 위해 법의 의미가 불분명한지를 심사하는 기준이라고 설명합니다. 이것은 법이 일반인에게 공정한 고지(due notice)를 제공하는지 여부를 중점적으로 심사하며, 법 집행 당국의 자의적 판단을 방지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합니다. 쉽게 말하면 원님재판을 막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그동안 판사나 검사는 나름 공정하다는 소박한 시민의식이 있었지만, 법률가 출신 윤석열의 내란행위와 판·검사들의 부패행위를 목도한 시민들은 법을 적용하고 집행하는 집단의 도덕성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그들에 의한 수사와 재판에 대한 공정성을 회의적으로 바라봅니다.


○세간에 알려진 성인지 감수성 판례의 원조는 대법원 판결(대법원 2018. 4. 12. 선고 2017두74702 판결)입니다. 이것은 ‘법원이 성희롱 관련 소송의 심리를 할 때에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양성평등기본법 제5조 제1항 참조).’라고 설시합니다. 그런데 개별 사건을 판단하는 것에 왜 양성평등이나 성차별 문제를 해결하는 ‘정책적 목표’가 등장하는지 아리송합니다. 가령, 경제범죄가 쟁점인 판결이 ‘직접적으로’ 경제정책을 위한 것이 아님에도 유독 성희롱 관련 소송에서만 이런 목표가 판결의 기준이어야 하는지 근본적인 회의가 있습니다. 판결이 양성평등을 위한 정책적 도구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술 더 떠서 ‘2차 피해’를 막기 위하여 법리가 전개되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피해자를 보호하는 것과 실체에 대한 판결은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다음 <기사>는 ‘공무원 노조가 구청장이 노래를 한 무대에서 여성 공무원들이 '백댄서'로 나선 것에 대해 성인지 감수성 문제를 지적하며 재발 방지책 마련을 요구했다. 공무원노동조합 광주지역본부는 13일 논평을 내고 "문인 북구청장은 이번 사안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공직자의 품위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라고 사안을 소개합니다. ‘남성’ 구청장과 함께 어울린 ‘여성’ 공무원이 문제인 것이 아니라 ‘남성’ 구청장을 위하여 ‘여성’ 공무원이 ‘백댄서’로 나선 것이 ‘성인지 감수성’을 침해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여기에서 ‘남성’ 근로자나 공무원이 ‘여성’ 공무원이나 사용자에게 이런 촉구가 등장할지는 회의적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미 ‘걸크러시’라는 것이 광범위하게 퍼져서 알파걸이 찌질남을 제압하는 장면은 쿨하게 넘어가기 때문입니다.


○한국인이라면 모르기가 어려운 삼국유사에서 남녀노소가 어울려 음주가무를 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삼국시대부터 남녀가 어울려서 흥을 돋구는 장면은 어쩌면 가장 한국적인 DNA가 아닐까 합니다. 그럼에도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모호한 법리로 단죄를 하는 것은 지나칩니다. 이미 살인이나 상해 등의 범죄보다 심지어 수백, 수천억의 재산범죄보다 성폭력 등의 범죄의 형량이 더 무거운 사회가 되었습니다. 성범죄를 하느니 차라리 살인을 하라는 범죄자들의 자조마저 존재하는 사회입니다. 성인지 감수성은 그 내용 자체가 모호하기 때문에, 남자를 때려잡는 ‘도깨비 방망이’가 되었습니다. 피해자가 아니라 불이익을 받는 외관을 지녀도 일단 여자라면 당당하게 가해자로 지목받는 남자를 ‘처절하게’ 응징할 수 있는 우려마저 존재합니다. 여기에서 미연방 대법원의 ‘명확성 원칙(void for vagueness)’이 왜 탄생했는가를 새겨야 합니다.


<기사>

공무원 노조가 구청장이 노래를 한 무대에서 여성 공무원들이 '백댄서'로 나선 것에 대해 성인지 감수성 문제를 지적하며 재발 방지책 마련을 요구했다. 공무원노동조합 광주지역본부는 13일 논평을 내고 "문인 북구청장은 이번 사안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공직자의 품위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난 6일 광주 동강대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KBS 전국노래자랑 광주 북구편' 녹화 현장에서 문 구청장이 트로트 곡을 부르며 무대에 올랐고, 여성 국·과장급 간부 공무원 8명이 가발과 선글라스를 착용한 채 백댄서 퍼포먼스를 펼친 것을 지적한 것이다.


노조는 "이번 사안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공직자의 품위와 성인지 감수성, 건강한 조직문화를 되돌아보게 하는 중대한 문제"라며 "과거 유사한 사례가 있었음에도 개선되지 않은 채 또다시 공무원을 들러리로 세워 자존감을 훼손한 점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421/0008602514




<대법원 판례>

법원이 성희롱 관련 소송의 심리를 할 때에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양성평등기본법 제5조 제1항 참조). 그리하여 우리 사회의 가해자 중심적인 문화와 인식, 구조 등으로 인하여 피해자가 성희롱 사실을 알리고 문제를 삼는 과정에서 오히려 부정적 반응이나 여론, 불이익한 처우 또는 그로 인한 정신적 피해 등에 노출되는 이른바 ‘2차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하여야 한다. 피해자는 이러한 2차 피해에 대한 불안감이나 두려움으로 인하여 피해를 당한 후에도 가해자와 종전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경우도 있고, 피해사실을 즉시 신고하지 못하다가 다른 피해자 등 제3자가 문제를 제기하거나 신고를 권유한 것을 계기로 비로소 신고를 하는 경우도 있으며, 피해사실을 신고한 후에도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 그에 관한 진술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와 같은 성희롱 피해자가 처하여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른 증거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

(대법원 2018. 4. 12. 선고 2017두74702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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