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과라는 작품의 소재가 신선해서 읽고 나서 약간 어벙벙했다. 줄거리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는 책이나 뭔가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들이 있다. 정리되지 않는 생각들이 조각은 왜? 투우는 왜? 류는 왜?라는 물음표들이 두둥실 머리에 띄워져만 있고 명확하게 딱하고 들어오는 것이 많은 생각들을 거쳐 오게 되는 듯.
조각과 투우, 조각과 강 과장, 조각과 류
'너도 나도 더 이상 지킬 것은 만들지 말자'
조각이 변해가는 것이 싫었던 투우. 그런 투우를 기억하지 못하고 습관처럼 기억한 조각.
지킬 것은 만들지 말자던 류는 조각을 지키고 죽는다. 류는 자신의 아내와 아이가 죽음을 당하고 조각에게 지킬 것은 더 이상 만들지 말자고 했으나 류의 말은 모순이었다. 류는 조각을 지켰기 때문이다. 조각대신 죽음을 맞이한 류. 그런 류를 사랑했으나 끝끝내 그 사랑 한 번 말하지 못했던 조각. 강 과장의 다정함에 흔들리고 사랑을 하는 조각. 처절하고 서글픈 삶을 살고 선택조차 할 수 없었던 조각의 삶. 그저 기댈 곳이 없던 불안한 삶의 여정을 걷는 조각. 투우는 강 과장을 만나 사랑을 하고 다정함을 알고 연민을 느끼는, 변해가는 조각이 싫었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자신에게 잊고 살라고 말하던 가정주부의 다정함을 느낀 투우. 얼마든지 자신을 죽일 수 있었으나 죽이지 않고 알약을 잘 삼키지 못하는 투우에게 약을 매번 가루 내어 건네던 조각을 잊지 못하고 집착하는 투우. 왜 목격자인 자신을 죽이지 않고 어차피 떠날 것이었고, 아버지를 죽이는 것이 목적인, 가정부의 역할을 충실히 하지 않아도 되었을 조각이 왜 자신의 알약을 가루 내어 그리도 정성스럽게 자신에게 꼬박꼬박 먹였는지 그것이 의문이었다. 조각과 투우는 닮아있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에게 실려있는 감정들이 그들의 마음에서 비뚤고 여리게 피어나 서로가 거슬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거슬리고 빛나는 것들이 결핍을 가진 조각과 투우에게는 누군가로부터 받는 다정함과 따뜻함이 그들의 삶에 유일한 빛나는 시간이었지 않았을까 싶다. 텅 비어버린 것만 같은 삶에 무언가가 밀고 들어오는 느낌. 주체할 수 없어서 자꾸 심술이 나다가도 종이에 베여버린 손에 신경이 쏟아지는 느낌. 그런 순간들을 맞이한 것이 아닐까 싶다. 나이와 세월을 떠나, 모든 조건들을 떠나서 말이다.
책에 나온 말처럼 살아있는 모든 것은 부서져 사라지기 때문에 유달리 빛나는 순간을 한 번쯤은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