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김사부’, 배우 ‘한석규’의 영도력
코이의 법칙은 ‘코이’라는 잉어종의 물고기가 살아가는 환경의 크기에 따라 몸집이 정해진다는 과학적 근거를 근원으로, 주변 환경에 따라 한 사람의 삶의 크기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그냥 들었다면 그저 상투적인 예찬 정도로 생각했을 이 법칙은 즐겨봤던 낭만닥터 김사부2의 마지막 에피소드 제목입니다. 비록 드라마긴 하지만 하나의 사례를 통해 이 법칙을 생각하니 상당한 울림을 가집니다.
주인공인 김사부가 가진, 배우인 한석규가 가진 영도력 때문에 그렇습니다. 드라마 안에는 많은 서사가 담겨있지만 무엇보다도 김사부와 라이벌 박민국 교수의 경쟁구도가 유발하는 긴장감이 보는 맛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극적 흥미를 더하기 위해 갖춰진 선과 악의 흑백논리는- 당연 김사부 사단이 옳고, 박민국 사단이 그른 것처럼 묘사됩니다- 어쩔 수 없는 장치입니다. 게다가 박민국 교수의 운영철학을 현실 세계에선 비판하기 힘든 것이 예약환자를 주로 받으면서 안정된 병원 운영을, 그리고 병원 적자구조의 탈피를 원했기에 그렇습니다.
단지, 모두를 살리겠다는 김사부의 철학이 ‘주인공 버프’를 통해 실현했기에 박민국의 철학이 그른 것처럼 보였을 뿐입니다. 정당한 비판을 통해 무언가를 바꾸려 했다면 박민국보다는 그를 선임한 ‘낭만닥터 김사부1’의 빌런 도윤완 이사장을 향해야 마땅합니다.
아무튼 저는 김사부가 가진 영적인 수술 능력과 정의로운 신념보다 그것에 가려진 인간성과 영도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찌 됐든 김사부의 반대에 서서 경쟁구도를 유지했던 박민국조차 결국에는 포용하고 함께하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마지막 에피소드의 제목처럼 박민국의 내면에 가려진 그의 직업윤리를 끄집어내 같은 목표를 적립하며 드라마는 막을 내립니다. 사실 1대 빌런 도윤완은 그마저도 없는 사람이니 그를 구제하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박민국은 그와 달랐기에 가능했습니다.
도윤완과 달리 의사로서 가진 양심이 있던 박민국은 김사부가 이끄는 영도력에 서서히 흡수되고 있던 것입니다. 그를 증오하고 트라우마처럼 괴로워했을 때조차 말이죠. 결국 코이의 법칙처럼, 박민국이라는 사람의 환경에 김사부가 있으니 삶의 그릇이 더 커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김사부역을 찰떡같이 소화한 배우 한석규 또한 시청자를 모니터 안으로 이끄는 영도력이 있습니다.
(사진 출처: 낭만닥터 김사부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