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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춘기 Aug 21. 2024

어느 중년 부부의 대화


남편은 지난 10여년 간 매년 회사에서 계약금을 받아 왔다.
정규직임에도 회사에서 1년 간 그만두지 않는 조건으로
계약서에 사인을 하면 꽤 많은 계약금을 주곤 했고
그 돈은 그간 내집 마련으로 생긴
부부의 빚을 갚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어느 날 삼겹살에 맥주 한잔 하는 자리에서
남편이 말을 한다.

"나 잘렸나 봐."

아내는 회사에서 잘린 줄 알고 많이 놀랐지만
알고 보니 25일 월급날이 코앞에 다가왔음에도
계약서에 사인하라는 말이 없어
남편이 꺼낸 말이었다.
잠시간의 침묵 후 아내가 입을 뗐다.

아내-어쩔 수 없지. 괜찮아. 우리 빚도 다 갚았잖아.

남편이 고개를 끄덕거린다.

아내-아오 젊을 때 미친듯이 부려먹곤 이제 나이먹었다고
돈을 안 주냐.
남편-오늘 퇴근 전까지 계속 메일 왔나 클릭했는데 안 왔더라고.

남편이 쓴웃음을 짓는다.
아내-월급날까지 아직 하루 남았잖아.
남편-너무 하루밖에 안 남았잖아.


아내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거의 20년 가까이 한 회사에서 근무하며
우리 가족을 책임진 남편이기에
1년에 한 번 보너스 받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보너스의 의미는 큰 금액의 돈인 것도 있지만,
회사에서 인정받는다는 의미도 되기에
그 말을 하기까지 남편의 마음이 어땠을지
아내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나이를 조금씩 먹으니
속만 썩이고 자기밖에 모르는 자식보다
내 말을 더 잘 들어주고 나를 생각해주는
남편과 사이가 더 돈독해지는 것 같다.

더이상 계약금을 받지 못하더라도
두 사람이 힘을 내어 열심히 산다면
아이 둘 대학까지 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날 함께 먹은 고기 사진을 함께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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