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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던컨 Nov 02. 2021

백화점에서 2천만 원 쓰는 VIP 입니다만

우리 가족을 VIP로 모신다는 백화점이다.

재작년 겨울 우리 집은 불탔다.

가족 모두가 비운 오전 시간 손마사지기 충전 중에 스파크가 일어나 30분 만에 거실과 부엌의 모든 세간살이를 태웠다.

다행히 모두 보험처리가 되 두 달여 수리기간 동안 네 식구가 원룸에 새해를 맞으며 곧 있을 입주 전에 가전제품 구매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가전은 어디가 싸더라 저기도 싸더라 의견이 분분하다가 집안에서 목소리가 큰 처남이 백화점에서도 온라인 최저 가격을 다 맞춰준다며

본인이 나서서 백화점 가전매장에서 흥정을 했다.

 

그렇게 우리는 화재보험금으로 백화점 가전제품을 2천만 원 가까이 구매하면서 골드클럽이라는 VIP 멤버십이 되었다.

평소에 백화점은 비싸다는 선입견에 특별한 날 아니면 가질 않는 곳이라 1년 100만 원도  쓰는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화마가 온 재산을 삼켜서 이불 한 채 수건 한 장 없던 이재민 이었는데 백화점 VIP라니 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골드클럽이 되면 VIP 전용 주차구역에서 발렛파킹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라운지에서 커피, 차와 간단한 스낵을 먹을 수 있명절이면 수건이나 육포 같은 소소한 선물을 택할 수 있다고 한다.  

 

백화점 VIP 스티커가 집으로 날아왔고 암행어사 마패라도 되는 양 스티커를 자동차 앞유리에 떡하고 붙인 후 눈길도 안 주던 VIP 주차구역으로 몰고 들어갔다.

파킹 직원의 정중한 수신호에 따라 정차한 다음 전용통로를 통해 매장으로 입장하면괜히 으쓱해졌고 라운지에서 음료를 마시며  화재 이재민이었던 우리 처지가 이렇게 바뀌었다며 롤러코스터 같은 일상에 대해 각자의 소감을 얘기하곤 했다.

 

그렇게 공짜 발렛파킹과 커피에 재미  주말 마다 백화점 나들이를 하다 보니 정말 VIP 인 것 같았고 소비도 VIP처럼 해야겠다는 착각에 빠지기 시작했다.

월급은 그대로였지만 100만 원 남짓한 주식 수익 현황에 힘입어 70만 원짜리 다이슨 청소기를 질렀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나는 농수축산물 대부분 상품의 가격을 외고 있어서 마트 배 가격인 백화점 식품매장  가격 보면 볼수록 기가 찼다.

"미쳤다 미쳤어 아무리 드라이에이징 한우라고 하지만 100그램에 이만 오천 원이래!"라며 집사람에게 고자질하듯 말하며 식품매장을 나온다.


명품 매장 내 구찌, 버버리 샵 앞에 기다랗게 줄 선 사람들을 보며 저렇게 기다리면서까지 게 있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고 하다가 마침 줄이

없는 페라가모 샵에 들어섰다가 한 개에 60만 원 하는 벨트 가격을 보고는 조용히 말없이 나온다.

   

그렇게 납득이 안 되는 가격만 확인하고는 기껏 우유, 식빵, 만두 같은 먹거리 사들고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온다.


다들 명품 쇼핑백을 댓 개씩 주렁주렁 들고 VIP 주차장으로 돌아와서 발렛직원에게 자랑하듯

쇼핑백을 건네고는 벤츠나 BMW 같은 반짝반짝 광택이 나는 수입차에 한가득 산 쇼핑백이 실리는 것을 확인한 후 직원의 인사를 받으며 떠나가기 마련인데

우리만 먹거리 뿐인 종량제 비닐봉지라서

"짐 들어드릴까요?" 며 손을 내미는 발렛직원의 친절에 내 치부가 드러날세라 '아니에요 아니에요' 라며 소스라치게 놀라며 거절을 한다.

 

주차장 내 탑승 대기공간에서 비닐봉지를 들고 있는 게 우스꽝스러워 편히 앉지도 못하고 일어선 채 우리 차가 나오는지 밖에만 주시하다가 세차한지 두 달도 넘어 얀 먼지에 흰색이지만 누런 카니발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차량이 준비되었다는 발렛직원 호출전에 탑승장으로 나가서 손님인 내가 오히려 감사하다며 연신 인사를 하며 황급히 빠져나오기 마련이다.  

 

백화점 매장 안에서야 빈 손이라도 상관없지만

집으로  돌아가려고 VIP 주차장에 들어설 때면

'너 오늘 얼마나 샀니?'

'얼마나 많은 쇼핑백을 들고 왔니?'

와 같은 구매액수 검색대에 올라선 듯한 자격지심이 들고 먹거리뿐인 비닐봉지를 든 내가 한없이 초라한 것 같아 위축되곤 했다.

 

그렇게 쇼핑이 점점 스트레스가 되어가던 차에 지난 주말 집사람이  백화점 앱을 열어 보여주며

VIP 멤버십 연장을 하려면 연간 2천만 원을 써야 하는데 올해 누적 구매액이 200만 원이 안된다고 했다.  

공짜 발렛파킹과 라운지 음료 재미가 단단히 들어서 '무슨 수로 1,800만 원 야 하나?'

'명품 시계라도 사야 하나?' 하는 극단적인 생각을 했었다.

 

사실 내 소비패턴은 대형마트 의무휴무일인 둘째 넷째 주 일요일 하루 전인 토요일 밤에 가서

8천 원에 세 마리하는 오징어를 5천 원에 사면서 기뻐하고 창고형 아웃렛에서 정상가 30만 원 하던 니트를 80% 할인된 6만 원에 사고는 돈 벌었다며

뿌듯해하는 지극히 가격 위주 체리피커였는데 어쩌다가 화재 보험금으로 어울리지 않는 백화점 VIP 멤버십 클래스에 들어가면서부터 쇼핑 정체성

의 혼란을 겪게 된 것이다.

 

나와는 상관없어나더 레벨의 백화점 명품소비와 비교해가면서 나를 초라하게 여기고 그들처럼 될 수 없음에 답답해하면서 상대적 박탈감까지 느끼는 게 마치 백화점이 만든 오징어 게임에 참가한 또 다른 456번이 아닌지 반문하게 되었다.

 

주차는 내가 직접 하면 되고 커피는 돈 주고 사 마시면 된다. 그것 때문에 능력도 안되면서 

2천만 원을 써야 한다는 강박 가득한 시간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VIP 멤버십 종료 두 달 앞두고 깨닫게 되었다.

 

백화점은 나를

Very Important Person이라고 추켜 세워줬지만

실상은 Very Incapable Person이었고 그런 나는 Very Intelligent Person이 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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