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불이 나는 흔치 않은 경험을 하며 매 순간이 스트레스였지만 돌이켜보면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일들 뿐이었다.
집에 아무도 없을 화재가 나서 누구 하나 다친 사람이 없어 감사했고
재산이 불에 타고 쓸모없게 되었지만 화재보험으로 다시 새 살림을 차릴 수 있음에 감사했고
네 식구가 원룸에서 빨래방 오가며 살아도 재미인 것 같아 돈독해진 정을 느낄 수 있어 감사했고
만약 내가 세입자였다면 집주인에게 얼마나 면구스러웠을까 하는 생각에 그렇지 않음에 감사했고
무엇보다 우리 식구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고 또 그렇게 할 수 있도록 각자가 노력했고 그런 저력을 확인할 수 있었음에 감사했다.
그렇게 감사한 마음으로 겨울을 보내고 봄이 될 무렵 화재 후 처음으로 양양으로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왔다.
화재가 나서 여행할 겨를도 없었고 우한 폐렴이라는 신종 바이러스가 스물스물 기어나올때라 외출자제와 같은 경고성 문구에도 몇 개월 만에 나선 온가족 여행이라 들떴었다.
세차긴 해도 봄기운 가득한 바다여서 훈훈한 바람을 기분 좋게 안을 수 있었고 그렇게 우리는 새로운 계절과 삶을 기대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이게 삼재의 전주곡이었다는 걸 말이다.
11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