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울림의 이 노래 : ‘내게 사랑은 너무 써’>

by 성대진


외국어를 배울 때 가장 쉽고도 효율적인 방법 중의 하나가 그 나라의 노래를 통해 배우는 것입니다. 리듬에 맞춰 가사에 녹아있는 외국어를 배우면 배우기 쉬운 것은 물론 쉽게 잊어버리지도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일본어를 배울 때 엔카(演歌, えんか)로 배우면 일본어가 입에 쏙쏙 달라붙습니다. 그런데 엔카의 대다수는 사랑의 산물, 즉 이별, 눈물, 아픔, 후회 등의 정서가 반복됩니다. 실은 엔카 상당수는 리듬만 다를 뿐 가사에 담긴 정서는 거의 국화빵 수준의 동어반복에 가깝습니다. 국내 트로트곡은 리듬은 물론 가사도 엔카에 영향을 받은 것이 엄연한 사실인지라 트로트곡 대다수가 엔카처럼 가사가 사랑타령으로 일관한 것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산울림의 ‘내게 사랑은 너무 써’는 사랑타령의 한 유형이기는 하지만, 그 가사가 무척이나 이채롭습니다. 물론 한국을 대표하는 록그룹의 발라드곡이라는 장르상의 특징이 있기는 하지만, 가사 속에 담은 사랑의 정서가 무척이나 이질적입니다. 사랑은 달콤하고 짜릿하게 시작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별과 갈등을 맞으면서 후회와 아픔을 낳는 것이 사랑의 보편적 특성(?)으로 흐르기 마련이건만, ‘산울림’의 ‘내게 사랑은 너무 써’는 시작부터 너무 쓰다고 하소연을 합니다. 가사에서는 ‘아직 어리기 때문에’ 사랑이 쓰다고 풀이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ZoDKZHVfEI&list=RDnZoDKZHVfEI&start_radio=1

그런데 ‘춘향전’이나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더라도 어리기 때문에 사랑이 쓰다는 전제는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소나기’에서 그린 사랑은 무려 초등학생의 풋풋한 사랑입니다. 나이는 문제가 될 여지가 없습니다. 사랑이 쓴 것은 사랑이 서툴기 때문에 노래 속의 화자가 어려서 그리고 철이 없어서 자책하는 상황이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오히려 역설적으로 내 사랑은 달콤하게 느끼지만, 그 사랑이 장애물에 막혀서 쓰게 느끼는 상황으로 보는 것이 맞습니다. 사랑도 인생의 일부이기에 당연히 희로애락을 담고 있습니다. 달콤하다면 이미 사랑이 아닐 수 있습니다. 아니 사랑이 아닙니다. 인생이 달콤하기만 한 것이 아니기에 필연적으로 사랑도 쓸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는 문학작품에서 느끼는 카타르시스는 비극에서 구현된다고 하였습니다. 문학의 대표적 장르인 소설에서는 인생을 그리고 있습니다. 동화와 구별되는 소설은 인생의 깊이와 인간의 본질을 그리고 있습니다. 해피엔딩으로 종결되는 상황은 그냥 동화에 머무는 차원입니다. 갈등구조 속에 부각되는 인간의 불완전성과 비극적 서사가 인간의 심연과 사회와의 갈등과 투쟁구조가 적나라하게 구현이 됩니다. 바로 이러한 진지한 생의 현장에서 카타르시스가 구현되는 장이 펼쳐지는 것입니다. 문학작품을 통해서 한 개인이 성장하고 인생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듯이, 대중가요 속의 사랑에서도 아픔과 후회를 통하여 대중은 성숙하게 됩니다.


‘산울림’의 ‘내게 사랑은 너무 써’의 리듬은 실은 무척이나 감미롭고 부드럽게 사랑을 묘사합니다. 무척이나 역설적인 묘사입니다. 감미롭고 잔잔한 가사가 쓰디 쓴 사랑의 감정을 더욱 쓰게 만드는 아이러니를 담은 것입니다. 그리고 쓰디 쓴 사랑 속에서 달콤함을 느끼는 것이 사랑의 속성이라는 역설의 변증을 웅변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 반대로 지금은 쓰지만, 앞으로는 달콤한 사랑의 열매를 맺는 진통일 수도 있다는 희망의 암시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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