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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 Nov 06. 2018

소소한 모양들

독립생활자의 독립출판, 그리고 우리가 이야기할 수 있는 것들



10.9-21 

12일 동안 라움트에서 진행했던 

<소소한 모양들> 전시가 끝났다. 

이 이야기는, 그 12일에 대한 후기이다. 






엄마에게서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나갈 채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어, 문자를 남겼다.

- 엄마, 나 지금 바빠서 이따 전화할게.

- 어      


한 시간 정도 뒤,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 무슨 일이야?

 - 업자가 뭐가 그리 바쁘다고 ~

 - 엄마. 나, 사업자야. 사. 업. 자. 사업자는 바쁘시다고.

 - 하~ 나~ 참     


직장을 그만 두면, 엄마는 나를 ‘업자’라고 불렀다. 실업자에서 성만 떼고 이름만 부른 것이니, 나름의 애정을 붙였다고 해야 하나? 그 이름으로 불릴 때마다 주눅 들었던 적도 있었다. 직장을 그만둔 것이 다섯 번 정도 되니, 나는 업자라는 별명을 제법 오랫동안 들은 셈이다.      


여전히 업자로 산다. 이제는 개인 사업자라며 떵떵거리지만, 딱히 하는 일이 없어도 으레 바쁜 척을 한다. 엄마가 부르는 업자와 내가 부르는 업자 사이의 밀고 당기기는 아직도 여전하다.      


이제야 숨통이 트이고, 무언가 적어볼 법한 시간을 내었다. 한참이나 바쁜 계절을 보냈다. 힘 들이는 만큼 빠졌던 계절, 힘내는 만큼 따로 모였던 계절들이 지났다. 초겨울의 냄새가 나는 요새라서, 이제야 한 해를 되돌아본다.      


후란의 공간 / 사진 ⓒ 혜영


이 이야기는 작년 여름, 독립출판 워크숍에서 시작한다. <괜찮은 날>을 만들었던 이 워크숍에서 만난 혜지와 후란 역시, 각자 한 권씩의 책을 내었다. 그 해 겨울, 후란의 두 번째 책이 나왔을 때, 그를 응원하려고 여러 번 연락을 했다. 그에 화답하듯, 후란에게서 아주 흔쾌히- 공손한 답장이 왔다. 아마 그는, 으레 적어본 빈말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우리 뭔가 같이 해보면 재밌을 것 같아요.” 라기에, 기꺼이 혹은 기어이 놓치지 않았다.      

“그럼 내일 만나죠.”라고 답장을 했다. 


사진 ⓒ 혜영


합정에서 시래깃국을 먹고, 운치 좋은 카페에 앉아 케이크를 먹으며 조심스레 올해 계획을 물었다. 그 어떤 심난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디저트의 달달함이나 공간의 따뜻함 때문에 분위기를 망칠 염려가 없었다. 혹시, 책을 더 낼 계획이 있냐고 – 그렇다면 - 나랑 같이 - 이러저러한 프로젝트를 해보지 않겠냐고 운을 뗐다.      


후란은 그 때나 지금이나, 긍정이나 동의를 표할 때면 크게 웃는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혹은 어떤 책임감이 있는 사람인지도 모르면서, 그날도 아주 흔쾌히- 크게 웃었다.      


혜지는 알게 된 지 5년이 넘은 친구다. 혜지에게는 여러 미사여구가 붙는다. 내가 생협에서 일할 당시, 옆 동네 다른 단체에서 일하던 간사였다. 일하며 외로울 때, 친구가 필요했을 때, 불현듯 나타난 친구였다. 그때부터 우리의 생애는 비슷한 걸음을 걸어왔다. 서로 단체에 들어왔던 시기가 비슷했고, 퇴사한 시기 역시 비슷했다. 동시에 느낀 위기감이나 절망감 또한 비슷했을 것이다. 실업의 시기 또한 비슷했으며, 재취업의 시기 또한 날짜까지 똑같았다. 내가 은평에서 일하게 되었 때, 그는 마포에서 일하게 되었고- 그가 은평으로 이사오자, 나도 덩달아 은평으로 이사 오게 되었다. 나는 그의 곁에서 친구와 자매 사이, 돈독함을 나누었다. 앗차, 특히나 혜지는 나와 겸조를 소개해준 사람이라, 우리는 혜지에게 항상 감사할 뿐이다.      


혜지가 일하며 접하게 된 ‘구술 생애기록’으로, 엄마를 인터뷰한다고 들었을 때, 꽤나 재미난 소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하며 강의를 수강하고, 엄마를 직접 인터뷰하며, 혜지는 엄청난 공을 들였다. 혜지의 첫 번째 책인 <엄마와 나 사이에>가 탄생하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며 혜지가 이해하고 싶었던 것들을 떠올렸다. 혜지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구술 기록으로 담아내고 싶었고, 처음엔 2-30대 여성들을 인터뷰하겠다는 계획을 가졌으나, 이내 바꾸었다. 두 번째 책은 가족 구성원 중 여성인 할머니를 인터뷰하기 시작했고, 두 번째 책인 <나라도 할머니>가 출간되었다.      


혜지의 공간 / 사진 ⓒ 혜영

혜지에게 이 프로젝트를 함께 하자고 제안한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였다. 첫 번째 책도 함께 워크숍을 듣고, 지원사업을 통해 발간하게 되었다. 두 번째 책도 마찬가지로, 무언가 함께 해보자고 넌지시 자근자근하게 여러 번 가볍게 던져두었다. 하여, 우리가 함께 하게 된 것은 내 입장에선 당연한 일이 되었다.      


그렇게 세 사람이 만나 또다시 각자 한 권씩 책을 내었다. 책에 담은 혹은 담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전시로 풀었

다. 가족, 꿈, 생활이라는 각자의 키워드를 가졌지만, 결국엔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내가 궁금했던 것, 내가 힘들었던 것, 내가 바라던 것. 결국, 우리가 살아오는 동안 찾아 헤맨 것들을 풀어놓은 서로의 방식이었다.      


크게는 같은 이야기를 관통하지만, 각자 풀어놓은 소재와 방식이 달라 재밌고 즐거웠던 전시였다. 특히나, 세 사람이 다르고 다른 점이 빛을 발했다고 할 수 있다. 소소리는 그런 의미에서, 참 잘 지은 팀명이라는 생각을 한다. 본의 아니게 팀의 대표를 맡고 있지만, 일 벌이기는 잘하나, 눈치 보느라 주저하는 순간들이 많았다. 그럴 때면, 으레 등 떠밀어 주는 것은 후란의 몫이었다. 그러다 엉덩이를 떼 먼저 움직이는 것은 혜지의 몫이었다. 예를 들어, 큰 일도 사사로이 작게 만드는 습관이 있는 나는 현수막도 안쪽 깊숙이 걸었다면, 후란은 저것을 밖으로 빼야 한다 말하고, 혜지는 바로 떼어 거는 친구였다.  

    

이봄의 공간 / 사진 ⓒ 혜영


세 사람이라서 가능했고, 그래서 더욱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이 프로젝트가 결국 어디로 향하고, 어떻게 맺게 될 진 잘 모르겠다. 우라 각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무엇으로 돌아올지, 가늠조차 하지 못한다. 12일 동안 222명의 사람들이 방문해주셨고, 꾹꾹 눌러 적어주신 방명록엔 우리가 헤아릴 수 조차 없이 감사한 말들이 담겨있다.      


사진 ⓒ배석진


아마 우리는 지금처럼, 결국 비슷하게 살아갈 것이다. 지금의 행보가 어떤 결론이 될 것이라 장담하진 못하지만, 영상에 담긴 혜지의 말처럼-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의 용기가 보태어졌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주 작은 일, 그 어떤 사소한 일이더라도, 혼자만의 힘으로 이루어내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가능하도록- 내딛는 걸음마다 보내주신 응원과 격려에, 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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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행보는? 아직 모른다. 살아온 대로 살아갈 테지만, 우리는 12일 동안의 기록을 한 권의 책으로 엮을 계획이다. 전시 기록집의 소식은 짙은 겨울에 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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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모양들, 전시에 대한 다양한 기록을 남기고 싶어 영상 작업을 진행했다. 영상 기획/제작/편집은 모두 스파클링 스튜디오에서 수고해주셨다. 감사!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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