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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삼실 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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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던컨 May 12. 2024

삼실 우화 여덟-한 철 장사 선풍기



절의 구별이 점점 옅어져가고 있다.


이제 막 삼월이 되었는데 기온은 25도를 웃돌아 봄름이라는 새로운 계절을 보이고 있으며 사무실에서 몇몇은 반팔 셔츠를 입고 근무를 하는데 대부분 MZ라 할만한 젊은 직원들만 그러하지 노땅 직원들은 여전히 스웨터 안에 셔츠를 받쳐 입는 패션을 고수하고 있다.



선풍기 주인인 두툼한 아저씨도 노땅이었는데 삼월이 춥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불룩한 배를 내보이기 싫어 저주받은 몸매를 가릴 용도로 더욱 셔츠와 스웨터를 고집하고 있다.



삼월 날씨가 춥긴 하지만  아침저녁만 그렇지 점심때 따사한 봄볕으로 체온이 훈훈해지면 갑갑한 스웨터를 벗고 홑겹의 셔츠로 한결 가벼워지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점심 메뉴였던 부대찌개에 라면사리를 후룩후룩 양껏 먹고 빠알간 국물에 밥 한 공기를 스윽스윽 다 비벼먹은 터라 한껏 부른 배를 드러낼 수 없어 괴로워하다가 책상 밑에 겨우내 처박혀 있던 나를 찾아내고는 끌어올렸다.



"훅! 훅!"

내 몸에 덕지덕지 붙은 먼지가 불편한지 두툼한 아저씨는 부대찌개의 김치, 소세지, 햄  그리고 마늘향을 담은 더운 입바람을 연신 불어대고 있었다.

 


"탁탁 탁탁탁"

바람으로 대충 먼지를 떨어내고는 손으로 쳐서 날개에 붙은 먼지를 떨어내는 시늉을 한다.



그러고는 곧장 전원 콘센트로 연결해서 동작버튼을 눌러버리는데 근 육 개월간 날갯짓을 해본 적이 없는 나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상황이 너무도 당황스러웠다.



책상 밑 컴컴한 서랍에 처박혀 있다가 나와 눈이 부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가운데 몸에 붙은 먼지라도 제대로 털어주면 좋을 텐데 그렇지도 않고 기지개도 켜보기도 전에 온몸을 뒤덮은 전류에 따라 나도 모르게 쉼 없이 팔을 휘저어야 하는 이 상황이 말이다.



두툼한 아저씨는 많이 더운 건지 곧장 '강' 버튼을 눌러대더니 바람을 얼굴 이리저리 쐬고 있었다.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간 먼지들은 내가 뿜어대는 바람을 타고는 아저씨의 얼굴로 하나 둘 옮겨가서 다닥다닥 붙어 자리를 했다.



그렇게 나는 삼월의 어느 더운 오후 날 끄집어져 나와 날갯짓을 시작했는데 아저씨가 자리에 앉아 있을 때는 물론이고 양치를 한다며 화장실을 갔을 때도 회의를 한다며 한 시간 정도 자리를 비웠을 때도 나는 계속 팔을 휘저었다.



환하던 정오에서 어느덧 어둠이 섞이기 시작하는 늦은 오후가 되자 두툼한 아저씨는 코가 마르기 시작하는지 연신 킁킁 대기 시작한다.



"킁킁 킁킁"

킁킁이 아저씨는 나 때문에 자신의 코가 마르는 걸 깨닫고는 검지 손가락으로 내 전원을 꾹 눌러 바람을 멈추게 한다.



서너 시간 동안 쉼 없이 돌리던 팔이 제 때에 멈추지 못하는 가운데 두툼한 아저씨는 그 바람도 싫은 건지 책상 멀리 나를 밀어 치운다.

 


덥다고 찾아댈 땐 언제고

준비운동 없이 팔을 마구 휘젓게 하더니

결국 코가 마른다며 멀리하는 그



이번 한 철을 좀 더 일찍 삼월부터 나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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