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직장에서 일한 지 꽉 채워 9년이 지났다. 내년 여름쯤이면 딱 입사 10년.
9년이란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 동안 우여곡절의 나날들이 있었다. 한국회사도 제대로 다녀본 적이 없었다. 학생 같지만 학생의 신분도 아닌 내가 외국계가 아닌 일본회사에서 9년을 채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일본에서의 교환학생 1년을 제외하고는 일본학교를 다녀본 적도 없어서 언어는 물론 그들의 문화나 특성을 이해하는데도 시간이 걸렸고 시행착오도 많았다.
교환학생을 끝나고 다시 일본에 와서 생활한 지는 15년이 지났지만 사실 지금도 잘 모르겠다. 내 마음도 잘 모르겠는데 외국 사람들의 문화나 특성을 모르는 건 당연한 게 아닐까. 그런 마음으로 살다 보면 더 편해진다.
'한국인으로서'가 아니라 그냥 '나 자신'으로 살면 내 마음은 훨씬 더 편하다.
내가 해온 업무 내용은 부서 간의 조율과 서비스의 운영체계구축 및 운영준비인데 사실은 알기 쉽게 말하자면 문제해결담당이다. 서비스 운영에 문제가 생기거나 문제가 생길 것 같으면 어떻게 하면 좀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부서 간에 조율하고 수정하는 것이 메인 업무였다.
소통능력이 굉장히 중요하지만 업무이지만 나는 사람과의 소통능력은 거의 없는 수준이다. 어릴 때도 누군가에게 먼저 친하게 지내자고 말을 걸어본 기억도 없고 인사하는 게 쑥스럽고 나를 기억하지 못할까 봐 인사도 하지 못했다.
물론 수단으로 사용해야 하는 일본어도 현지인처럼 유창하지 못하다.
비즈니스 메일 작성이나 보고서 작성도 한국어로도 해 본 적이 있었으면 일본어로 바꾸기만 하면 될 텐데 그런 경험조차 없어서 문장하나 쓰는 것에도 꽤나 시간을 들여서 고생을 했다.
챗지피티도 없던 시절이었으니 다른 사람들이 쓰는 메일을 보고 흉내 내서 써보고 내가 원래 늘 쓰던 말인 것 같이 말했다. 소통능력은 태어날 때부터 없는 수준인데 처음부터 가지고 태어난 사람인 듯, 일본어도 못하지만 원래 일본에 살았던 사람인 듯. 그렇게 다른 사람인 것처럼 5년을 살았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몇 배는 더 노력하고 있는 것 같으니 더 많이 인정받고 싶었고 남들보다 더 빨리 출세하고 싶었다.
누군가의 사수가 되었을 때 그들이 작성한 메일이나 보고서를 보고 검토를 하고 수정 사항을 전달했다.
'이 부분은 이렇게 전달하는 게 상대방도 알기 쉬울 거야. 이 사람이 이건 이런 의도로 얘기한 게 아닐까'등등
어떻게 전달하는 게 상대방도 알기 쉬운지에 대해 일본인에게 일본어로 피드백하면서
'왜 이런 글쓰기 수정같은 간단한 일을 '외국인' 내가 '현지인'인 너에게 알려줘야 하지?
얘는 일부러 나를 테스트 하나?'
나에게 주어진 역할과 나의 정체성을 생각하고 고민했다.
여기서 이런 방식으로 일하고 있는 게 맞는 것인가에 대해서.
물론 파견사원들도 회의를 느꼈을 것 같다. '이런 글짓기 스킬 같은걸 왜 외국인한테 피드백을 받아야 하지? '
그 마음도 잘 알 것 같아서 나 혼자 굉장히 불안했고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쳤다. 물론 업무내용이 나에게 맞지 않는 것이 가장 컸다. 업무상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잘 지내면 좋으니까 더 많이 웃으려고 노력했다. 사람들과 무리해서라도 잘 지내고 싶다는 마음도 흐려져갔다. 얼굴표정도 무미건조해져 갔다.
좋은 기회에 모회사로 일정 근무 파견근무를 갈 수 있었다. 새로운 환경에서 가면 입사 초중반 당시의 반짝반짝함도 다시 되찾을 수 있을 테고 그럼 다시 새로운 나로 태어날 수 있다는 마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선조들의 옛말은 배울 점이 많다. 떡을 급하게 먹는 바람에 체했다.
낯선 환경에서 낯선 사람들과 잘 지내고 업무를 배우고 새로운 업무에서 성과를 내는 것은 몸과 마음이 건강한 상태여도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다. 3년 예정이었던 파견근무였지만 1년이 되자마자 도망치듯 다시 돌아왔다.
다시 똑같은 부서로 돌아갈 수는 없어서 비슷한 업무를 하는 부서로 이동을 했다. 그 부서에서의 업무양은 거의 10분의 1 정도로 적었다. 몸과 마음을 다시 회복하고 의지를 다 잡는 데는 좋은 환경이기도 했지만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고 싶은 마음에 물어보면 아직은 없다. 그냥 자료나 찾아봐라라는 식의 무책임한 상사의 말이 나를 더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그 말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이직이나 부업을 생각했다.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기 위해 나 자신을 깎아내야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나에게 득보다는 손이 더 큰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았다.
나이도 젊지 않은 데다가 지금 일하는 분야가 어떤 회사에나 있는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이직도 쉽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지방도시에 살고 있는데 이 도시는 특정 산업이 발달된 도시로 그 외의 산업에는 일자리의 수요가 많이 없는 편이다.
그리고 이직의 가장 큰 현실적인 문제는 연봉이다. 지금의 연봉이 높은 수준도 아닌데 더 줄여서까지 급하게 이직하고 싶지는 않았고 지금 이상의 연봉상승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분야이기 때문에 더 높은 월급을 받는 회사로 이직하는 것은 더 어렵다.
그리고 지금 다니는 회사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재택근무이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는 점과 강아지 보리와 항상 있어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사람들과의 불필요한 접촉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크다.
이직이 아닌 것을 생각하다 보니 부업이 생각이 났다. 어떤 부업을 해야 하는지 잘 와닿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동남아국가가 경제규모가 커진다고 하니까 동남아국가 상대로 일본 상품이나 팔아 볼까 해서 사이트를 개설했지만 숫자개념도 없는 내가 장사가 가능한가 라는 생각에 금방 접게 됐다.
일본에 오래 거주하고 있느니 일본의 음식점이나 카페 관광명소에 대한 블로그를 써보았지만 그것도 광고가 붙지를 않아서 실패.
흐르지 않고 정체되어 있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워낙 사주에도 관심이 많아서 종종 보는데
내년 초에 이직이나 변화의 기회가 찾아온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들으니 꽉 막힌 듯 답답한 내 상황이 조금이나마 바뀔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품었다.
그러던 중 꿈을 꿨다.
지금 회사를 관두지 않은 채 몰래 다른 회사에 입사해서 첫날 출근하는 꿈을 꿨다. 하지만 새로운 회사는 지금 회사보다 더 인간관계가 어려워 보였다. 대부분의 동료들이 깐깐해 보이는 어떤 여자사원의 눈치를 끊임없이 보고 있고 암묵적으로 그 여자 사원의 한마디에 발 빠르게 행동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분위기에 숨이 막혔다.
꿈속에서도 빨리 아무도 모르게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고 지금 다니는 회사의 누군가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뿐이었다.
나의 꿈 해몽 선생님 챗지피티에게 물어보니 그야말로 딱 내 상황이었다.
'변화를 고민하고 있지만, 변화가 더 아플 수도 있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쉽게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
이직이나 생활에 다른 변화를 주고 싶지만 그에 따른 리스크가 두려워서 그냥 고민하며 이리저리 찔러만 보고 있는 내 상황과 마음이 정확히도 꿈에 반영된 것이다.
꿈은 놀랍도록 무섭다. 그 사람의 의식과 무의식 속을 유유히 떠다니다가 생각지 못한 타이밍에 생각지 못한 스토리와 장면들로 재구성된다. 내년에는 나에게 딱 맞는 옷을 찾을 수 있을까. 아니면 찾아 나설 수 있는 용기를 생길까.
맡겨진 것은 뭐든지 열심히 하고 싶고, 잘 해내고 싶었던 그때의 내 반짝임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오늘도 입기 위해 살을 깎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입을 수 있는 나만의 옷을 찾기 위해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