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네의 이 노래 : ‘터질거예요’>

by 성대진

어려서 참 부러웠던 부부가수가 김씨네였습니다. 부부 모두 김씨였고, 남편 김효원은 훤칠한 미남이었고, 부인 김동자는 세련되고 늘씬한 미녀였습니다. 그래서인지 둘은 노래 도중에 서로를 그윽하게 바라보면서 바로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세상 부러움이 없이 사랑한다는 느낌이 팍팍 묻어났습니다. 커서 꼭 김씨네의 부인 김동자와 같은 미녀를 얻어야지, 하면서 의욕을 불태웠습니다. 그러나 둘이 이혼했다는 뉴스를 보면서 동심이 박살났습니다. 김효원이 재혼한다는 뉴스를 보면서 실망감이 밀려왔습니다. 김씨네가 해체된 지 이미 40년을 넘어 50년을 달리고 있음에도 이들의 이별이 아팠던 건 이들이 부른 바로 이 노래가 아직도 귓가를 맴돌기 때문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8AOlFGIJYY&list=RDw8AOlFGIJYY&start_radio=1

그런데 실은 이 노래 ‘터질거예요’는 번안곡입니다. 지금은 거의 사어가 된 번안곡이지만, 당시에는 번안곡이라는 말을 방송국에서 잘 쓰지는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시청자들이 번안곡이라는 말에 거부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나저나 당시의 번안곡은 ‘외국곡’이라는 말로 저작권을 왕창 위반했습니다. 그 이전에 국내에 역량있는 작곡가와 편곡가가 세련되게 곡을 만들고 다듬지 못한 근원적인 이유도 한몫했습니다. 그리고 거대한 트로트의 물결이 새로운 실험정신을 방해하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외국곡’이라 밝히는 것이 차라리 외국곡을 표절하면서 마치 자신의 곡인 양 사기를 치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표절이라는 악마가 할퀸 상처가 무척이나 크기 때문입니다. 그 시절은 차라리 번안곡이라 할지언정 표절한 곡을 자신의 곡으로 둔갑시키지는 않았습니다.


번안곡이라 표기를 하든 말든 그 시절에는 자연스럽게 히트곡이 되었던 것에 비하여 왜 근자에는 표절곡이라면 경기를 일으키는지 아리송합니다. 그것은 인터넷이 발달하여 SNS가 활발하여 표절의 의심이 일면 벌떼처럼 몰려가서 ‘아작’을 내는 요즘과 달리 그 시절은 번안곡에 대하여 크게 문제삼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트로트 일색의 국내 대중가요에 대한 당시 20대의 반발적인 분위기가 있어서 음악감상실을 중심으로 팝송이 유행했던 것은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 근원적인 이유는 국내 가요의 질적 수준이 떨어졌다는 쓰라린 현실이 어쩌면 범인일 수도 있습니다.


슬프지만, 그 시절 노래를 빼고 리듬이나 연주만으로도 팝송이 뭔가 좋아보였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대중음악을 유행가라 부르는 것은 유행을 좇는다는 의미인데, 당시에 꾸준히 번안곡이 등장했던 사실은 대중이 번안곡이 담은 외국의 리듬을 선호했다는 의미입니다. K-pop이 세계로 퍼져서 전 세계의 인기를 누리는 요즘의 시각에서 보면 그야말로 호랑이가 담배를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 같기는 하지만, 놀랍게도 틀림이 없는 사실입니다. 여러모로 ‘다이나믹 코리아’를 느끼게 하는 번안곡의 존재입니다.

김씨네의 남편 김효원은 미국으로 건너가서 국내 가수활동은 포기했습니다. 대신 부인 김동자는 꾸준히 음악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김씨네’ 타이틀로 밥벌이를 하는 사람이 별안간 ‘김동자’라는 타이틀은 무척이나 낯설었습니다. 그래서 무려 40년 가까이 ‘김동자(김씨네)’라는 타이틀로 무대에 섰습니다. ‘소녀시대’에서 사실상 퇴출된 ‘제시카’가 꾸준히 소녀시대를 언급하는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대중가요에서 지명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웅변으로 증명하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김씨네’에서 인기를 얻은 것은 ‘부부가수’라는 타이틀과 번안곡이 인기를 누리던 시대라는 프리미엄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인데, 양자 모두 소멸한 이후에는 김동자는 대중의 뇌리에서 빠르게 잊혀졌습니다. 이경규가 연예인이 자리를 잃으면 빠르게 인기를 잃고 잊혀진다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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