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도는 대중음악 감상에 한정해서는 재미있는 시기입니다. 테이프와 LP판, CD와 LDP, 그리고 MP3가 공존하던 시기였기 떄문입니다. 지금처럼 유튜브가 거의 천하통일을 한 상황과 비교하면 그 시절은 다양한 장치에서 음악이 흐르는 꽤나 낭만이 넘치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이원진의 딱 하나뿐인, 그러나 그 임팩트가 꽤나 뜨거운, 히트곡 ‘시작되는 연인들을 위해’도 당연히 MP3는 물론 테이프(특히 길거리테이프)에서 대중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 노래는 이원진이 류금덕과 듀엣으로 불렀는데, 류금덕이 마치 피처링이나 코러스 정도에 그친 것처럼 야속하게 묻힌 비운을 맛본 곡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 노래의 히트 이후에 이원진은 후속 히트곡을 내지 못하다가 세상을 등졌기에, 진정 비운의 가수이기는 합니다.
90년대는 또한 다양한 장르의 곡이 공존해서 히트했던 시기였습니다. 전체적으로는 이문세, 변진섭, 그리고 신승훈과 조성모로 이어지는 발라드의 강세가 두드러지기는 했지만, 서태지와 김건모의 랩과 HOT와 SES 등 아이돌이 맹위를 떨친 시기였습니다. 현철과 태진아 등 트로트 아재들도 왕성하게 활동을 했으니 그야말로 각종 장르의 춘추전국시대였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대중이 눈치채지 못하게 거의 모든 장르에서 변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80년대까지는 ‘네가’ 또는 ‘너가’로 표기하던 상대의 호칭이 ‘니가’로 천하통일되었다는 점입니다. 80년대 조용필의 히트곡 ‘여와 남’에서는 ‘너가 있음에 내가 있다’라고 가사가 쓰여 있고. 조용필도 그렇게 불렀습니다. 일상에서도 ‘너가’라는 말이 보통 쓰였습니다. 그러나 90년대에는 모든 장르의 곡에서 ‘니가’가 천하통일을 했습니다. 이원진의 ‘시작되는 연인들을 위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김건모의 ‘핑계’에서 ‘니가’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이 표현이 국민의 일상어도 지배했습니다.
니가 아침에 눈을 떠 처음 생각나는 사람이
언제나 나였으면, 내가 늘 그렇듯이
좋은 것을 대할 때면 함께 나누고픈 사람도
그 역시 나였으면, 너도 떠날 테지만
그래, 알고 있어, 지금 너에게
사랑은 피해야 할 두려움이란 걸
불안한 듯 넌 물었지
사랑이 짙어지면 슬픔이 되는 걸 아느냐고
하지만 넌 모른 거야
뜻 모를 그 슬픔이 때론 살아가는 힘이 되어주는 걸
혹자는 90년대를 ‘대표절의 시대’라고 평가절하를 하지만, 적어도 편곡이나 작사의 측면에서는 빛나는 르네상스의 시기입니다. ‘시작되는 연인들을 위해’의 가사는 A급 서정시입니다. 실은 감성이 녹아내리는 이 정도의 시를 감상하기도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인간이 느끼는 감정의 추이를 가사로 녹여 낸 빼어난 서정시를 가사로 추출하는 것도 대단한 작업입니다. ‘홀로서기’라는 시가 90년대를 관통한 것도 다분히 서정성이 시대를 관통했고 대중이 이를 수용한 까닭입니다. 아무튼 이원진의 ‘시작되는 연인들을 위해’는 가사, 편곡, 노래 그 모든 것이 S급인 명곡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zII6i5srQ&list=RDF-zII6i5srQ&start_radio=1
그런데 옥에도 티가 있습니다. 그것은 무척이나 사소한 것일 수도 있는 것인데, ‘시작되는’이라는 제목의 어색함입니다. 한국어는 자동사와 타동사는 물론 수동태와 능동태가 영어나 일본에서처럼 엄격하게 활용되지 않습니다. 일본어는 ‘はじめる’, ‘はじまる’가 비교적 엄격하게 적용되어 ‘시작하다와’ ‘시작되다’가 혼용되는 한국어와 다릅니다. ‘홍길동상점은 오전 9시에 영업이 시작됩니다’와 ‘홍길동상점은 오전 9시에 영업이 시작합니다’를 보면 한국어에서 자동과 타동은 일상에서는 거의 완벽하게 혼용이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학창시절 영문법 중 수동태와 능동태를 배우면서 한국어의 묘한 특성도 아울러 깨달았습니다.
이원진의 ‘시작되는 연인들을 위해’로 다시 돌아갑니다. 연인들 관계가 ‘시작되는 것’으로 해석해도 말이 되는가 하면, ‘시작하는 것’으로 해석해도 말이 됩니다. 아무래도 인간관계의 하나인 연인관계라면 ‘시작하는’으로 표기하는 것이 자연스럽기는 합니다. 같은 알타이어계인 일본어와는 꽤나 유사하지만, 대중가요의 감상에서 문법상 차이를 실감하는 것도 꽤나 재미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