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했던 유년 시절, 그 결핍이 내 인생을 바꿨다

자전거 한 대에 울고 웃던 아이, 인생의 첫 성장기를 말하다!

by 꿈꾸는 강화백 Simba

1. 병원에서 시작된 삶

아버지께서는 제가 갓난아기였을 때 나무에서 떨어져 척추를 다치셨고, 어머니는 저를 낳으신 뒤 병원에 계셨다고 합니다. 저도 갓난아기였기에 이렇게 셋이 모두 병원에 있었다고 합니다. 병원비가 많이 나와 아버지께서 먼저 퇴원하시고, 며칠 후 어머니도 병원을 나와 저희는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정들었던 마을을 떠날 때 많은 분들이 가지 말라고 애원하셨지만, 새로운 곳에 터전을 잡고 싶어 떠나셨다고 합니다. 변변치 않은 살림에, 세차장 골목이라 불리던 곳,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던 마을이었습니다. 어렸을 적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그 마을은 정말 가난했습니다. 매일같이 술 마시고 싸우고, 화투를 치던 동네였습니다. 어린 나이에 저는 그곳을 떠나고 싶다고 아버지께 자주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갈 곳이 없으니 여기서 정 붙이고 살라고 하셨습니다. 방법이 없었던 저는 그렇게 그곳에서 자라야 했습니다.


2. 어머니의 등과 별

잠에서 깨어나면 어머니가 보이지 않아, 동네 이곳저곳을 누비며 어머니를 찾곤 했습니다. “저기 가보면 계실 거야”라는 동네 어른들의 말씀을 따라가 보면, 고도리를 치고 계신 어른들 사이에서 어머니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밤늦게까지 화투를 치시다가 새벽이 되어 저를 업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어머니의 등에 업혀 밤하늘을 바라보면, 별들이 얼마나 많이 빛나는지... 그 등은 늘 따뜻했습니다. 그것이 옳은지,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고, 그저 어머니의 등만이 포근했던 시절이었습니다.


할머니와 놀던 기억도 있지만, 어느 순간 중풍으로 쓰러지시면서 어머니께서 6년 동안 할머니의 배변을 받아내는 간병을 하셨습니다. 불평도 없이 사람들 눈치를 보며 빨래를 하시고, 묵묵히 돌보셨습니다. 아마도 어머니께 가장 힘들었던 시절이었을 것입니다.


3. 가난 속에서 피어난 추억

농사가 잘 안 되자 동네에서 구멍가게를 시작하셨습니다. 장사가 잘되지 않자 어머니께서는 술도 팔고, 라면도 끓여 팔기 시작하셨습니다. 그 무렵, 어머니는 술을 배우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장에 나가 속옷을 파는 보부상이셨습니다. 퇴근하고 돌아오신 아버지께서는 어머니가 보이지 않자 저에게 엄마를 데려오라고 하셨고, 제가 엄마를 찾아간 곳에서는 술과 화투 속에서 정신없이 계신 어머니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주 싸우셨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저희 집. 아버지께서는 매일 새벽에 일어나 돈을 벌러 가시고, 어머니는 술과 화투로 하루를 보내시니 싸움은 잦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돈이 없으니 아버지께서는 어머니께 돈 벌라고 하시고, 어머니는 대꾸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어린 나이에도 싸움과 돈 이야기가 지긋지긋했습니다. 동네 사람들도 매일 싸우고, 그런 환경 속에서 저는 자라야 했습니다.


4. 웃음과 눈물의 어린 시절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교 때까지도 그곳을 떠나고 싶었지만, 능력이 되지 않아 계속 그곳에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학교에 다니던 때도 집에 오면 부모님의 싸움에 상처받아 밖으로 나가 숨죽여 울던 기억이 많습니다. 왜 그렇게 가난했고, 왜 그렇게 싸웠는지... 두 분을 보면 그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하지만 인생이란 것이 항상 불행하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그 속에서도 분명 즐거운 추억이 있었으니까요.


겨울에는 아버지께서 손수 만들어 주신 썰매를 타고 얼음 위를 달렸습니다. 연도 많이 날렸습니다. 연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드리면, 아버지께서 손수 만들어 주셨고, 하늘로 올라간 연이 오른쪽으로 돌다가 땅에 곤두박질칠 때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여름에는 냇가에서 친구들과 수영도 하고, 강가에서는 직접 만든 작살로 메기, 쏘가리, 붕어 등을 잡았습니다. 잡은 물고기를 어머니 가게에 가져다 드리면, 손님들께서 좋아하시며 술도 더 드시고 매운탕도 만들어 드셨습니다. 물고기를 사주시는 손님도 계셔서, 어린 나이에 돈도 벌 수 있었습니다.


가끔 동네에서 봉고차를 가지고 계신 분이 가족을 태우고 강가로 데려가 민물고기를 잡고 매운탕을 끓여 먹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짐 자전거에 저를 태우고 달리면,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그저 기분이 좋았습니다. 냇가에서 족대나 어항으로 물고기를 잡던 추억, 매운탕을 끓여 먹던 기억도 소중합니다. 중학교 때는 주말마다 아버지와 함께 대추를 따러 다녔습니다. 대추를 포대에 담아 무게를 재면 금액을 책정해 주셨고, 가끔 용돈벌이가 되기도 했습니다.


5. 어릴 적의 TV 한 대, 그리고 동네 사람들

어린 시절, 동네에 TV가 한 대뿐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전설의 고향’이 방영되는 날이면, 마치 잔치라도 열린 듯 동네 사람들이 TV가 있는 집으로 모여들었습니다. 방 한가득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함께 숨죽이며 귀신 이야기를 보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어쩌면 그때가 더 재미있게 느껴졌던 이유는, 그렇게 함께 봤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내 영화관에서 동네 형과 함께 본 ‘우뢰매’는 제 인생 첫 영화였습니다. 지금은 집집마다 TV, 컴퓨터, 자동차, 에어컨까지 다 갖추고 있지만, 그 시절의 정겨움과 낭만은 점점 사라져 가는 듯합니다.


6. 자전거 한 대와 90점의 약속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동네에 자전거가 딱 한 대 있었습니다. 친구가 “한 번 타볼래?” 하며 잠시 빌려준 자전거는 마치 날아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날 밤, 아버지께 자전거를 사달라고 조르고 또 졸랐습니다. 아버지는 “공부 잘하면 사줄게”라고 하셨고, 저는 그 말 하나에 불이 붙어 공부했습니다. 드디어 평균 90점을 넘기고 성적표를 자랑스럽게 보여드렸지요. 그런데 아버지는 “지금은 돈이 없으니 나중에 사주마”라고 하셨습니다.

그때의 실망은 너무 컸습니다. 그 일 이후로 공부에 대한 흥미를 서서히 잃어갔습니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듭니다. ‘그때 자전거를 사주셨다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까?’ 물론 같은 현실이었겠지만요.


7. 중학교 영어 시간의 공포와 희망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가장 힘들었던 과목은 영어였습니다. 영어책 읽기 시간만 되면 가슴이 쿵쾅거리고 식은땀이 났습니다. 혹시나 내 차례가 올까 불안해하며 책장에 한글로 일일이 뜻을 써넣었던 기억이 납니다. 2학년이 되도록 ‘굿모닝’이라는 말조차 몰랐던 저는, 공부에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TV를 틀어놓은 채 책상 앞에 앉아 잠깐 공부했을 뿐인데, 성적이 꼴찌에서 급상승했습니다. 상장을 받았고, 선생님께 칭찬도 받았습니다. ‘나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이 생긴 건, 아마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8. 거울을 깬 밤, 그리고 멈춰버린 시간

하지만 어느 시험 기간, 집에서 화투판이 벌어졌습니다. “조용히 좀 해주세요” 부탁했지만, 술과 고성방가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분을 이기지 못한 저는 벽에 걸린 거울을 주먹으로 쳐 깨뜨렸습니다. 손에서는 피가 났고, 그 소리에 동네 사람들이 놀라 달려왔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다시는 책을 펴지 않았습니다. 시간은 멈췄고, 마음은 닫혔습니다.


9. 평범한 고등학교, 특별한 친구와의 만남

공부와는 거리가 먼 제가 평준화 제도로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했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했고, 선생님들께도 귀여움을 받았습니다. 대학 진학은 꿈도 꾸지 않았습니다. 그저 졸업 후 취업이나 하자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고3이 된 어느 시점에 한 친구를 만났습니다. 원래 우등반에 있어야 할 실력을 가진 친구였지만, 제 곁에서 늘 “너도 할 수 있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제가 자리를 옮기면 따라와 주었고, 옆에서 묵묵히 함께 공부했습니다. 그 친구 덕분에 저도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 되어 있는 그 친구에게, 여전히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10. 공부하고 싶었던 마음, 그리고 싸움 뒤의 우정

자율학습 시간, 너무 시끄러운 교실에 참다못해 칠판 위로 올라가 외쳤습니다. “공부할 사람만 남자!” 그 소리에 싸움 좀 한다는 친구가 시비를 걸었고, 결국 몸싸움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싸움은 오히려 우정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친구는 반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짱’이었고, 이후로는 교실이 조용해졌습니다. 공부하고 싶다는 제 마음이 통했던 걸까요. 그날, 제 안의 ‘깡다구’를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11. 영문과로 향한 선택과 ROTC의 도전

고3 때 영어 선생님께서 하신 “영문과 나오면 돈도 잘 벌 수 있어”라는 말 한마디에 저는 영문과 진학을 결심했습니다. 영어를 잘하진 않았지만, 꾸준한 태도를 좋게 봐주셨던 선생님의 격려가 힘이 되었습니다.

대학교에 들어가 축구 동아리를 하던 중 ROTC 선배의 권유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입학 성적, 학점, 체력검정, 신원조회 등 다양한 기준이 있었고, 저는 1학년 성적을 위해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처음으로 장학금을 받았고, 매일 아침 운동장을 돌며 체력을 키웠습니다. 결국 ROTC에 합격했고,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걸 처음 실감했습니다.


12. 키부츠에서 배운 영어, 그리고 시작된 사회생활

전방에서 소대장으로 복무를 마친 후, 대부분 친구들이 유학길에 오르던 시절, 저는 이스라엘 키부츠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습니다. 영어 하나로 무작정 떠난 곳에서 1년을 보내고 귀국했을 때, 삶의 방향을 잃은 채 방황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배운 영어 덕분에 토익 시험을 볼 수 있었고, 그 점수가 제 첫 직장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13. 나만의 낭만, 혼자 울던 화장실

대학교 시절, 나이트클럽이 유행이었습니다.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웃고 떠들던 그 시절에도 저는 가끔 화장실에서 몰래 울었습니다. 친구들이 “왜 우냐”라고 묻자, 저는 “부모님 생각이 나서”라고 답했습니다. 나만 즐거워도 되는 걸까. 부모님은 그렇게 고생하시는데, 나는 뭘 하고 있는 걸까. 마음 한편이 늘 죄송했습니다.


탕수육, 팔보채 같은 음식도 대학에 와서 처음 먹어봤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그 시절은 저에게 낭만과 현실이 공존하던 시간이었습니다.


14. 아픈 과거도 나의 일부

이제는 예전 같으면 꺼내기 어려웠던 기억들도 차분히 글로 써 내려가 봅니다. 글을 쓰며 추억하고, 회상하고,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오히려 위로가 됩니다. 과거의 삶을 감출 필요도, 부끄러워할 이유도 없습니다.


부족하고 결핍된 그 시절이 있었기에, 저는 더 나아지고자 했고, 지금도 계속 배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도 마음속 깊은 기억이 있다면, 글쓰기로 꺼내어보는 건 어떠신가요? 너무 앞만 보며 달리지 마시고, 가끔은 멈춰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겨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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