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관계의 핵심을 대법원은 일관하여 ‘사용종속성’이라 합니다. 사용종속성은 무늬만 그럴듯한 말로 실제로는 갑을관계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갑을관계는 근로관계에만 한정된 것은 아닙니다. 한국은 단군 이래 중국에 조공을 바치던 나라였습니다. 시진핑이 무례하게 한국을 조공국이라 비하해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기에 대부분의 한국인은 꾹 눌러참았습니다. 미국과 한국의 관계도 갑을관계가 맞습니다. 한국인 중에서 미국을 상국으로 여기면서 본인을 명예미국인으로 인식하는 사람도 부지기수입니다.
○그런데 기업 간의 관계에서도 갑을관계가 발생합니다. 대부분 대기업과 그 협력업체 간의 관계가 전형적인 갑을관계입니다. 그런데 경우에 따라서는 제도의 변경에 따라 갑을관계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감사대상 기업과 감사 주체인 회계법인 간의 회계감사의 경우가 바로 그러한 경우입니다. 과거에는 지정감사제가 도입되어서 회계법인이 어느 정도 갑에 준하는 지위가 인정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자유감사제가 도입되면서 기업이 갑으로, 그리고 회계법인이 을이 되었습니다. 다음 <기사>는 을이 된 회계법인과 갑이 된 기업 간의 표준감사시간제에 대한 해설기사입니다.
○표준감사시간제도란 글자 그대로 표준이 되는 감사시간제도로서, 기업의 규모와 계열사 수, 업종 등을 토대로 최소한 감사해야 할 시간을 말하며, 한국공인회계사회가 산정·공표합니다. 뭐든 그렇지만, 표준이 되는 것이 표준이 되지 못하면 부작용이 발생합니다. 자유감사제도로 변한 것과 같은 취지로 표준감사시간은 점점 낮춰줬습니다. 반대로 회계법인은 부담이 커졌으며, 자유감사제와 결합하여 회계법인의 저가감사의 원흉으로 지목받게 되었다는 것이 이 <기사>의 요지입니다. 변호사, 의사와 더불어 대표적인 전문직종인 회계사가 수난을 겪는 현실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적정인력을 초월한 선발로 신음을 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근로자는 경우에 따라 공노비(공무원)와 사노비(사기업)이라 부르면서 자조하는 경우가 상례입니다. 아마도 사용종속성 때문에 그런 자조가 발생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의사, 변호사는 물론 회계사까지 모두 의뢰인에게는 을의 지위에 있습니다. 돈을 지불하기 전까지는 우월한 갑에서 돈을 지불하고 나면 덜 우월한 지위로 변할 뿐 전문직 자체가 을의 지위에 있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전문직에 종사하는 분들의 평균수입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의사들이 아직도 연봉킹의 지위에 있다고 일부에서 주장할지 모르지만, 실손보험 등 일부 영역에서 개선이 이뤄지고 건강보험제도의 급여항목의 조정에 따라 가변적인 것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아직도 정액소득자인 근로자의 경우보다 형편 자체는 낫습니다.
○이렇게 보면 한국이 선진국이 되었다는 사실은 뭔가 체감하기 어렵습니다. 뭘 하든 먹고 살기 빠듯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본주의라는 것 자체가 꾸준히 노력하고 성실성을 증명하여야 하는 제도인지라 갑을관계란 어쩌면 더욱 근로자에게 분발하라는 시대적 요구가 아닌가 싶습니다.
<기사>
회계사들은 이 같은 흐름의 배경으로 표준감사시간제를 지목한다. 이 제도는 2016년 대우조선해양의 대규모 분식회계 사태를 계기로 도입됐다. 기업의 규모와 계열사 수, 업종 등을 토대로 최소한 감사해야 할 시간을 정하는 것이 골자다.
표준감사시간은 심의위원회에서 3년마다 조정하는데, 최근 기업 부담이 과도하다는 이유로 기준을 낮춰줬다. 여기에 더해 내부 회계와 재무제표를 동시에 감사하거나 디지털 기술을 활용할 경우 기준보다 더 줄일 수 있도록 했다.
문제는 표준감사시간이 낮아지면서 현실적으로 감사에 필요한 시간과 괴리가 커졌다는 점이다. 한 대형 회계법인 임원은 "일반적으로 실제 수행 감사 시간은 표준감사시간을 크게 웃돈다"며 "감사 대상 기업에 추가 보수를 요구할 수 있는 조항을 감사 계약서에 넣기도 하지만 을(乙) 입장인 회계법인이 실제로 요청하긴 어렵다"고 했다.
https://biz.chosun.com/topics/topics_social/2026/04/01/4J2STZ7K7FENDJ5RHIUOUU54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