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나 선배에게 혼나는 이유는 내가 일 못하는 머저리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어려운 경쟁률을 뚫고 이 회사에 입사했지만 어린 아기처럼 부모님이 밥을 수저로 떠먹여 주지 못하면 제대로 밥 한 수저 먹을 수 없는 머저리다. 선배나 상사가 한국어로 지시를 하지만 마치 외국어처럼 들리고 결국은 잘 알아듣지 못해서 사고만 친다. 그래서 상사나 선배들은 나에게 내려진 업무 지시를 보고하면 펄펄 끓는 주전자처럼 곧 뚜껑이 열리기 직전이다.
물론 센스 없이 일을 못하는 것은 인정하지만 전적으로 내 탓만은 아니다. 초등학교에서 대학을 졸업하기 전까지 사람들의 요구를 이해하는 방법, 회사에서 일하는 방법을 배운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내내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 답만 맞추기 위한 시험 문제 풀이만 해왔고, 대학에 들어가서는 어떻게든 취직하기위해 자격증이나 토익 점수에 신경을 써왔기 때문에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려 일하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해볼 여유가 없었다. 막상 힘들게 들어온 회사에서 상사나 선배들은 처음 해 본 일들을 시켜 놓고 그것도 빨리 빨리 하라고 하며 완벽한 결과를 기대한다.
그런데 나 말고도 일 못하는 다른 머저리들도 많은데 유독 나만 심하게 혼나는 것을 보면 내가 업무 실력이 부족해서 혼나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물론 일을 못해서 혼나고 무시 당하는 것이 100% 틀린 것은 아니다. 나도 현재 상사의 입장에서 업무 실력이 기대에 못 미치는 부하들을 보면 답답하고 화가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머리 끝까지 화가 치밀어 오르지만 상대에 따라서 화를 내는 경우가 있고 어쩔 수 없이 화를 참는 경우가 있다.
나의 머저리 시절 상사에게 혹독하게 혼이 나곤 했던 경험과 상사가 되어서 부하들을 대하면서 깨달은 경험에 의하면, 혼나는 원인은 내가 다른 머저리들 중 가장 정말 일 못하는 머저리이냐? 의 문제가 아니라 상대를 상습적으로 혼내고 무자비하게 짓 밝는 근본적인 기폭제를 상대에게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 말고 더 심한 머저리들도 있는데, 왜 나만 그렇게 혹독하게 혼나지?
너희들이 나보다 더 일도 못하는데 상사는 나만 더 특별히 혼내지?
기폭제란, 나 같은 머저리종(種)들은 상대로부터 심하게 혼나고 짓 밝혀도 “괜찮습니다.”라는 신호를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내 주변의 동급 머저리들은 내가 존재하는 것으로 안정감이 들고 내가 그들 주위에 영원히 함께해서 그들 대신 영원한 희생양이 되어주기를 희망하지만 더 이상 동료들을 위해 자비심 많은 방패막이 되어줄 수는 없다면 지금부터 나와 같은 머저리들이 공통점으로 갖고 있는 태도를 하나 하나 관찰해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