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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수난 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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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던컨 Apr 08. 2022

같은 집 두 번 인테리어

화재로 인해 같은 집을 두 번 인테리어 하는 흔치 않은 경험을 하게 되었다.

여유 있는 사람들이야 트렌드가 바뀔 때마다 인테리어를 새로 하겠지만 대개는 이사 오기 전에 인테리어 한 번하고 다른 곳으로 이사 가기 전까지 그 집에서 주욱 지내는 게 일반적일 테다.


내 경우도 그럴 줄 알았다.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 오기 전에 나름 컨셉을 가지고 인테리어를 했는데 가장 돋보였던 것은 텔레비전이 없는 집으로 꾸미자는 것이었다.

텔레비전이 없었던 집

아이들에게 책 보는 습관을 들이려 텔레비전이 없는 집을 만들었다. 거실에는 대형 책장을 다섯 개나 만들고 긴 테이블도 갖다 놓고 가족들이 모여서 책을 보고 차도 마시고 이야기도 나누는 그런 공간으로 만들려 했지만 그저 꿈일 뿐이었다.


텔레비전이 없으니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퇴근하기 전까지 근처 외할머니 집으로 가서 밤 시간까지 텔레비전을 보다 오는 게 일상이 되었으며

이사 오고 나서 반짝했던 아빠 엄마의 열독률은 금세 시들고 휴대폰의 유튜브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원래 꿈꾸던 모습은 이런 모습이었는데


그나마 집에 텔레비전이 없으니 아이들이 덜 보는 게 어디냐고 위로했지만 회사에 가면 동료들이 하는 TV 프로그램 얘기에 끼일 수가 없었고 아이들도 마찬가지라 텔레비전을 사자는 식구들의 원성이 자자하다가 우연찮게 얻게 된  프로젝터를 가져와서 노트북에 연결하고는 미스 트롯이나 스페인 하숙을 다운로드하여보며 텔레비전의 아쉬움을 달래곤 했다.


빨래 개면서 프로젝터 시청중

인테리어 하면서 가장 고민은 재질에 따른 가격차이였다. 마룻바닥으로 하고 싶었지만 가격 때문에 헤링본 느낌 장판으로 대신했는데 장판도 두께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라 얇은 장판으로 했다가 후회했던 예전 집 인테리어였었다.


무거운 가구를 놓은 자리가 움푹 들어간 장판을 보며 차라리 돈을 더 들여서 강화마루로 할 걸 하는 후회가 있긴 했었는데 화마가 휩쓸고 간 뒤 새로 하는 인테리어에서는 그런 고민을 하지 말자하고는 대번에 장판 대신 강화마루로 정했다.

불나고 난 후 강화마루로 인테리어 한 집에서 삼부자 댄스 중

예전 인테리어 사진을 찾으면서 4~5년 전 휴대폰 갤러리를 뒤적거리다 보니 집 인테리어도 변했지만 그 집에 살고 있던 우리 모습이 변한 게 가장 눈에 띄었다.

귀엽고 공부 걱정 없던 아이들은 한 뼘 두 뼘씩 자라나서 학원과 학업 스트레스가 슬슬 시작하는 중학생과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다.

아직 40대 초반이야 했던 아빠 엄마도 곧 오십이야 하는 나이로 들어섰고 차츰 무거워지는 인생의 무게를 감당해내지 못하고 이리 휘청 저리 휘청 하면서 아슬아슬 한 발 한 발 내딛고 있는 중이다.


집은 새로 인테리어 해서  새 집이 되었지만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은 그대로이고 또는 더 늙은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다가도 사람 인테리어는 말 그대로 내면 즉 마음을 다듬어야 하는 것인데 젊고 늙음을 탓하는 익스테리어 밖에 볼 줄 모르는 나의 짧은 식견을 또 드러내고 말아 부끄러워졌다.





10화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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