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일리언이 진짜 무서운 이유
[프로메테우스]와 [에일리언: 커버넌트]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작품으로써 어릴 적 한 번쯤 보았을 에일리언의 후속작이다. 불쾌하고 공포의 대상이었던 외계인, 그 에일리언 말이다. 물론 에일리언은 우리 부모님이 아주 어렸을 시절에 개봉한 영화이긴 하지만 엄청난 흥행으로 아직까지도 회자되고 연령을 막론하고 쉽게 접할 수 있는 시리즈가 되었다. 그 인기 덕택에 2010년대 들어서 두 개의 후속작이 나왔을 터이다.
그 인기에 힘입어 -모든 시리즈를 다 보진 않았지만-어린 시절 채널을 돌리다 영화채널에서 종종 마주 할 수 있었던 에일리언은 공포의 대상 그 자체였다. 갑작스럽게 튀어나오는 기괴한 외계인을 마주하는 것은 어린 시절의 나로선 쉽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리고 가끔 채널을 돌려서 발견한, 그날 밤 꿈에서 등장하는 에일리언을 통해 깊은 고찰을 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아니 불가능했다. 깊게 생각해봐야 그들의 기원에 대한 의문 정도에 그쳤으니 말이다.
허나 [에일리언: 커버넌트]는 공포의 대상을 논조의 대상으로 옮겨가도록 유도해준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깊은 성찰이나 시대정신, 그리고 심연의 이야기를 청자로부터 유도하는 데 특출 난 사람이라고 한다. 이를 생각해보면 아마 에일리언 원작 이후, 다른 시리즈에선 다른 감독이 맡았으니 깊은 고찰로 이어지지 못했거니와 애초에 원작을 준비하면서 그 이전의 이야기를 준비한 것이 아닐까 싶다. 아니 당연해 보인다.
어찌 됐든 리들리 스콧의 두 후속작은 에일리언의 기원을 밝히는 동시에 인조인간이라는 의외의 소재를 통한 주제의식을 던진다. 인류의 기원을 찾아 나선 [프로메테우스]의 연구원들은 그들의 피조물인 데이비드의 지적 욕구에 이용당하는 수단으로 전락한다. 그리고 인류가 새롭게 머물 행성을 찾아 나선 [에일리언: 커버넌트]의 주인공들은 우여곡절 끝에 예정된 행성이 아닌 데이비드가 머무는 행성으로 향하며 비극은 시작된다.
비극의 기원은 제목의 커버넌트에서 유추할 수 있는데, 성경에서의 커버넌트는 언약 내지 규약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창조물인 인간 사이에 성사된 약속을 의미한다. 즉, 커버넌트는 하나님의 피조물에 대한 일방적인 선언인 것이다. 영화의 제목에 위 내용과 데이비드의 행동을 대입한다면 인간의 피조물인 데이비드는 에일리언이라는 새로운 종족을 창조해냄으로써, 그리고 그의 창조주인 인간을 그들의 실험대상으로 활용함으로써 창조주의 권능에 도전하고 있다.
그리고 그 도전은 새로운 창조주의 등장을 알리는 비극인 것이다. 인간의 입장에선 말이다. 허나 인류의 역사도 데이비드의 잔혹함과 별다를 것이 없다. 우리가 정의하는 신으로부터 인류는 언제나 어떤 형태로든지 간에 호기심을 가졌다. 그 호기심으로부터 지식이 산출되고, 인류는 진보했다. 다만, 그 깊이와 길이가 너무도 광활한 탓에 과정을 잊고는 한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잔혹함과 극악무도한 역사를 떠올리기 쉽지 않다.
인간성이 결여된 형태의 데이비드처럼 우리는 수많은 생물, 환경을 수탈했고 심지어는 같은 인류조차도 박해와 실험의 대상이 되곤 했다. 과정을 차치할 정도로 진보가 마치 인류의 숙명처럼 비치지만 사실 그런 건 없다. 있다면 데이비드의 지적 욕구로부터 더 나은 생명체를 만들고, 자신이 조물주가 되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게 된다. 인간이 느끼는 숙명처럼 데이비드도 행한 것뿐이니 말이다.
결국 불완전한 존재는 신의 권능과 진리를 탐구하려는 숙명의 함정에 빠져 기술의 진보와 삶의 획기적 발전을 이룩했던 것처럼, 데이비드도 어쩌면 인간과 달리 영생하는 존재임에도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새로운 인조인간인 윌터로부터 예술작품에 대한 지적을 받음- 진리를 탐구하고자 잔혹함을 빌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잔혹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그를 인간애 시선에서 바라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인간 이외의 다른 지적인 존재가 공존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해 보인다. 우리는 한 번도 다른 지적 존재와 살아본 적도 없고, 어떻게 대해야 할지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공포스러운 것은 우리의 지적 호기심으로부터 이루어진 많은 행위들처럼 다른 지적 존재가 인류를 똑같이 대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오래전부터 이어진 에일리언의 대서사의 진정 공포스러운 부분도 바로 여기에 있다.
진짜 공포는 징그럽게 생긴 에일리언이 아니라, 우리와 닮은 또 다른 지적 존재 ‘인조인간’에 있단 사실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그리고 리들리 스콧은 두 편의 후속작을 통해 인간의 깊은 성찰로부터 그 공포심을 자아내도록 의도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