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연말연시 유감>

by 성대진

10 여년 전부터 크리스마스 캐롤이 거리에서 들리지 않는 사연을 거의 모든 매체들이 다뤘습니다. 그러다가 이제는 아예 다루지 않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식상하기 때문이라 봅니다. 이제 연말이라도 크리스마스 캐롤이 들리지 않는 시대가 본격화 된 것입니다. 실은 교회의 크리스마스 트리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전 세계적으로 교회를 나가는 인구 자체가 지속적으로 줄고 있습니다. 유럽에서 교회를 숙소로 변경하는 움직임은 이미 오래된 사연이기도 합니다.


거기에 발을 맞춰 연말연시가 되면 거리에 취객이 넘치는 풍경도 이제는 저물고 있습니다. 보수 문인의 대명사가 이문열이라면, 그에 필적할만한 진보 문인의 대명사는 단연 황석영입니다. 이들이 써내려 간 그 많은 작품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음주 장면이 그렇습니다. 둘은 진영은 달라도 음주를 통하여 정을 주고 받는 아날로그 향수를 끊임없이 자극하였습니다. 실제로도 이들의 활동이 절정을 이룬 1980년대에는 연말연시가 되면 각종 망년회, 송년모임 등의 이름으로 술자리가 잦았습니다. 그래서인지 각 방송국은 과도한 음주를 자제하는 캠페인이 마치 약방의 감초처럼 방영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한국도 금주 내지 절주의 글로벌 트렌드를 따르고 있습니다.


건강이 중요하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그러나 스마트폰의 광풍으로 급격히 개인주의가 팽배해지면서 모임 자체가 이제는 사어가 되는 풍경이 아쉬울 뿐입니다. 불교에서 파생한 ‘시절인연’이 각종 SNS에서 남용되면서 모임 자체가 이제는 부담으로 격하된 느낌적 느낌입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Homo Societas)라는 명제가 이제는 어색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나만의 공간을 구축하려는 시도는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인간관계에 목을 매는 것은 비효율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체의 구축은 타인에 대한 배려에서 온다는 지극히 평범한 사실을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사회보험은 대표적으로 사회공동체가 각 개인의 복지를 구축하는 공간입니다. 그런데 이 사회보험은 타인에 대한 배려와 공동체의식이 없다면 지속성이 불가능한 장치입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패자부활전이 없다면 사회 전체가 지속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스파르타의 몰락에서 알 수 있듯이, 역사적 교훈이기도 합니다. 루저나 도태남으로 불리는 찌질이들이 짓는 농사와 어로, 그리고 공장 등지에서의 생산활동으로 우리의 공동체는 굴러갑니다. 성공하지 못한 자를 비난하고 배제하면 궁극적으로는 소멸의 길로 흐릅니다. 우리는 유독 실패자에 대하여 가혹하고 조롱을 하는 불합리한 문화를 지녔습니다. 공동체의 복원은 불가능한 것인지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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