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님들의 흔한 경조사..

"가정의 달 5월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많이 힘드신 시간 보내고 계시죠, 이런 힘든 와중에 저희 딸이 결혼을 하게 됩니다.

19년 5월 일산역 근처 예식장이니 오셔서 많은 축하 부탁드립니다."

일단 나는 이런 문자를 돌린 고객이 쫌스럽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래서 축하한다는 연락도 안 하고 결혼식에 가지 않기로 이미 마음을 먹었습니다. 언젠가 회사 업무상 문제가 생기면 이 고객을 다시 볼 수도 있지만, 그때는 태연스럽게 모르는 척을 하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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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너네 이거 좀 튼튼하게 만들어라, 이렇게 부실하게 만들어서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 공장 작업자들이 너네 제품 잘 깨진다고 자꾸 뭐라고 하잖아!"

저희 회사는 1년 전에 고객의 설계 담당자의 요구 사항에 맞춰 신제품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약 30여 억 원을 투자해서 1 년 만에 신제품을 완성해서 고객의 공장에 납품한 지 약 6개월 정도가 지났습니다. 제품을 개발할 때는 가장 먼저 고객의 설계부서와 제품에 대한 스펙을 협의를 하는데, 제품 스펙에는 제품의 사이즈, 무게, 재질, 내구성, 기능성, 안정성, 작업성 등의 규정이 있어서, 모든 스펙 요구사항을 준수해서 만들고, 또한 고객이 규정하는 테스트를 통과해야 양품으로써 납품할 수 있습니다. 

고객은 저희 회사가 납품한 제품을 이용해서 완성품을 제조하여 소비자에게 판매를 했습니다. 제품을 납품한 지 6개월 정도가 지나서 고객의 공장 작업자들이 저희 회사 제품을 다루는 과정에서 제품의 파손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하루에 1~2 건 정도의 제품 파손이 발생하여 고객의 제품 생산 시간에 지장을 주고 있었습니다. 제품 생산 시간에 지장을 주게 되면, 하루에 완성할 수 있는 완성품의 수량이 줄어들게 되고, 고객 입장에서는 비용적으로 손해를 보게 되어, 문제가 생긴 제품을 납품하는 협력업체에 손해  배상을 청구하기도 합니다. 

제품은 고객의 요구 사양에 맞게 만들었지만 고객의 공장 작업자들이 제품을 바닥에 툭툭 던지면서 충격을 이기지 못해 파손이 발생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50대 후반의 공장 품질 담당자는 영업 사원인 저를 불러서 제품을 지금 보다 튼튼하게 보강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미 개발 완성한 제품인데 추가 개선을 하면 막대한 개선 비용이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적게는 천만 원 단위에서 억 원 단위로까지 비용이 발생합니다. 제품을 개선하기 위해 제품을 사출하는 금형을 수정해야 하고, 제품의 조립라인도 개선을 해야 하며, 추가 테스트 비용이 들고, 불용 재고의 소진 등을 감안하면 몇 천만 원 이상의 추가 개선 비용이 발생하게 됩니다. 고객은 자신들의 잘못이 아니라 제품 자체의 잘못이 있다고 고집을 부릴 것이 뻔하기 때문에 제품의 추가 개선 비용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 경험상 눈에 보였습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우리 측의 하자가 아니라 단지 고객 불만이라는 이유만으로는 사내 제품 개발 담당자를 설득하기에는 명분도 부족하여 사내의 제품 설계 담당자들과 갈등도 발생하게 됩니다. 이런 문제는 결국 고객을 담당하는 영업 사원과 제품 개발을 담당하는 사내 설계 담당 사이에 균열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래서 제조업에서는 영업 사원들은 항상 사내 담당자들로부터 욕을 많이 먹기도 합니다. 그래서 최대한 어떻게든 고객을 설득하기 위한 논리를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나:"귀사의 설계부서에서 제시하신 파손 방지 사양에 맞춰서 제품을 만들어서, 요구되는 모든 테스트를 통과한 양품입니다. 즉, 낙하 시험이나 내구 시험에서, 귀사에서 지정하신 스펙에 다 통과를 했기 때문에 제품에 문제는 없다고 판단합니다. 그리고 귀사의 다른 공장에서는 전혀 파손 문제가 발생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통하지 않아서 최후의 수단을 꺼냈습니다.. 

나:"귀사의 설계 사양상 아무 문제없으며, 귀사의 다른 로케이션 공장에서는 전혀 문제가 발생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는 공장의 작업자들에게 제품을 주의해서 다루도록 교육을 시키는 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다.(속마음: 공장 작업자들 똑바로 교육 좀 시키세요)"

고객:"그럼 네가 교육시켜봐, 그 사람들이 말을 들어먹나, 우리 같은 회사에서는 공장 작업 노조들 파워가 얼마나 쎈지 모르니?"

고객 품질 담당을 설득하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했습니다. 계속 말이 통하지 않는 고객을 설득해봤자 고객의 성미만 자극할 뿐 저에게 좋은 것은 것도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개선을 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제품의 개선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비용이 발생하더라도, 내부 제품 설계 담당과 갈등을 하더라도, 큰 난관이 하나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의 수치로 개선을 하느냐는 문제입니다.

고객은 공장 작업자들이 험하게 제품을 다루므로 공장 작업자들의 작업 특성을 고려하여 제품을 튼튼하게 보강할 것을 요구하지만, 지금 보더 더 튼튼하게 만들 경우 다른 설계 요구 사항들을 불만족할 수도 있는 "배반 사항"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제품을 튼튼하게 하기 위해서 제품의 두께를 두껍게 만들 경우 제품의 사이즈가 규격보다 증가할 수도 있습니다.

나:"제품을 튼튼하게 하기 위해서 구체적 수치를 제공해주실 수 있으세요?"

고객:"작업자들이 작업할 때 바닥에 떨어져도 깨지지 않도록 하면 되잖아, 너네가 잘 개선해, 내가 밥까지 떠줘야되냐?"

고객은 추상적인 이야기만 할 뿐, 비록 고객은 저보다 나이가 10살 정도 많지만 저도 어른인데 반말을 하더군요. 

21세기를 살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저와 고객은 갑과 을이라는 구시대적인 시스템에 얽매여 저는 고객에게 저자세를 유지해야 했고, 고객은 그런 나의 태도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듯했습니다. 공장의 접견실에는 저 말고도 다른 협력 업체 직원들이 고객의 품질 담당자로부터 반말을 들으며 뭐라도 크게 잘못한 어린이처럼 혼나고 있었습니다. "잘못했습니다"만 내뱉고 있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저는 쌍욕이나 모욕적인 말은 듣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저는 고객 공장의 품질 담당자들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지 이해를 합니다. 공장 작업자들은 불만이 생기면 품질 담당에게 와서 모든 불만을 쏟아 버리기 때문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제품을 개선하고 나서 시간이 지나가게 되었고 제품의 파손 이슈가 없어지면서 그 이후로 고객을 만나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품의 파손 이슈 이후 3년이 지나고 나서 고객의 딸이 결혼한다고 문자가 날라 온 것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저뿐만 아니라 고객은 자신의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모든 협력 업체 직원에게 일괄적으로 문자를 다 보낸 거 같았습니다.

저는 대기업에 제품을 납품하는 중소기업 직원이기 때문에 매년 경조사 문자를 여러 번 받습니다. 고객 중에는 자주 봐서 친한 고객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만나야 하는 친하지 않은 고객도 있습니다. 친한 고객으로부터 경조사 문자가 오면 마음으로 위로하고 축하하게 됩니다. 하지만 별로 친하지도 않고 한 두 번 정도 만난 것뿐인데, 경조사 문자를 받으면 달갑지 않습니다. 저를 생각해줘서 경조사 소식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지 돈을 챙기려는 의도로 비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기업 분들께서는 협력업체 직원에게 경조사 소식을 알릴 때 협력업체 직원과의 관계를 지혜있게 생각하고 경조사 소식을 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PS) 어느 날 제가 담당하는 고객의 부모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희 회사의 부장님의 행동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부장님도 그 고객과 친분이 있었지만 제가 그 고객을 담당하는 실무자였기 때문에 고객의 경조사금 명목으로 경리부에 경조사금을 신청했습니다. 물론 저는 저희 팀의 부장님도 장례식에 참석하지만 개인 비용으로 부조를 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경리부에서는 이미 부장님이 경조사금을 신청해서 받았다고 하더라구요. 저희 회사에서는 고객의 경조사가 있을 때 회사 경리부에 고객 경조사금을 신청하면 20 만원의 비용을 받습니다. 그래서 저는 재경부에 경조사 비용을 타서 고객에 조문을 가려고 했는데, 이미 저희 부서의 부장님이 재경부에 경조사 비용을 신청해서 조문을 간겁니다. 저는 이런 부장님을 보고 세상에 많은 종류의 인간들이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