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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빈대디 Apr 17. 2023

스크린골프장의 그늘집

나를 중독시킨 것


나는 요즘 스크린골프를 즐긴다. 네 명씩 모여하는 골프의 특성에 따라 나의 스크린 멤버도 몇 개의 그룹으로 나뉜다. 그중 한 그룹의 이야기이다.


휴일 아침 일찍부터 오래된 골프마니아 친구들이 모여 스크린골프를 치곤 한다. 필드에서 하듯 네 명이 한 조를 이루어 플레이를 한다. 그리고 재미를 더하기 위해 그날의 점심값과 게임비를 그날의 스코어에 따라 거두는 내기를 건다.


시끌벅적하고 치열하게 한 홀 한 홀 경기를 하다가 십팔 홀 중 아홉 홀 플레이가 끝나면, 열 번째 홀 플레이에 들어가기 전에 한 친구가 손을 들며 외친다.


"잠깐, 그늘집 타임이야."


그러곤 그는 캐디백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어 우리 방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속이 비치는 반투명 플라스틱 용기이다. 뚜껑을 열면 여러 종류의 과일들이 먹기 좋은 크기로 잘리어 가지런히 담겨있는 것이 보인다. 아침 일찍부터 운동을 한 상태인 우리 모두는 군침을 삼킨다.


"그늘집 없으면 골프가 아니지.

 잠시 들렸다 가자."


친구의 주문에 따라 우리는 모두 플레이를 멈추고 테이블에 빙 둘러 서서, 그 친구가 가져온 오늘의 그늘집 음식, 제철 과일을 포크모양의 과일꽂이로 꽂아 우아하게 입에 넣는다. 그 친구는 과일꽂이를 잊지 않고 가져온다. 나이 들면 음식도 폼나게 먹어야 한다는 게 그 친구의 지론이다. 우린 그저 그 친구가 깔아놓은 멍석 위에서 놀면 되는 것이다. 그냥 하루 호강하면 된다.


아침 아홉 시에 라운드를 시작했으니, 우리가 먹는 그늘집 음식을 아침에 준비해서 가져오려면 그 친구는 꽤나 일찍부터 서둘렀을 것이다. 본인이 직접 준비했다고 하니, 그가 이 그늘집 타임을 위해 한 수고와 정성을 짐작하는 거야 어렵지 않다.


다만 내 걱정은 혹시나 휴일 이른 시간에 과일을 씻고 잘라서 플라스틱 용기에 담다 보면 소리가 날 텐데, 그 소리가 식구들의 휴일 단잠을 깨게 해서 눈치나 받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아무튼 우리네 스크린골프장에 펼쳐진 그늘집은 친구가 새벽부터 갖은 노력으로 담아 온 정을 나누는 자리가 된다. 감격(?) 어린 찬사와 찬미가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렇게 그늘집의 특별한 파티가 끝나면, 우린 다시 열 번째 홀의 티샷을 더 힘차게 휘두른다.


그늘집은 그날 하루 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 친구가 함께하는 날이면 언제나 어김없이 그런 그늘집이 열린다.


그래서 그런지 어쩌다 한 번 그 친구가 없는 스크린골프를 하다 보면, 자꾸만 그늘집 타임을 외치는 친구의 웃음 띤 얼굴그늘집의 진한 과일향이 겹쳐 뇌리를 맴돈다.


큰일이다. 난 이미 중독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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