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 후, 세상 밖으로 나선 첫 걸음”
IMF, 그리고 청년들의 불안
군 복무 중이던 시절, 대한민국은 IMF라는 거대한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었습니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는 태국에서 시작되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를 거쳐 우리나라까지 번졌습니다. 주식시장이 붕괴되고, 대기업들이 줄줄이 무너졌으며, 실업자 수는 매일같이 늘어났습니다. 결국 대한민국 정부는 1997년 11월,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할 수밖에 없었고, 나라 전체가 깊은 위기감에 휩싸였습니다.
군 복무 중의 상대적 안정
그러나 군대는 외부 환경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비록 월급은 적었지만 정해진 날에 꼬박꼬박 지급되었고, 생활도 비교적 안정적이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당시에는 오히려 사회로 나가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많은 동기들이 장기복무를 고민하던 시기였습니다. 중대장님께서는 “군대는 월급이 나오고, 20년만 버티면 연금도 나오니 미래가 보장된다”며 장기복무를 권유하기도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군대는 제 인생의 종착지가 아니었습니다. 고민 끝에 단기복무를 마치고 제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혼란의 시대, 사회로의 첫 발
1998년 6월, 제대를 하고 사회로 나왔을 때, 세상은 여전히 혼란 그 자체였습니다. 많은 기업들이 신입사원을 채용하지 않았고, 어렵게 입사를 해도 경영상의 이유로 채용이 취소되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동기들 중에는 깊은 상실감에 빠져 우울해하거나, 밤잠을 설쳐가며 미래를 걱정하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저 역시 방황했습니다. 신문의 구인란을 훑어보며 진로를 고민하던 어느 날, 군 동기 한 명이 워킹홀리데이, 그것도 이스라엘 키부츠로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스라엘 키부츠, 새로운 가능성
영어를 배우고, 다양한 외국인을 만나며, 일도 하고 여행도 할 수 있다는 이야기에 솔깃해졌습니다. 미국이나 캐나다는 비용이 부담스러웠기에, 키부츠는 저에게 하나의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겠다는 희망을 안겨주었습니다. 처음엔 도서관에서 책을 펴놓고 영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진도는 잘 나가지 않았고, 재미도 없고 집중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이스라엘 키부츠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방영되었습니다.
다큐멘터리 속 영감
마을 전체가 하나의 공동체로 움직이며, 식사, 교육, 문화생활, 일자리가 한 공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외국에서 온 자원봉사자들이 키부츠에서 영어로 소통하고, 생활비 없이도 의식주를 해결하며 살아가는 장면은 저에게 강한 동기를 부여했습니다. “저곳이라면 나도 할 수 있겠다.”
그날 이후, 저는 본격적으로 키부츠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과 한국은 워킹홀리데이 협정을 맺고 있었고, 키부츠에서의 생활은 영어 공부뿐 아니라 자립심을 기를 수 있는 좋은 기회처럼 느껴졌습니다. 다양한 산업과 공동체 경험을 통해 저 자신을 돌아보고 성장할 수 있으리란 기대도 생겼습니다.
아버지와의 진심 어린 대화
결국 아버지께 말씀드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아버지께서 퇴근 후 삼겹살과 소주를 사 오셨습니다. 식탁에 둘러앉아 조심스럽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처음엔 “제대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왜 취직을 안 하느냐”고 하셨지만, 지금은 취업 시장도 얼어붙었고, 영어도 배우고 싶다고 말씀드리자 놀라시는 눈치였습니다. 미국은 비용이 많이 든다고 하시기에, 이스라엘 키부츠에 대해 설명드렸습니다.
비행기 값만 있으면 생활은 가능하고, 영어도 배울 수 있으며, 다양한 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잠시 생각에 잠기시더니 “아빠가 조금 모아둔 돈이 있는데 천만 원 정도는 지원해 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당시 그 천만 원은 정말 큰돈이었습니다.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꾹 참고, “그 돈은 아버지 생활에 보태 쓰시고, 저는 군 생활하면서 모아둔 돈으로 충분합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아버지와 단둘이 마신 첫 소주는, 지금도 평생 잊지 못할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드디어 떠날 준비
키부츠 프로그램은 자원봉사 형태와 워킹홀리데이 두 가지가 있었지만, 저는 자원봉사 형태를 선택했습니다.
서울 키부츠 센터에 연락해 신청 서류를 준비했고, 직접 센터에 방문해 다른 지원자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모든 절차를 마친 뒤, 집으로 돌아와 짐을 챙기며 들뜬 마음으로 출발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걱정이 밀려왔습니다. 그러나 키부츠 센터에서는 “키부츠는 안전하다”는 설명을 들었고, 함께 키부츠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해보니 “걱정하지 말고 꼭 오라”는 말에 다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습니다.
도전, 그리고 새로운 시작
키부츠는 제게 도전이자 기회였습니다. 세상 어딘가에는 나의 언어도 통하지 않고, 문화도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따뜻함과 배려가 있었고, 새로운 희망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멀리 떠나보지 않으면, 자신의 세계가 얼마나 작은지조차 모른다.”
이제 저는 고향 친구들의 배웅과 부모님의 응원 속에 이스라엘행 비행기에 오를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그 낯선 땅에서, 저의 두 번째 인생이 조용히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나는 모든 준비를 마치고, 이스라엘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미래였지만, 마음속엔 분명한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나는, 인생의 두 번째 챕터를 조용히 열기 시작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어쩌면 인생의 전환점을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처럼 누군가는 IMF라는 시대를 살았고, 누군가는 또 다른 어려움 속에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한 걸음 내딛는 용기"가 삶을 바꾸는 출발점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 글이 누군가의 잃어버린 용기를 다시 꺼내는 데 작은 불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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